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을 찾아가
이월 하순에 들어 며칠째 근교로 나가 움이 터 나온 쑥을 캐 모으고 있다. 첫날은 고성 당항포 마동호 제방으로 나갔고 그 뒤로 소목고개를 넘어 구룡산 기슭으로 두 번 다녀왔다. 어제는 김해 진례로 원정 가서 쑥과 함께 냉이도 캐 왔다. 그 이후 처리 과정은 내 소관이 아니다. 냉이는 된장국이나 나물로 무쳐 식탁에 올랐으나 쑥은 아직 국을 끓여 먹지 않아 향기를 못 맡고 있다.
이월 넷째 월요일은 우체국 업무가 시작되길 기다려 반송우체국을 찾았다. 퇴직 후 종종 도서관을 찾으나 다른 공공기관은 들릴 일이 드문데 우체국은 예외다. 택배나 우편으로도 보낼 거리가 종종 생겼다. 이번엔 현직에 있는 후배에게 작년 큰형님이 펴낸 운강산고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형님 문집을 후배가 봐도 되겠으나 시골에 계시는 그의 부친이 한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우체국 문이 열리길 기다려 우편물을 보내고 곧장 야외 학교로 향했다. 동정동으로 나가 낙동강 강변으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거쳤다. 주남 들녘에서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둘러 가술을 지나니 승객은 모두 내렸는데 새로 두 할머니가 탔다. 그분들은 갈전에서 내리고 나는 종점 신전까지 갔다.
오전 학습 과제는 옥정마을 탐방으로 정했다. 낙동강 강변에 야트막한 산을 기준으로 동읍과 대산면으로 나뉘는데 동읍 끝 마을이 옥정으로 하옥정과 상옥정으로 이루어졌다. 하옥정 어귀 투박한 빗돌에 ‘동읍 옥정(玉井)’이라 적혀 있어 그곳에 구슬처럼 맑은 샘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신전마을에서 들녘을 가로지른 찻길을 따라 하옥정으로 찾아가니 오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야산을 개간한 단감과수원에 가지치기한 부스러기를 치우는 할머니한테 옥정을 물었더니 모른다기에 옛적의 샘터를 아시느냐 했더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다른 동네에 사는 분으로 농장주로부터 품삯을 받고 일하러 온 듯했다. 마침 그때 산기슭 전원주택에서 차를 몰아 나오는 이가 있어 옥정 위치를 여쭈니 귀찮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하며 자기는 모른다면서 빠져갔다.
나는 겸연쩍고 무안스러움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웬 사내가 부질없이 나타나 가는 길을 막고 대수롭지 않은 것을 물었느니 그럴 만도 했지 싶다. 그러함에도 나는 단념하지 않고 산기슭의 좁다란 길을 따라 상옥정으로 가봤다. 거기도 작은 동네로 예닐곱 가구가 살았는데 인적이 없어 우물이 어디 있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어 한동안 서성이며 누구라도 나타나길 기다렸다.
마을 어귀에서 기다린 보람은 있어 그때 트럭을 몰아와 멈추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나는 시내에 사는 사람으로 마을을 지나다 옥정이 궁금해 찾는다고 했더니 그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어 고마웠다. 찻길 가까이 자갈돌이 쌓인 근처 뚜껑으로 덮여 있다고 해 그곳으로 다가가 살펴봤다.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려도 못 찾은 뚜껑 실체는 펜스가 설치된 폐가 울타리 너머 마당귀였다.
공동으로 쓰던 우물터가 사유지여서 나중 집이 들어섰는지, 개인 주택의 우물을 이웃집에서 함께 썼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의 철제 대문은 녹이 슨 채 열쇠가 채워져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마당으로 들면 함석으로 된 뚜껑을 열어보고 우물물의 사정을 살펴봄직도 했건만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다만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었지 않을까 짐작해 봤다.
상옥정은 근래 북면에서 강변을 따라 한림으로 통하는 신설 도로에 교차로가 생겼다. 본포 생태공원 인근이라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도 심심찮게 지나는 곳이다. 주민들이야 상수도가 보급되어 정수된 식수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지 싶다. 당국에서는 지명에도 붙은 옥정을 복원하고 정자도 세워 오가는 이들이 쉬었다가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혼자 해본 엉뚱한 생각이다. 2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