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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에게 문안하라
롬 16:7-11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롬 16:7-11 / 나의 친척이며 나와 함께 옥에 갇힌 일도 있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도 문안해 주십시오. 그들은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로 사도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8)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암블리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9) 그리고 나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10) 주님을 위해 숱한 고생을 겪은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의 가족들에게도 문안해 주십시오. 11) 나의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해 주시고 나깃수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문안해 주십시오.
바울이 문안하는 친척은 피를 나눈 혈족이라는 뜻이란, 같은 민족을 뜻하기도 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7) 이들은 유대인 부부 사역자로서 바울이 회심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이 된 신앙의 선배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일반 사도들에게도 존중히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던 많은 사역들이 많이 알려져 있는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8-10) 바울이 주 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아는 당시 황제 가문의 노예들이 가진 흔한 이름 중의 하나로서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빌 4:22). 바울의 동역자 우르바노와 바울이 사랑하는 스다구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바울과 함께 복음 전도를 위하여 함께 동역하던 각별한 사이로 보입니다. 바울이 인정한 아벨레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신앙을 지켰으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성도였습니다. 바울이 아리스도불로가 아닌 그의 권속에게 문안하라고 한 것은 아리스도불로가 아닌, 그의 집안에 있는 노예들이 성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리스도불로가 헤롯 대왕(주전 73-74년경)의 손자이자 헤롯 아그립바(주전 10년-주후 44년)의 형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헤로디온, 나깃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에게 문안(11) 바울의 친척인 헤로디온과 나깃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가족 중에서도 주 안에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나깃수의 가족은 나깃수의 집안에 있는 노예들을 가리킵니다. 어떤 학자들은 나깃수가 글라우디오 황제(주후 41-54년)를 섬겼고, 네로가 황제가 되었을 때(주후 54년)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미나에 의해 자결하도록 강요받았던 부유한 자유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당시 교회 안에는 주인과 노예가 상존하였으나, 주 안에서는 어떠한 신분의 귀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한 것입니다(고전 7:21-23; 엡 6:5-9; 골 3:22-4:1; 딤전 6:1-2).
적용: 주 안에서는 신분의 귀천이 없습니다. 주 안에 있는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운 역사들이 이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그렇게 협력해주는 이들을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당했던 이들,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이들, 교회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호크마 주석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 )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9:3에서처럼 '골육'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Lenski, Murray). 또한 이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소개한다(고후 6:5;11:23).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 )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된 자'란 뜻이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브루스(Bruce)는 그곳이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 '사도에게'를 가리키는 헬라어 원문은 '엔 토이스 아포스톨로이스'(* )로 복수 여격을 취하고 있다. 이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의미도 있지만(Kasemann) 넓은 의미로 보면 주님이 직접 세운 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사도를 지칭하는 '아포스톨로스'(* )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셔서 세우신 열두 사도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제자들도 포괄하여 의미하기 때문이다(고후 8:23;빌 2:25, Dunn, Bruce). 또한 칼빈(Calvin) 역시 여기서는 제자들의 개념을 확대 적용해서 사도들처럼 여러 곳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유명히 여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세모이'(* )는 '에피 세마'(* , '도장을 찍은')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마 27:16에서만 사용되었다. 본절에서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혹은 '뛰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쁜 의미로 '소문난', '이름난'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 두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고)이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으 사역을 돕는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이다(Murray).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를 말해준다(Lenski).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回心)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Murray).
=====16:8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 어떤 사본에서는 단축형 '암플리아스'(* )로 기록되기도 한 '암블리아'는 라틴식 이름 '암플리아투스'(Ampliatus)의 축소형이다(JB, NIV, RSV). 이 이름의 뜻은 '큰' 또는 '많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이름은 당시 로마에서는 흔했으며 특히 황제의 가문에 많이 사용되었다(Bruce). 초기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의 비문에도 이런 이름이 발견된다.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매우 다정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특별히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바울과 그의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이 깃든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16:9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 '우르바노'(* , 우르바노스)는 '세련된', '우아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의 이름이다(Godet, Hendriksen, Murray). 바울이 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 , 스타퀸) - 신약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나의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도 역시 바울 사도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던 자로서 암블리아와 같이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의 성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이름이 귀족의 비문(碑文)에 나타난 것을 볼 때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라고 여겨진다(Gifford).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벧레(* , 아펠렌) - '특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또한 황제 가문이나 로마인들 사이에도 종종 발견되는 이름이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톤 도키몬 엔 크리스토'(* )로 여기서 '도키몬'(* )은 아벧레가 어떤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단단히 받았음을 시사한다(Lenski, Murray). 이것으로 보아 그가 자기에게 임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Agrippa)와 형제였다(Dunn). 당시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며 또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친구요 추종자였으며(Josephus),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Meyer).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歸屬)되어 그들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의 노예들과 자유인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Dunn). 혹자는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추론한다(Lightfoot). 즉 바울은 그의 권속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리스도불로 아래 있었던 노예들과 일꾼들이었을 것이다.
=====16:11
헤로디온 - 바울은 7절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처럼 '헤로디온'도 자기의 '친척'이라고 부른다.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 )는 7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가까운 '유대인 동료',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뜻한다. 윌리암 람세이(William Ramsay)는 '헤로디온'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척이 아니라 다만 바울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유대인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헬로디온은 아리스도 불로의 권속처럼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Murray).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족 중 대부분이 현재는 비록 복음을 거절하고 있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1:1-6).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나깃수(* , 나르킷수)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나르킷수스(Tiberius Claudius Narcissus)라고 하였다(Calvin, Lenski, Bruce, Murray).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의 노예의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권모 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부자였다고 한다(Gifford).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자로 A.D. 54년에 네로(Nero)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Agrippina)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Lightfoot). 그의 죽음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기 위하여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처럼 '나르키시아니'(Narcissiani)라는 명칭을 붙였다(Bruce). 권모 술수에 능하고 극악 무도한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 권속들 중의 일부와 노예와 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바울은 나깃수의 권속에 속한 종들로서 그리스도인된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하고 있다. 이는 나깃수의 권속 중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는 어구가 지지해 준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설 교 >
내 마음에 각인된 이름
로마서 16:6-16 / 오정호 목사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인생은 관계라고 저는 정의하고 싶습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관계에는 아픈 관계와 좋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생애 가운데서도 그의 삶에 아픔을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디모데를 향한 사랑담긴 편지지만 또 유언적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구리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의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딤후 4:14-15절) 알렉산더라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고 복음을 대적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에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가 바울의 마음에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또 있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 4:10)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서 교회를 버리고 사도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에 잊혀 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로마서 16장에 약 서른일곱 명의 개인의 이름이 거론이 됩니다. 이들은 평신도들입니다. 사도바울과 동역했고 바울에게 기쁨을 준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목사들 몇 명만 잘해서 안 됩니다. 교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평신도들이 로마서 16장에 소개된 사람들처럼 올바로 소명을 발견하고 깨어나게 될 때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중 세 가지.
1.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그 사람이 주신 모든 것이 동결됩니다. 그에게 주신 지혜, 은사, 재능, 탤런트들이 묶여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부모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지만, 부모 때문에 늘 두려움에 눌려 있게 되면 나중에 사회에 부적응자가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두려움의 사슬로부터, 그 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가운데 우리를 묶고 있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기를 바랍니다.
2. 분노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분노가 사랑을 지배하면, 나타나는 것은 파괴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분노는 나도 죽이고, 상대방도 죽이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성격이 그래” 라고 하는 사람은 성격까지도 십자가 밑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면 성격적인 면도 주님이 씻으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노는 열정과 통합니다. 분노가 많은 사람이 변화 받으면 열정 있는 주의 사람으로 변화 받습니다. 분노와 열정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결과는 다릅니다. 열정은 생산적입니다. 분노는 서로 죽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혹시 분노가 자리 잡은 것이 있으면, 주의 보혈의 은혜로 분노가 변하여 사랑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3. 유혹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유혹과 항상 같이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대적 사탄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대하여 유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뛰어 넘어야 됩니다. 치우치는 것에서 정도를 걷기 위해서 힘써야 되는 것이지, 우연히 잘되는 교회와 부흥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는 유혹들을 분별해내는 안목을 주시고, 그 영을 떨쳐 버리는 영력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영력이 있어야 우리에게 오는 두려움과 분노와 유혹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과 분노와 유혹에 굴복하면서 살면 사람은 자존감을 상실해서 “나는 가치가 없는 존재인가 보다,” 자포자기합니다. 자포자기한 사람에게는 어떤 약도 들지 않습니다. 희망의 불이 꺼진 다음에 무엇을 가지고, 마음속에 희망의 불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사도바울도 마음의 분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유혹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눌리지 않았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야 되는 것인가를 늘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 이런 사람들, 즉 생산적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의 명단을 열거 했습니다.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❶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관계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사랑이 있어야 다른 것이 빛이 납니다. 다른 것 다 갖추었는데 사랑이 빠져버리면, 불완전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 모든 것은 완성이 됩니다. 우리 결혼 생활, 부부간의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8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9절) 사랑을 받으면 영혼이 미소 짓고, 영혼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죄인인 영혼이 찌들어 있거나 눌려 있을 때 어떻게 다시 생기를 가질 수 있는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쬐는 만큼 그 영혼이 주님 앞에서 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이 사랑을 유통하는 교회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남교회하면 사랑이 충만한 교회,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교회라고 이웃에 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❷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인격과 사명을 수행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6절) 마리아라는 여성은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물질을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인격이 검증되었고, 사명을 수행할 때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과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인격적인 면에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들, 사명을 탁월하게 수행함으로 모두가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❸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입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아드로니고,”(7절) 함께 같이 있다는 것은 투옥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위하여! 온 몸을 던져 수고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10절) 인정함을 받았다는 것은 수고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고 검증되고, 그 인격이 아름답게 세워졌다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 보니까 교회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땀을 흘렸습니다. 적당한 선에 있지 않았습니다. 헌신에 열매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과 직분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주의 교회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헌신한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사람. 그것을 가리켜 영생의 관계라고 합니다. 10-12절에도 계속해서 “주안에서”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동일한 영생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슴에 남습니까? 주안에서! 생명을 공유한 사람,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영원히 남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기억에 남아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이천년 동안 계속해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무명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주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혹시 사람들은 못 알아주고, 혹시 나를 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뜨겁게 사랑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십시다.
○○○교회는 신뢰와 사랑의 공동체로 든든히 서가기를 소원합시다.
나 자신과 우리 가정을 통하여 공동체의 건강성에 힘 있게 기여합시다.
대 사회적인 신뢰와 아름다운 평판을 통하여 생명의 복음을 확산시킵시다.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
롬 16:1~23 / 양은익 목사
로마서 16장을 읽었는데 좀 지루하셨지요! 이름이 많이 나오는 장은 설교하지 않는 게 설교자들에게는 불문율인데 신약에서 족보 빼고 가장 이름이 많이 나온 장을 다 읽었습니다.
16장에 보면 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름을 나열한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하는 권면 내지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26명의 이름을 한사람씩 호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설명드리겠지만 ‘문안하라’고 하는 바울의 마음은 상당히 절박하고, 간절합니다.
바울이 지금 문안하라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문안하라는 것입니까? 3절에 보면 ‘너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너희’가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바울이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로마 교회 성도들, 그 ‘너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도 문안하고, 마리아에게도 문안하고, 암블리아에게도 문안하고, 우르바노와 스다구에도 문안하고. 문제는 서로 문안해야 할 로마의 성도들이 문안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반목하고 있고, 마음이 멀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편이 갈라져 있습니다. 한쪽은 보수파, 다른 한쪽은 진보파. 보수파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고, 진보파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두 진영이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때의 로마 교회 주도권은 이방파가 잡고 있었습니다.
49년까지는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49년에 클라우디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킵니다. 그 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54년 네로 황제가 추방령을 풀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추방되지 않았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교회의 주도 세력이 되있었습니다.
강자가 된 이방파 그리스도인들은 약자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방식에 대해서 폄하하고,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약자가 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정결법과 안식일 법에 대해서 무시하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면서 갈등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로마 교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6명 중에서 유대인이 5명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체 로마 교회 명단은 아니지만 전체로 따져도 15%~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방 당한 사이에 교회의 주도권이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로 넘어가 있는 게 확연히 나타납니다.
사람 있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는 숱한 갈등이 있습니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갈등이 있고, 오래된 교인과 새로 들어온 교인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갈등이 있는게 교회 현장인데 이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바울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바로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 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그들을 만나, 스페인 선교의 후원자가 되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그토록 중요한 로마 교회가 갈등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서 방문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살아 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은 16장입니다. 갈등하고 있는 그들에게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1장에서부터 15장까지 서술했다고 봐도 됩니다.
사람은 웬만하면 화해하지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을 만나본 바울은 문안을 말하기 전에 문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너희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너희들은 행위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이다. 너희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성령의 은혜가 있으니 갈등과 혐오로 상처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롬12:1~2)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해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12:10). 할수 있거든 모든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라(12:18).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받아주고, 비판하지 말라(14: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자(1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16장과 로마서를 연결해 보면 그대로 맞아 떨어집니다. 바울은 갈등하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문안은 마음에도 없는 겉치레 문안이 아닙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고, 복음 안에 있으니 그만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welcom. 환영하라. 평화하라. 사랑하라. 연합하라. 긍휼을 베풀라.
‘문안’은 깊이 들어가면 사랑이고, 격려고, 인정함이고, 관심입니다. 이러한 문안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살아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바울은 ‘문안에서’ 부터 그들의 갈라지고, 갈등하는 마음, 주도권에 매여 있는 세상적인 마음이 없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문안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들고, 유지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문안의 마음과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문안이 어렵고, 힘들수록 살아있어야 합니다. 문안이 없는 삶은 위험한 삶이고, 위험한 사회입니다. 환영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회와 가정과 교회는 온전히 설 수 있게 됩니다.
■ 한 문장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내 정원에 증오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에 85세로 정계를 은퇴한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증오가 있을만한 사람인데 증오를 키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게릴라 출신으로 우루과이의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민주화 투쟁을 하다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52% 지지율로 당선된 사람이지만 퇴임할 때 지지율은 65%였다고 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분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는지. 13년간을 감옥에서 고문당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신을 고문한 군부에 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숙인들에게 대통령 궁을 내주고, 자신은 농장 주택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하고 친근한 대통령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 증오를 키웠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안을 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문안을 거부하는 사람이 작은 사람입니다. 문안 속에 함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 마음을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처럼 살려내야 하고, 우리 자신이 살아내야 합니다.
문안에도 때가 있습니다. 문안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힘들어도 문안하고, 감사하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그게 밑천이 되서 내 마음의 정원에 꽃 피듯, 사랑이 피고, 감사가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귀하고 복된 마음이 여러분들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세상은 뭐라해도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사랑이고, 환영이며 포용입니다.
이정록 시인이 한 마디 남긴 게 있습니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번 더 보는게 나은 거다’(이정록, 가슴 우물) 문안의 마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설 수 없다는 것, 기억하십시다.
요즘, 여러분들의 문안은 어느 정도이십니까? 문안하고, 문안받고, 또 문안하고 문안받으며 코로나 시대를 힘차게 이겨나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나의 친척
롬 16:7, 11 / 이진업목사
서론: 내 친척(언약의 흐름, 그리스도 안에, 주 안에)
(1) 재앙 막는 오직의 답-제사장
(2) 흑암 꺽는 유일한 답-왕
(3) 지옥배경을 해결하는 재창조의 답-선지자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리스도의 일(마12;46-50)
(1) 창 3:15 여자의 후손
(2) 출 3:18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3) 사 7:14 임마누엘
(4) 마 16:16 그리스도의 일
(5) 요 19:30 다 이루었다 선언
2.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약속-임마누엘
(1) 영원한 정답-그리스도의 이름(행 1:1, 행 4:12)
(2) 유일한 해답-하나님의 나라의 말씀(행 1:3)
(3) 완전한 방법-성령충만(행 1:8)
3. 그리스도 안에. 주 안에서. 내 친척안에 있는 축복(롬 1:16-17. 행 1:14)
(1) 요 14:16-17
(2) 요 14:26-27
(3) 요 14:13-14
(4) 히 1:14
(5) 눅 10:19
(6) 빌 3:20-21
(7) 행 1:8
결론-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거니와(롬 1:16-17, 행 1:14)
(1) 각인치유 -응답
(2) 뿌리치유 -열매
(3) 체질치유 - 삶
나의 친척(롬 16:7, 11)
▶로마서-하나님의 복음(롬 1:1-4, 롬 1:16-17)
▶롬16장은 바울과 함께 중요한 흐름 속에 함께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오늘 “나의 친척”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친척이란 말이 중요한 흐름 속에 같은 동질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바울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큰 강물이 흘러가는 길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텔레비젼을 보니 북한에도 이 흐름을 잘 타는 사람들은 이미 정부가 인정할 만큼 자본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돈주”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북한에서 남이 못 보는 흐름을 본 사람들입니다. 중국 단둥에 가면 연간 수 천 만원 학비가 드는 국제학교가 있는데 그 중에 30%가 북한학생들인데 바로 북한 “돈주”들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북한이 통일하려면 먼저 경제 통일부터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면 안 되듯이 성경에도
(1) 시대마다 복음의 흐름, 언약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창 3:15, 창 6:14, 창 12:1-3, 출 3:18, 사 7:14, 행 1:14)
(2) 말씀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강단메시지)
(3) 기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 롬 16장에는 37-38명의 평신도 사역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은 이들에게 한 7가지 별명을 붙여서 안부를 전달해달라고 당부합니다.
① 나의 보호자 뵈뵈. ②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③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 암블리아. 스다구, ④ 복음을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 드루베나, 드루보사, 버시, 그리고 오늘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은 유대인으로 바울이 예수 믿기 휠씬 이전 먼저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사람이었고, 나 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한 것은 사도 바울인 인정할 만큼 복음에 깊은 각인과 뿌리와 체질이 된 사람인 것을 의미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복음과 전도를 위하여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받은 바 있으며, 이 분들이 얼마나 복음과 전도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지 사도들에게 잘 알려지고 존중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분들에게 별명을 붙혀주기를 이들은 “나의 친척”이라 할 만큼 그 정도로 깊은 애증의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에 헤로디온에게 문안하고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하였는데 당시의 로마 교회 성도 중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쟁쟁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안부를 전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9절에 나오는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라 했는데 이 스다구는 로마의 황족이요, 10절에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란, 우리가 잘 아는 헤롯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와 형제관계에 있던 아리스도불로가 죽자, 글라디오 황제의 집으로 들어간 가문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나오는 헤로디온은 바로 헤롯왕의 가문의 사람이었고 ‘나깃수의 권속’에게 문안하라고 했는데, 이 나깃수는 글라디오 황제의 비밀문서를 관리하던 특보, 비서가 된 사람으로, 그 가문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쟁쟁한 사람들이 이미 로마교회 안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한 평신도 사역자들인 것입니다.
▶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주 안에 있는. ”나의 친척“ 이런 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주 안에 있는, 나의 친척,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국 막을 수 없는 문제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나 어느 날 반드시 찾아오는 영적인 문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왜 막을 수 없습니까?
① 엡 2:1-그 영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 모르고 종교인들이 절대 이정하지 많습니다. 무슨 소리 하냐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내가 왜 죽어 있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분명한 증거-분명히 존재하는 영적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영적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영적존제이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영적문제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경은 영적인 것을 기록한 영적인 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이 영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나를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그래서 엡 2:2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운명에 매어 무엇을 하든 일평생 종노릇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모든 선한 행위, 모든 과학 지식 철학. 다 좋은 것이지만 그러데 이 영적문제만 해결이 안됩니다.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분명합니다. 다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다 포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③ 엡2:3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괴로워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전히 사로잡혀 자기 뜻대로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전히 들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중요한 이 언약의 흐름속에 들어와 복음의 친척이 된 사람은 그 운명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요 5:24. 고후 5:17)
▶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날부터 모든 흑암에서 해방됩니다.
어제는 우리 민족이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라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 안에 거하면, 중요한 언약의 흐름 속에 들어온 복음이 친척이라면 완전히 흑암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는 반드시 어느 날 영적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사단의 존재가 안 보이십니까?(IS의 만행, 유명한 배우 자실사건.)
우리가 이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셔야만 했을까요.(종교)
예수님의 교훈, 기적, 복음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예수 공로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에 3년 동안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이 언약을 붙잡으면 상상하지 못할 축복을 받게 됩니다.
헤로디온은 아주 악한 헤롯왕 가문의 사람이었고. 나깃수의 권속은 글리디우스 황제의 비밀문서를 담당하던 비서진들입니다. 도저히 복음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제자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 안에 있으면, 중요한 흐름속에 있으면 새로운 응답을 받게 됩니다.
▶ 예수님에게 어느 날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한 제자가 보십시요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정색을 하시며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르키면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아머니이니라 하셨습니다.(마 12:46-50)
누가 오늘 나오는 친척이라는 별명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공생애의 결론을 아는 자입니다.
(1) 창 3:15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2) 출 3:18 희생 제물로 오셨습니다.-어린양
(3) 사 7:14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4) 마 16:16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5) 요 19:30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2.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주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최고의 약속은 임마누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정답-그리스도의 비밀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이름 (행 1:1)
(2) 유일한 해답-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행 1:3)
(3) 완전한 방법으로-그러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행 1:8) 이 약속을 붙잡은 초대교회는 실제로 최고의 응답을 누렸습니다.
3. 우리도 이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오직 믿음으로(롬 1:16-17)
(1) 요 14:16-17
(2) 요 14:26-27
(3) 요 14:13-14
(4) 히 1:14
(5) 눅 10:19
(6) 빌 3:20-21
(7) 행 1:8
결론 -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거니와
(1) 각인 치유-응답
(2) 뿌리 치유-열매
(3) 체질 치유-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