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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컴퓨터를 켰다. 그동안 단감 수확을 끝냈다. 외국인 일꾼 세 명을 인력에서 구해 썼다. 여자 일꾼 남자 일꾼 다섯에 우리 부부까지 마지막 단감 수확에 매달렸다. 척추협착증과 디스크가 도져서 걸음조차 걷기 힘든 나는 허리 보호대와 발목 보호대를 차고 죽을힘을 다해 일꾼 수발을 하고 단감 봉지 작업을 했다. 쓰러지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낄 때마다 환하게 웃었다. 내 업이다. 내가 택한 인생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해 보자. 이런 마음으로 임했다. 단감 하나에 손 한 번 씩 가는 작업이다.
외국인 일꾼은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도 먹지 않았다. 첫날은 외국인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 갔었다. 다섯 명의 일꾼 중 두 사람만 안 먹으니 그나마 덜 미안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생선 종류는 먹었다. 다음 날은 고등어를 바삭하게 굽고 조개 미역국을 끓이고 감자를 볶고 나물 종류를 많이 해 갔더니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모든 것이 서툰 남의 나라에 와서 일당제로 일을 하는 그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오전과 오후에 새참으로 빵과 떡을 냈다. 어찌나 잘 먹던지. 아침을 안 먹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단감이 굵고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못난이가 남아나지를 않았다. 못난이를 사 먹겠다는 사람은 줄을 설 정도였다. 그것만도 고마워서 내 손도 푸지다. 정품은 30과와 35과를 가장 많이 찾았다. 굵고 맛좋은 단감을 보내줘 고맙다는 인사도 즐겁다. 내게 힘을 주는 말이다. 마지막 단감을 따 들이고 선별과정을 거쳤다.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 놉을 사서 봉지 작업도 끝냈다. 선물용 단감과 주문용 단감을 포장해서 택배로 부쳤다. 못난이라도 농부의 정성은 똑 같이 들어간 것들이다. 정품을 선물해야 하는 곳, 못난이를 보내도 괜찮은 곳을 선별해 보내야 하는 고충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은 벌레 먹은 것이라도 선물로 주는 것은 좋은 것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있는 탓이다. 못난이라도 선물이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음이 담긴 선물에 좋고 나쁨이 있는가. 주고받는 작은 정이다. 고마운 분들에게 단감 한 박스 못 보내줘라. 마음을 크게 내지만 손익계산 따지만 자꾸 마음이 약해진다. 아낀다고 부자 안 되더라. 딱 내 복만큼 살더라. 삼십 년이 넘도록 농사꾼으로 살아도 부자 못 되는 이유가 뭐겠는가. 딱 내 복만큼 들어 올 것은 들어오고 나갈 것은 나가기 때문이다. 물건만 좋으면 입소문으로 팔린다. 소매로 파는 것이 도매로 파는 것보다 이문은 남지만 목돈 만지기에는 부적합하다. 단감 수확 철 경비로 쓸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는 날씨 탓인지 단감수확량이 감소했다. 우리 집만 아니고 단감 농가들 대부분이 그렇게 말한다. 다른 집은 잔챙이가 많다는데. 우리는 알이 굵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솎아내기를 많이 한 탓일 게다. 일꾼이 없어 허덕대면서 단감 수량이 적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하게 되었다. 단감 하나에 사람 손이 한 번씩 간다. 처음 단감을 따 보는 외국인 일꾼은 흠집을 많이 냈다. 갓난아이 다루듯 해야 하는 생물을 툭툭 던진 탓에 멍든 것이 많았다. 꼭지의 날카로운 부분을 제거하지 않는 것도 많고, 꼭지를 바싹 조여 따야 하는데 느슨하게 따거나 아예 힘으로 뚝 따서 꼭지가 떨어진 단감도 많았다. 좋은 단감을 못난이로 만들어 놓아 속상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다. 그들이 있어 단감 수확을 끝낼 수 있었다. 어찌 아니 고마우랴. 점심 한 끼라도 맛있게 먹여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단감 봉지 작업도 끝냈다. 저장 단감은 11월 하순부터 풀어낸다. 그 사이 소매로도 팔 생각이다. 저장고 온도 조절이 가장 염려스럽다. 가정용 저장고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두 해의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 사이 두 노인의 줄기찬 부름에도 답해야 한다. 농부는 ‘어지럽다. 입원을 하겠다. 하지 않겠다.’ 시부의 수시변덕에 뛰어다니기도 힘들 텐데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 내게 대놓고 화도 못 부린다. 거기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나부대는 아내를 외면할 수도 없는 농부다.
“일 고마하고 목욕탕 가자.”
목욕탕 갔다가 나오면 ‘저녁 먹고 가자.’ 저녁 한 끼라도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 것이 농부의 사랑 법이다. 그 마음이라도 곱게 받아들이는 아내이고 싶어 순순히 그가 원하는 대로 따른다. 밥맛도 없고, 나갈 기운이 없어도 묵묵히 따른다. 목욕탕이라도 다녀와야 그나마 덜 아프니까.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시부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시부의 병명은 어지럼증이다. 평생 시달려온 병이다. 어지럼증의 주 증상은 소식이다. 평생 어지럽다면 온갖 곰을 해 대야 했다. 시모가 병원에서 집으로 온지 한 달 정도 됐다. 시모는 삼시세끼 잘 드시고 바깥 산책도 하시지만 부엌에는 안 들어간다. 아침 한 끼는 시부 몫이다. 그 아침 한 끼 차리는 것도 지겨워진 것일까. 멀쩡하게 바깥나들이 하면서 당신에게 밥을 차리게 하는 시모에 대한 참을성이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2주 정도 지나자 시부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어차피 입원은 예정된 길이다. 농부는 대봉과 낱개 단감을 따야 하는데도 포기하고 시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입원을 시켜놓고 왔다. 언제까지 이어지려나. 효자 아들 둔 덕에 행복한 두 노인이다. 나는 효자 아들과 결혼한 덕에 평생 멍에 쓰고 사는 여자다.
농부가 시부를 모시고 병원 간 사이 나는 단감 마무리 작업을 했다. 택배로 보낼 것은 포장하고, 읍내 갖다 줄 것은 따로 챙기고 온종일 정신없이 움직였더니 해거름에는 걷기조차 힘들다. 병원에서 온 농부에게 물건을 실어달라고 했다. 배달을 한 후에 목욕탕을 다녀오니 빨리 안 왔다고 화가 난 얼굴이다. 저녁에 농부는 다시 시부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내가 없는 사이 시모 저녁도 차려드리고 온 모양이다. 농부가 짊어진 짐이지만 옆에서 함께 겪어야 하는 내 심적 고충도 헤아려줄까. 스트레스 받지 말라지만 직접 당하는 일이라 안 받을 수가 없다. 부부는 말이 없어도 눈치만 보면 안다. 눈치 백단이란 말이 그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쌓이는 앙금이다. 상노인을 곁에 두고 모셔보지 않은 그들이 어찌 내 마음을 알까. 남의 말 하긴 참 쉽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몸도 못 가누면서 두 노인 수발 못 든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삼십 년이 넘도록 모셨으면 내 할 도리는 다 했다. 간병 일을 하는 그녀가 전화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시모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할배는 입원했다우. 그대가 자꾸 입원하라 한 덕 같소. 할매는 어떻던가요?”
“말짱하요. 할매는 충분히 밥 챙겨 묵어요. 할배 밉다고 손끝 하나 까딱 안했지. 올매나 잘 묵는다꼬. 내가 반찬 다 해 놨응께 알아서 묵는다요. 진짜 할매할배도 너무 하더라. 내 속이 터진다. 시댁 걱정은 말고 자기 몸이나 챙기소. 그 몸으로 여태 노인들 수발 든 것만도 오감체. 노인들이 그것도 몰라주고 자기들 욕심만 챙기더라. 다른 자식들은 본척만척 하는데. 나는 돈벌이라 한다만 진짜 두 노인네 보기 싫소.”
그녀의 말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마운 이웃이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웃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하다. 헛살지는 않았구나. 그녀는 단감도 참 많이 팔아준다. 그녀만인가. 단감도 인덕으로 팔려간다. 사방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살아지는 삶이다. 농부에게 없는 인덕이 내게는 풍족하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살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