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옥 교수의 한국선 이야기 1. 선승의 삶
선승 일대기 부처님 일대기 닮아 선승 삶, 부처님 삶 반복 & 변주 변주, 시절인연 적용한 방편의미 선승의 삶 변곡점 찾아 소개예정 |
우리나라 문화에서 선승의 일대기나 수행담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깊은 감동을 동반하며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선승의 수행담은 그 긴장과 흥미, 혜안과 충격 면에서 눈부신 광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 수행자에게 수행의 길잡이가 되고 일반대중들에게는 진지한 삶의 길잡이가 된다. 수행담은 거듭 이야기되면서 더 극적으로 만들어지거나 더 그럴듯하게 꾸며져 덧붙여지기도 했지만 일정한 도를 넘지는 않는다. 그것은 실존한 선승의 경험을 모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승의 일대기나 수행담에서 이야기 자체를 즐길 뿐 아니라 그 이야기의 출발이 된 선승의 삶과 수행의 태도 및 방법을 지속적으로 떠올리면서 어떻게 한생을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을지 거듭 사유하게 된다.
선승이라는 존재와 그 일생은 우리 주위의 보통사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게 보일 때가 많다. 선승이란 본래 특별한 면이 있었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모든 것을 뿌리 뽑고 잘라내서 스스로를 탈바꿈하고 혁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선승은 가끔 우리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선승을 향해 무턱대고 환호를 보내기도 하지만 우리 업의 수준에서 오해를 하기도 한다. ‘비범한’ 선승과 중생인 나 사이에 아득한 심연이 있음을 인정하고는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승이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각하는 정도나 관점에서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선승의 삶은 부처님이 보여주신 모범의 테두리와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을 선승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거기서 부처님의 일생을 확인할 수 있는가 없는가인 것이다.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이야말로 선승의 수행담에 대한 사유의 출발과 귀결점이 되어야 하겠다.
부처님의 전생과 현생은 〈자타카〉, 〈태자서응본기경〉, 〈증일아함경〉, 〈보요경〉, 〈수행본기경〉, 〈사분율〉, 〈석가보〉, 〈석가씨보〉, 〈불소행찬〉 등 경전이나 고승의 저술에 기록되어 있고, 〈팔상록(八相錄)〉에 요약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운묵 스님이 한문서사시 〈석가여래행적송〉에 부처님의 일생을 담았으며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는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등 국문으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상세히 소개했다.
‘팔상(八相)’은 부처님 일대기 중 뜻하는 바가 가장 크고 깊은 대목을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팔상도’ 계통의 그림을 그려서 팔상을 인상적으로 제시해왔다. 첫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 도솔천에 계시던 부처님의 전생 호명보살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속세 중생을 측은히 바라보시고 하얀 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는 장면이다. 둘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으로,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를 잡은 어머니 마야부인의 오른쪽 겨드랑이로 탄생하시는 장면이다. 셋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으로, 동서남북의 성문으로 나가 생로병사의 세상을 관찰하고 북문의 출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기로 결심하시는 장면이다. 넷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으로, 궁궐의 연회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틈을 타 성을 나가 출가하는 장면이다. 다섯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으로, 설산 깊은 곳에서 6년 동안 고행으로 수행하는 장면이다. 여섯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으로, 보리수 아래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장면이다. 일곱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으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만나 처음으로 깨달은 바를 설법하는 장면이다. 여덟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45년 동안의 중생제도를 끝내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이다. 요약하여 표현하면 ‘태몽 → 탄생 → 유관 → 출가 → 수행 → 득도 → 설법 → 열반’이 될 것이다. ‘태몽’에서 현생의 바탕과 출발점으로서의 전생을 얼핏 보여줄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일생을 암시한다. ‘탄생’은 앞으로 전개될 일생이 얼마나 귀중하고 찬란한 것일까를 암시한다.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스러워하니 내 마땅히 그를 편안하게 하리라’는 아기 부처님의 첫 말씀이 그것이다. ‘유관’은 생·노·병·사의 고통과 그 해결이라는 출가의 구체적 계기를 제시한다. ‘출가’는 세속의 부귀영화가 부질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출가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수행’은 자기 생명을 던지는 치열함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득도’는 깨달음이란 숭고한 혁신이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설법’은 그 깨달음의 궁극 목표가 중생제도에 있으며, 중생제도로 나아가지 않는 깨달음은 의미가 없음을 가르친다. ‘열반’은 육신의 죽음 앞에서 여여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주시는 자비심을 보이신다.
팔상으로 요약되는 부처님의 일생은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고 흠모하고 그것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불교수행자에게 언제나 귀감이 된다. 그래서 다들 부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선승의 일대기가 부처님 일대기를 닮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나라 선승의 일대기나 수행담은 고려시대 각훈 스님의 〈해동고승전〉,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동아시아 각국이 ‘고승전(高僧傳)’을 써서 자국 고승의 내력을 독자적인 방법으로 서술하고자 한 흐름 속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열전에 승려의 전기는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과 시정의 뜻이 서려 있기도 하다. 〈해동고승전〉은 선승의 수행과정이나 깨달음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반면 〈삼국유사〉는 선승들의 높은 깨달음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일연 스님은 신라 말 도의(道義)선사가 선종을 개척한 가지산파의 법통을 이은 분이다. 가지산파는 선문구산(禪門九山,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서라벌에서 먼 지방에서 일어났던 선종의 9개 종파)의 하나로, 귀족불교의 위세에 억눌려 있다가 고려 후기 선종이 활력을 얻자 함께 번창했다. 〈삼국유사〉도 이런 불교사의 전개 과정에서 저술된 것이다. 〈삼국유사〉는 선승의 일대기는 물론 선승의 일화를 통해 깊은 불교적 의미를 함축하는 불교설화를 많이 싣고 있다. 여기서는 원효, 의상, 혜공, 혜숙 등 고승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평범하거나 비속한 행동을 통해 비범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곤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억불정책에 의해 선불교도 심히 위축되었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청허(淸虛), 부휴(浮休), 서산대사 등을 통해 선교(禪敎)의 가르침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백파(白坡, 1767~1857)는 〈선문수경(禪文手鏡)〉을 저술하여 선론(禪論)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초의(草衣, 1786~1866)와 우담(優曇, 1822~1881)이 비판적 의견을 내자, 백파의 4대 법손인 설두(雪竇, 1824~1889)가 〈선원소류(禪源遡流)〉를 써서 백파의 설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 후 축원(竺源, 1861~1926)이 〈선문재정록(禪文再正錄)〉을 지어 백파와 설두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 선불교가 간간이 제기된 논쟁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가던 상황에서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이 등장했다. 경허 스님은 조선불교의 쟁론이 보조(普照) 이후의 간화경절(看話徑截, 화두를 통해 곧바로 깨닫는 방법)의 입장에서는 벗어나고 있다고 주창하며 스스로 수행하고 깨달아서 관념적 쟁론을 극복하고자 했다. 경허 스님은 명실상부한 선승으로서, 선승의 일대기를 전형적으로 다시 완성한 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서 우리나라 근현대 수행불교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온갖 국면에서 경허 스님은 갖가지 일화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월(水月)과 혜월(慧月), 만공(滿空)과 한암(漢岩) 등 그의 제자들도 깨달음의 수준은 물론 일화들의 다채로움 면에서 스승 못지않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 전후로 수많은 근대 선승들이 등장하여 활발발한 행적을 남긴다. 그들의 일대기와 수행담이 근대 출판 매체를 통해 거듭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만 진정한 대승불교의 수행 전통이 계승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기도 하니 그 점에서도 근대 선승의 수행담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수행담의 내용과 형식은 부처님의 전생담과 현생담에 등장한 것들을 반복하는 측면이 뚜렷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점이 적지 않다. 부처님 전생담과 현생담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선승의 삶 자체가 부처님의 삶의 반복이면서도 변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복된다는 것은 선승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명심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변주된다는 것은 선승들이 이 나라 시절 인연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거기에 적용하기 위해 알맞은 방편을 만들어 활용했다는 점에서 귀중하다.
앞으로, 이런 점을 유념하면서 우리나라 선승의 일대기나 수행담을 살펴보겠다. ‘팔상’을 참고하여 선승의 일대기의 변곡점들을 찾아내고 밝힐 것이다. 각각의 변곡점에다 가능한 한 많은 선승의 사례들을 정리하여 담고 그 의미를 해명해보겠다. 먼저 태몽과 비범한 유년, 출가의 사연, 수행의 길, 깨달음과 인가, 보림, 법문과 중생제도, 열반 등으로 크게 나누어 살펴보겠다. 그리고 수행담에서 감동적으로 발견되는 선승의 특별한 덕목들을 따로 살펴보려 한다. 하심, 자비, 죽음의 경험, 이성의 경험, 괴각의 모습, 영험의 의미 등이 될 것이다.
▶이강옥 교수는 경남 김해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와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예일 대학교 비교문학과, 뉴욕주립 스토니브룩 대학교 한국학과의 방문교수로 연구했다. 한국구비문학회, 한국어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두계학술상(2020) 등을 수상했다.
[출처] 이강옥 교수의 한국선 이야기 1. 선승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