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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고 겁 많은 유부녀의 3개월간의 유럽 가출기 |
‘유부녀’, ‘가출기’, 두 낱말에 묘하게 끌린다. 아니, 그냥 호기심이 발동한다고 해야 솔직할 것 같다. 표지 안쪽엔 “결혼 6년차 주부, 시할머니와 합가에 따른 스트레스, 결국 가출을 선언하다.”
새댁이, 시어머니가 아니고, 시할머니와 전쟁을! 이거, 드문 일인데. 남의 가정사를 시시콜콜 알고 싶진 않지만, 지은이는 “~ 여행이나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올게!” 이런 비장한 말씀을 날리고 보따리를 쌌다. 용감무쌍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차례를 보느라 봤는데, 어떻게 이런 알찬 여행을 했는지 보자마자 “으악~,” 하면서 일찌감치 두 손을 들기로 했다. ①러시아4, ②그리스6, ③이태리10, ④몰타2, ⑤크로아티아12, 보스니아 and 헤르체고비나5, ⑥슬로베니아5, ⑦터키4, 불가리아 and 루마니아1, ⑧불가리아3, ⑨루마니아5, ⑩슬로바키아3, ⑪폴란드3, ⑫덴마크2, ⑬노르웨이2, ⑭스웨덴3, ⑮리투아니아2, ⑯라트비아1, 라트비아 and 러시아1, ⑰에스토니아2, ⑱핀란드1, 이렇게 18개 나라 77개 도시를 다녀왔다. 그것도 새댁 혼자서, 겁도 없이, 존경스럽다.
이 책,『혼자 가서 미안해』는「권남연」이 짓고, ‘꿈꾸는 발자국’에서 2015년에 발간했다. 130×400mm 판형에, 394쪽, 16,600원 짜리 책이다. 재수 좋게도 대구 동성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7,900원을 주고 샀다. 이 멋진 책이 날 기다려주었다니, 행운이 책방에도 따라 다닌다. 어쩌겠나, 따라 온다는데.
선입견이란 용어가 있다. 머리말을 읽다보면, 혹시, 저자 권남연이 ‘불량 새댁’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결하여 ‘작품도 보나마나 뭐 그렇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아주, 아주 큰 실수를 하는 거다. 이 책을 손에 들면 화장실 가는 것도 늦잡게 된다.
이제 슬슬 머리말, ‘여행을 떠나며’로 들어가 보자. 10포인트 글자로 3쪽이다. 눈이 시린 사람은 돋보기를 휴대해야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재작년 봄이었다. 신랑과 나, 강아지가 평화롭게 살던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이사를 왔다. 신랑의 할머니, 즉 내게는 시할머니가 되는 분이시다. 시할머니는 신랑을 낳지만 않았을 뿐 어릴 때부터 신랑을 키워주신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되셨고 우리와 함께 살고 싶다고 의견을 전해오셨다. 당연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 식구의 일원으로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
여기서 중심 낱말은 뭘까. 아무래도 ‘신랑을 키워주신 분’인 것 같다. 그 분이 시어머니가 아니고, 시할머니란 게 쟁점의 시작일 조짐이 보인다. 강아지는 눈치 보느라 조용히 있었을 거고, 시할머니는 예쁜 손자며느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오버를 좀 하셨나보다. 그래서 어째 됐을까?
나와 시할머니의 나이 차는 56년, 6⋅25는 물론 일제 강점기까지 겪은 분이니 함께 사는 게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것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중략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갈등은 피해갈 수 없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눈물 바람이 불었고, 나는 점점 스트레스에 시달려 갔다. |
아이고, 야. 어째나 모르겠다. 세대차가 뭔지, 야속도 하구나! “내리 사랑”이란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오른다. 하지만, 섣부른 짐작은 금물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겪어 보지 않고 속단을 하면 곤란하다. 성공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회장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봐, 해봤어?” 여기선 뭐라 하겠나? “임자, 겪어봤어!”라고 할 것 같다.
만약, 시할머니와 새댁 사이가 깨소금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이 책은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겠지? 그래서 두 사람이 잘 싸웠다는 말인가? 못 싸웠단 말인가?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고, 말을 꺼내 놓고 봐도, 어째 애매모호하다. 그냥,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이 책을 못 본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하는 그런 말씀이다.
그러다가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시할머니가 오시자마자 월경이 멈추더니 1년 가까이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다. 원인 모를 피부 트러블도 몸 곳곳에서 나타났다. 당시 우리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마음먹었지만 월경이 멈추면서 계획은 엉망이 되었다. ~중략, 산부인과를 다녀오고 며칠 뒤, 집안에 또 한 번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시할머니와의 갈등을 참다못해 결국 가출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
점입가경이다.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게 되고, 아기 갖는 꿈도 수포로 돌아가고, 뭐 하나 희망적인 일이 없다. 오호통재라! 세 사람이 사는 집에 바람 잘 날이 없구나! 이래다가 콩가루 집안이 될 것 같은데? 아니다, 말씀은 가출이지만, 절대적으로 그렇지가 않다. 쿨한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전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남편에게 마이크를 돌려보자.
“할머니 때문에 도저히 못 참겠으면 혼자라도 여행을 가. 장소가 어디가 됐든, 기간이 얼마가 됐든, 내가 책임지고 보내줄게.”
“햐~” 이 정도 남편이라면 영국 신사가, “아이고, 야. 형님으로 모시겠사옵니다!”, 할 것 같다.
나는 신랑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번개 같은 속도로 여행을 진행시켰다. 여행지를 선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유럽의 나라들이 차례차례 리스트에 올라왔고 터키와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한 번도 가지 못한 나라들이 일정에 포함되었다. 여행 기간은 최대한 길게. ‘솅겐 조약’으로 제한된 90일을 꽉 채워 3개월 이상 계획되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고 싶은 이유에서다.
쪽 맨 밑에 이런 해설이 있다. [‘솅겐 조약’: 유럽연합 회원국 간에 체결된 국경개방조약. 회원국 외의 국민이 솅겐 조약 가입 국가를 방문할 시 첫 입국일 기준 90일 내에 여행을 마치고 출국해야 한다. 그 이상 머무를 경우 해당 국가의 비자가 필요하다.] |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랬을까? 그냥 90일은 들어봤지만, 그 ‘솅겐 조약’ 땜에 그렇다는 건 처음 알았다. 90일을 채운다. 하긴, 이왕 가는 먼 거리 여행,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생각도 하고, 정리도 하고, 하다보면 90일은 잠깐이다. 합당한 계획인 것 같다. 하지만, 새댁의 뒤통수가 약간은 땡기기도 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처음에는 그저 신이 났다. 시할머니의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참견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여행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정말 혼자서 여행할 수 있을까? 너무 기분대로 결정한 건 아닐까? 조금씩 겁이 나고 걱정이 되었다. |
그렇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트일 것 같은 그 기분 잘 안다. 혼자 여행 한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일이 이렇게 진행될 때, 세월호 침몰이 있었고, 불길한 꿈을 꾼 동생이 누나의 여행을 적극 막는다. 참말로 뭔 일이 등나무 꼬이듯이 꼬일까! 새댁의 발목을 잡는 일에, 그녀는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여행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할머니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할머니를 쫓아낼 순 없고, 내가 신랑과 이혼도 할 수 없으니, 여행은 가장 합리적인 나의 도피 수단이었다. |
새댁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최선책은 모두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차선책이라도 해야 한다. 바로 여행이다. 그 여행조차 불안하지만, 그래도 도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 아닌가. 끝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지 읽어보자.
시할머니와 갈등으로 결심한 여행. 어떻게 보면 떠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여행의 목적이 여행이 아니었고, 집을 떠난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 마음의 치유는 그에 뒤따르는 기대 옵션 같은 거였다. 그래서 이 여행이 더욱 불안했는지 모른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여행. “도피의, 도피에 의한, 도리를 위한” 여행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 두 있을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
드디어, 새댁은 자기의 심경을 솔직히 털어 놓는다. 애초에 여행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인데, 어쩌다가 여행으로 발전했나를 이야기 한다. 친지, 가족들의 기쁜 환송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여행이 아닌가, 상황을 모면하려는 여행길에 그녀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여행을 하면서 그녀의 쌓인 감정은 봄날에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없어질 것 같다. 나는 그녀의『혼자 가서 미안해』를 읽으면서, 새댁의 재미있는 글과 생생한 사진의 여정에 빠져 갈등은 무슨 갈등? 하면서 머리말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끝. 2020.3.12.목.
2020.3.17. 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첫댓글 권남연이란 젊은새댁 작가.
내가 디기 부러워하는 작가가되었네
그 답답한 일상에서의탈출을 용감히 해낸 용기가 부럽고혼자서도 유럽을 여행할수있는 능력이 부럽고
젊은 나이도 부럽고,,,
나중에 한번 꼭 읽어보고싶은 책
소개해주어 고마와여.
코로나 때문에 여기서만 보내. 반가워, 명희!
속으로 나도 그랬어. 콩가루든 아니든 어쨌든 간에, "혼자서, 그것도 새댁이, 우리나라도 아닌, 그 먼 유럽 동네까지 갔네, 참말로! 그리곤 능청스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재미있는 여행기를 내놓고 말이지.
명흰 지금도 충분히 갈 수 있지. 94/100을 채운 의지와 용기로 더 잘 할거야. 젊은 나이 부럽다고 하지만, 명희는 60 이면서 괜히 그러신다. 코로나 풀리면 6좌 등정도 하고, 가려고 꿈꾸던 남미도 다녀오고 해. 응원해줄게. 낸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