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님께서 쓰신 "줄탁동기"는 "줄탁동시"의 誤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르테미스님의 잠깐 실수를 꼬집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용서해주세요 꾸벅~)
줄탁동시는 쪼을줄(口+卒, 한자를 찾을 수 없어 그냥 입구자에 마칠 졸자를 합쳤습니다.) 쪼을탁(啄), 같을 동(同), 때시(時)의 사자성어입니다.
이 용어는 옛 선사들이 흔히 썼던 비유로서 참으로 좋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미닭이 새끼를 부화하기 위해 알을 자신의 따뜻한 품으로 품습니다.
어미의 따뜻한 체온으로 수정란은 점점 병아리의 형태를 갖추며 성장하고
비로소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갈 때가 되었을 때 그 연한 부리로 안에서 "나가자고 나가자고"
쪼아댑니다.
그 쪼아대는 소리를 듣고 어미닭이 비로소 나올때가 되었음을 알게되어 그 강력한 부리로
탁 쪼아주며 병아리라는 새 생명을 탄생시켜주는 혁명적인 사건의 순간을 말하지요.
연한부리의 쪼아댐과 어미닭의 튼튼한 부리의 쪼아댐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생명이 열리는
비유를 한것이지요.
어미닭의 쪼음이 없다면 병아리의 연한부리로 그 두꺼운 달걀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없기도
하지만, 병아리의 연한 부리로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어미닭이 쪼아줄 때를 놓쳐 결정적인
순간을 만날 수 없었겠지요.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고...그 때를 아는 것은 병아리
자신 뿐 병아리가 알려줄 때 가장 적절하게 잘 익어 비로소 나올 수 있을 때...그 때의 한쪼임...
그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요.
비단 이것은 선객들 뿐만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모든이들에게 해당되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비유를 다석선생의 명상록(박영호편)에서 우연히 보고 너무도 감명을 받아
오래동안 새겨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둠을 뚫고 나가자고 나가자고 몸부림을 쳐야합니다. 그 때 비로소 생명의 저쪽에서 뚝
쳐주는 부리소리를 들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늘푸른숲님! 왜 죄송하다고 하십니까? 틀렸으면 제가 얼른 고치면 되는데요.저는 그 한자까지는 잊어버렸는데, 데미안에서 아브락서스에 대해서 읽다가, 이번에는 물소리님 글 읽다가 생각나서 엠파스에서 찾아보니,기로 나와서 썼는데요.정확히는 모르겠어요.얼벗님 고맙습니다.그것까지 다시 살펴 주셔서..
늘푸른숲님, 아르테미스님,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선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선불교도 완전히 "자력종교"는 아니라고 가르쳐왔는데, 그걸 한문으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불교사전에는 "졸琢동機"로 나왔네요.)
첫댓글 줄탁동기, 줄탁동시, 말이 뭐 중요하겠습니까만... 저도 박영호선생님의 책에서 봤습니다. 취해서인지 막상 찾으려니 정확한 페이지를 알수가 없지만 '줄탁동기'라고 분명히 본 기억이 나네요. 다른 곳을 찾아 보니 '기', '시' 다 쓴다고 합니다...
늘푸른숲님! 좋은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석선생님의 명상록에서 찾아보고 새김하겠습니다.저가 며칠전 보내드린 이메일 회신 기다립니다.
늘푸른숲님! 왜 죄송하다고 하십니까? 틀렸으면 제가 얼른 고치면 되는데요.저는 그 한자까지는 잊어버렸는데, 데미안에서 아브락서스에 대해서 읽다가, 이번에는 물소리님 글 읽다가 생각나서 엠파스에서 찾아보니,기로 나와서 썼는데요.정확히는 모르겠어요.얼벗님 고맙습니다.그것까지 다시 살펴 주셔서..
늘푸른숲님, 아르테미스님,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선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선불교도 완전히 "자력종교"는 아니라고 가르쳐왔는데, 그걸 한문으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불교사전에는 "졸琢동機"로 나왔네요.)
불교 사전에는 '졸탁동기'라고 되었는데, 이제 옥편을 보니 '줄탁동시'라고 되었군요.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 한국 불교에서는 '체'를 '제'로 발음하는 등 발음법이 일정하지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그런 경우인가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