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건물이 개별적으로는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두 개이상 건물의 침해 정도를 합한 결과가 일조권을 침해할 경우 공동으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건물 고층화에 따른 일조권 및 조망권 침해가 문제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판결은 이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넓게 해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사건과 판결 내용〓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제8, 9구역 재개발조합은 각각 95년 3, 6월에 건축인가를 받아 21∼23층짜리 아파트건축 공사를 시작했다. 재개발 아파트 앞쪽에 남향으로 위치한15층짜리 동서울한양아파트 주민 46명은 99년 공사가 마무리되자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했다”며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6부(하광호·河光鎬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주민들이 답십리 제 8, 9구역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인 동아, 두산건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시공사 등은 주민들에게 가구당 800여만∼1300여만원씩 모두 3억9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출 후 처음에는 동아아파트의 그림자, 그 후에는 두산아파트의 그림자 때문에 피해 아파트의 일조시간이 겨울에 2시간도 되지 않는 등 사회적으로 견딜 수 있는 침해 정도를 넘어선 사실이 인정된다”며 “두 아파트의 침해 정도를 합치면 일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규모의 고층 아파트를 신축할 경우 일조권 조망권의 침해가 충분히 예상되므로 시공사 등은 이 피해 정도를 미리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두 아파트의 시공사 등이 이를 어겨 일조권 등을 침해한 결과를 빚은 것은 공동불법행위”라고 설명했다.
▽판결의 영향〓지금까지 일조권 관련 소송은 침해사실이 명백한 가해(加害) 아파트를 상대로 1 대 1로만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 이후 여러 건물에 둘러싸여 일조권이 침해된 지역주민들의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르면 동지일을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조시간이 연속 2시간, 혹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까지 통산 4시간 이상 확보되지 않는 경우 일조권 침해로 인정된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주변 건물들과 사전 조율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로 건축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입주자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