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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500(17)사과~사구게모음~사십구재
210. 사과 (四果)
4과(四果)는 범부가 도를 닦아 얻은 결과를 네 가지로 구분한 것입니다.
수다원(須多洹)은 무주(無住)의 성자(聖者)입니다. 눈, 귀, 코, 혀, 몸, 뜻 (眼耳鼻舌身意)이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대하여 집착이 없어 바라밀행을 하는 것입니다.
사다함(斯多含)은 한번쯤 이 세상에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 다 간다하여 일왕래(一往來)라
번역하는데 도를 보고(見道) 즉 전생의 업장을 소멸하고 해탈도를 구하는 것을 말하고,
아나함(阿那含)은 무왕래(無往來)로서 도를 닦아(修道)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날 만한 업력이 없음을
말하며,
아라한(阿羅漢)은 가고 오는 마음과 도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생 사에 유전하는 것을 끝낸 무학성자(無學聖者)를 말한다. 진리에 응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안주하므로 응진(應眞)이라고도 한다.
211. 사구게 모음(四句偈)
▶ 금강경 사구게 (金剛經四句偈)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무릇 있는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만약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들으려한다면 이 사람은 삿 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현상계의 법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 고, 또한 번개와도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할지라.
◎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응당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성, 향, 미, 촉, 법 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청정한 마음을 내라
▶ 화엄경 사구게 (華嚴經四句偈)
◎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어떤 사람이던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 싶거든, 마땅 히 법계의 성품을 비춰 관찰할지니 일체의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 어졌다.
◎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오온실종생 무법이부조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實從生 無法而不造)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그림을 그 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일을 다 그려내고, 오온(五蘊-이 몸뚱이)도 다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마음은 무엇도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법화경 사구게 (法華經四句偈)
◎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이 세상의 모든것은 본래 스스로 고요하고 청정함으로 우리가 이와 같이 닦고 닦으면 내세에는 부처를 이룰 것이다.
▶ 열반경 사구게 (涅槃經四句偈)
◎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卽滅爲樂)
모든 현상은 한시도 고정됨이 없이 변한다. 곧 생하고 멸하는 나고
죽는 생멸의 법이니 생멸의 집착을 버리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
▶ 아함경 칠불통계 (아함경 七佛通戒)
◎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 능엄경 (楞嚴經四句偈)
◎ 실제이지 불수일진 불사문중 불사일법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
실질적인 진리자리에는 먼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중생을 교화 하는 부분에서는 한 법
(온갖 잡동사니들)도 버려서는 안 된다.
▶ 원각경 (圓覺經四句偈)
◎ 지환즉리 부작방편 이환즉각 역무점차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모든 것이 환(幻,꼭두각시)인 줄 깨닫기만 하면, 곧 (헛된 생각을)여 의면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幻)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더 닦아갈 것도 없다는 말이다.
212. 사대성지(四大聖地)
1) 부처님의 탄생지(誕生地) 룸비니-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곳
옛 중인도 카필라성 동쪽에 있던 꽃동산인데, 지금은 네팔 령(카릴라바스투)에 소속되어 있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마야부인이 잡고 낳았다고 하는 무우수(無憂樹)와 목욕한 연못이 있고, 부처님 탄생도가 하얀 별장 안에 모셔져 있다. 또 불멸 후 2백여년에 탄생한 성 아쇼카왕이 세운
돌비석이 남아있다.
2) 성도지(成道地) 보드가야 -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곳
중인도 말갈타국 파트나의 서남쪽 62마일 지점에 있는 도시 아야로부터 6마일 지점에 있다. 여기에는
부처님께서 앉아 성도하신 금강보좌와 보리수, 그리고 성도 후 7ㆍ7일 사이에 옮겨 다녔던 유적지,
폭풍우로부터 부처님을 보호했던 용이 살던 연못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보리수 옆에는 정각탑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주위에는 태국, 미얀마, 티벳, 스리랑카 등의 사찰들이 있고, 한국 사찰 고려사(Korea Temple)도 건립되어 있다.
3) 전법지(傳法地) 녹야원 - 부처님께서 최초로 법을 전하신 곳
현 인도 바라나시 사르나트가 바로 그 곳이다. 이곳 고고학 미술관에는 법륜을 상징한 초전법륜상
(初轉法輪像)이 있고, 그 옆에 스리랑카 스님들이 지은 절이 있다.
절 안에 모셔진 부처님은 법륜상으로서 5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원상은 2001년
꼴까따의 인디언 뮤지엄으로 옮겨졌고, 고고학 박물관에 사르나트 사자상(네 마리의 사자상)과 함께
보존되어 있고 그 곳에 모신 것은 모조한 것이다.
아쇼캬의 석주와 옛 절터가 그대로 남아있고 지금도 사슴들이 뛰어놀고 있다. 6비구(比丘)가 부처님을
맞이한 불영탑은 녹야원 문밖 동산에 높이 솟아있다.
4)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르 -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
비야리성 동북쪽에 이는 옛 말이족 왕족의 이름. 부처님께서는 이 나라의 시뢰나벌저, 하반,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다. 지금 이곳에는 부처님 돌아가신 자리에 미얀마 스님들이 절과 탑을 지어 입멸당시의 부처님의 모습을 그대로 모시고 있으며, 화장했던 자리에는 큰 탑이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또 주위(周圍)에는 미얀마, 태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절을 지어 살고 있으며 나라에서는 국립호텔을
지어 오고가는 참배객(參拜客)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213. 사대천왕 (四大天王)
(1) 지국천왕(持國天王)
지국천왕은 동쪽을 수호하며 중생을 보살피고 국토를 지킨다고 한다. 몸은 동방을 표방(標榜)하는 오방색인 청색(靑色 또는 흰색)을 띠고 있으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香氣)만 맡는 음악의 신(神)인 건달바와 부난다신을 거느리고 항상 착한 중생들을 보살펴 착한 이에게 복(福)을 주고 악(惡)한 자에게 벌을 주며 기쁨의 세계를 관장(管掌)하면서 계절은 봄을 상징하며 오행(五行)은 ‘목(木)’에 해당된다.
손에는 비파(琵琶)를 들고 있는데 원대(元代)에도 종종 보인다. 때로는 오른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고 왼손은 칼을 지물로 사용하기도 하고 활과 화살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주먹을 허리에 대고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기도 한다.
벽옥(碧玉)과 같은 비파(琵琶)를 들고서 음조(音調)를 주관하므로 ‘조(調)’라고 불리 운다.
(2) 증장천왕(增長天王)
남방 증장천왕은 “더욱 길고 넓다”는 증장(增長) 또는 증광(增廣)이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중생의 이익을 더욱 길고 넓게 증장시켜 준다는 뜻을 함축(含蓄)하고 있다. 남쪽을 수호하며 자신의 덕망(德望)으로
만물(萬物)을 소생(蘇生)시킨다고 한다.
몸은 청색(또는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노한(성이난) 눈을 하고 있다. 구반다(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
, 말머리에 사람의 몸을 취하고 있다)와 아귀를 거느린다.
사랑의 감정을 주관(主管)하면서 여름을 상징하고 오행(五行)은 ‘화(火)’에 해당되고 지물로는 보검(寶劍)을 지니며 바람을 주관(主管)하므로 ‘풍(風)’이라 불리운다.
(3) 광목천왕(廣目天王)
서방 광목천왕은 광목(廣目)의 뜻은 맑은 눈으로 능히 관찰(觀察)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원래
인도(印度) 사냥꾼의 모습으로 손으로 포승(捕繩)을 잡고 등에 노획한 표범같은 동물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과 연관된다. 대개 천왕이 끈을 쥐고 있다는 것은 신분(身分)을 상실한 것이다.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이 머리는 용(龍)의 모습이지만 몸은 뱀같이 생긴 동물을 들고 있는 예가 있다. 용머리 형상(形象)을 들고 있는 서방천왕(西方天王)의 경우 다른 손으로는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이것은 용(龍)이 보주를 희롱(戱弄)하는 모습(模襲)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어떤 경우는 머리가 뽀족한
네 마리의 쥐를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티벳에서는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이 쥐고 있는 것으로 이 쥐가 사향고양이로 표현되어 배를 한번
누를 때마다 보석(寶石)을 토해낸다 하여 재보(財寶)의 신(神)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뱀과 같은 동물은 어루만지기 힘드나 표범과 같은 동물(動物)은 어루만지면 침착해지고 순해지기 때문에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이로 인하여 순(順)이라는 직책(職責)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광목천왕은 서쪽을 수로하며 웅변(雄辯)으로써 온갖 나쁜 말들을(삿된말, 이간질 하는말, 속이는 말, 험한말 등의 구업,口業) 물리치기 때문에 다른 천왕들과는 달리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뜬 형상을 하고
있다.
몸은 백색이며 용(龍)과 혈육귀(血肉鬼)로 불리는 비사사신을 거느리고 있으며,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구도심(求道心,懺悔心)을 일으키게 하고 노여움의 감정(感情)을 주관하고 계절(季節)은 가을을 상징하며 오행(五行)은 ‘금(金)’에 해당한다.
(4) 다문천왕(多聞天王 )
다문천왕은 북쪽을 수호하며 도량을 지키면서 항상 법문을 듣는다고 하여 다문(多聞)이라고 한다.
그는 불교에 귀의(歸依)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고 어둠(無明)속에서 방황(彷徨)하는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하여 수미산 북쪽을 지키는 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일명 비사문천왕이라고도 불리는데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사천왕(四天王)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본래 힌두교의 천신(天神)이었던 쿠베라였으며, 시재천
(施財天,재산과 부를 기증하는 자)으로 별칭되어 북방을 수호하는 신(神)이자 재보(財寶)의 신(神)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길상천녀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고대(古代) 베다신화에서는 다문천왕이 제석천(帝釋天)의 부하였다. 제석천의 음역(音譯)은 인드라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즉 영웅적인 인간과 천상(天上)의 자연력(自然力)을 합쳐 놓은 것으로 번개와
폭우(暴雨)가 인격화(人格化)된 것이다.
비사문천왕은 착한 중생을 보호하고 재물을 주기 때문에 누구나 그를 존경(尊敬)한다. 따라서 그는
사천왕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며 상수(上首)역활을 하고 있다.
돈황 막고굴 벽화(壁畵)에서는 비사문천이 바다를 건너 도(道)를 행할 때 기이한 보물과 많은 돈을 뿌
리고 있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비사문천 신앙은 성당(盛唐)시대부터 만당(晩唐),
오대(五代)에 걸쳐 매우 유행하여 사원(寺院)이나 여러 조형물(造形物)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비사문천왕, 즉 북방 다문천왕의 몸은 금색이며, 칠보(七寶와 금강(金剛)으로 장엄된 갑주(甲冑)를 입고, 머리에는 금시조(金翅鳥 혹은 봉황)관을 쓰고 있다.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왼손으로 석가모니
봉양(奉養)을 의미하는 보탑(寶塔)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삼차극(三叉戟)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송, 원 이후 사천왕은 더욱 중국화(中國化)되어 비사문천이 다른 세 천왕(天王)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아울러 재물신(財物神)이라는 의미도 사라진다. 인도식의 삼차극은 중국식의
호차(虎叉)와 비슷한 병기(兵器)로 변한다.
비사문천이 좋아하며 쓰고 다녔던 번개(幡蓋)는 이후에 일산(日傘)으로 변하여 다문천의 지물로
보탑(寶塔)과 함께 정형화(定型化)된 그의 장엄물(莊嚴物)이 되었다.
봉신연의(封神演義)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혼완진주산(混元珍珠傘) 한 개와 우(雨)라는 직책만 가지게
되었다. 일산(日傘)이 비와 관련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근래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비사문천왕은 우산(雨傘)을 가지지 않고 손잡이가 긴 번당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아무튼 비를 주관함으로 ‘우(雨)’라고 불리 운다. 새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환한 미소를
띠면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즐거움의 감정을 주관한다. 계절은 겨울을 상징하고 오행(五行)은
‘수(水)’에 해당한다.
사찰의 입구에 이렇듯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것은 절은 사천왕의 수호(守護)를 받는 청정도량이므로 몸가짐과 언행을 신중(愼重)하고 경건하게 가질 것을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14. 사령 (四靈)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나라나 민족마다 신화와 전설 속에는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많은 상상의 동물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동물 문양으로서 사령(四靈)은 천상계에서 나라의 길흉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 나타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이 사령이 사천왕의 역할도 하는데 용이나 봉황, 그리고 거북은 사신도(四神圖)에서 각각
방위신으로 알려져 있다.
① 용(龍)
용(龍)은 인도에서 옛날부터 힘을 상징하며, 불교에서는 불전과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용은 신령(神靈)으로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龍)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즉 용은 가장 강력하고 하늘에서 살고 있으며,
려(蜧)는 뿔이 없고 바다 속에서 살고 있으며, 교(蛟)는 비늘이 달려 있고 산 속의 늪과 동굴에서 산다고
한다.
② 봉황(鳳凰)
봉황(鳳凰)은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상상 속의 동물로서 평화스럽고 번영을
누리는 때에 나타나며, 깃털을 가진 동물 중 가장 고귀한 새로 생각하였다. 자애스러운 새로서 살아 있는 생명은 잡아먹지 않으며 오동나무 위에만 내려앉고, 대나무 죽순과 감로수를 먹는다.
봉황의 모습은 앞에서 보면 거위를 닮았고, 뒤에서 보면 기린과 같으며, 새의 주둥이, 뱀의 목덜미,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꼬리, 학의 이마, 원앙의 화관, 용의 줄무늬, 거북의 둥그런 잔등과 같다고 한다.
깃털은 다섯 가지 기본 덕(五常)을 좇아 이름을 붙인 다섯 가지 빛깔을 띠고 있고, 크기는 다섯 자가 되고, 꼬리는 둥그스름하게 내리 쳐지고, 그것이 부르는 노래는 옛날 취주 악기의 소리처럼 오음을 내어
신령계를 즐겁게 한다고 하였다.
건물 단청에서 용과 함께 계풍의 벽지화나 천장의 반자초 등에 그려지는데, 오색의 화려함으로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동물 문양으로는 용과 봉황 문양이 가장 많이 애용되었는데 삼국시대부터 권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역시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여 즐겨 묘사되고 있다.
③ 거북(龜)
거북은 뱀처럼 생긴 머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으며,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등판의 무늬가 있는데,
등이 솟아오를 형태를 보고서 하늘의 법을, 아래가 평평하고 네모진 것은 땅의 법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장생과 길상을 나타낸다고 하여 고대로부터 신수(神獸)로 일컬어져 왔다. 용이 동물 중에서 으뜸이고,
봉황이 모든 새들의 우두머리이듯이, 거북은 개충(介蟲)의 우두머리이다. 민화나 독성 탱화에서 자주
묘사되고 있는데. 보통 서기(瑞氣)를 내뿜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④ 기린(麒麟)
기린(麒麟)은 본래 살아 있는 벌레를 밟지 아니하고, 생명이 있는 것을 먹지 않는 어진 짐승으로,
그 형상은 노루의 몸, 소의 꼬리, 이리의 이마, 말의 발굽 등을 고루 갖추었으며, 머리에는 뿔이 하나
난다고 하여 일각수(一角獸)라고도 한다.
기린은 네 발 달린 짐승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동물로 여겨져 장수, 숭고함, 경사, 빛나는 행적,
그리고 현명한 통치 등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 교화서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길상영수(吉祥靈獸)로 묘사되며,
수컷은 기(麒), 암컷은 린(麟)이라 불리운다.
<탱화 273쪽 김의식저 운주사>
215. 사리 (舍利)
진신사리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다비를 마치고 나니 8곡4두(8斛4斗) 나 되는 많은 사리가
나와서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여덟(8)나라 임금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어 왕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사리탑을(근본8탑)세워 길이 공양하게 되었다. 그 뒤 아쇼카 왕 때는 84,000개의 사리탑을 세우기도
하였다.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현장법사가 150립(粒:개)의 사리를 중국으로 가져갔고 의정(義淨)스님도 300립의 사리를 가져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진흥왕 10년(549년)에 양(梁)나라에서 사신이 처음으로 불사리를 가져 왔다고 한다.
그 뒤 안 홍(安 弘)이 진나라에서,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 사리를 가져와서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ㆍ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중대의 적멸보궁ㆍ강원도 인제 설악산 봉정암ㆍ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ㆍ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등 (5대 적멸보궁)에 봉안하였다.
사리는 몸에서 나는 신령스러운 구슬을 말한다.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어어지는 정신적 결정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아닌 일반 사리는 삼학(三學)을 잘 닦아 얻어진 금강불괴의 법체(法體)다.
또한 육바라밀을 잘 닦아도 얻어진다고 한다.
사리는 범어로 사리라(Sarira)이며 쌀의 어원이다. 쌀이 농부의 지극 정성으로 얻어지는 것처럼
사리도 온갖 수행과 보살행위로 얻어지는 것이다. 사리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깨어지지 않는다.
둘째, 불에 녹지 않는다.
셋째, 접시에 물과 담았을 때 물이 범접하지 않는다.
넷째, 오색이 영롱하다.
다섯째, 화학약품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216. 사리불과 16제자
‘장로 사리불’은 경전에 ‘사리자’라고 자주 등장하는 분으로 부처님제자 가운데 지혜가 가장 뛰어나신
분이다. 목건련 존자와 함께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서 교화한 5비구 중 한 분인 앗사지로부터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생멸한다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존자는 자기를 부처님께 인도해준 앗사지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살면서 앗사지 쪽으로는
다리도 펴지 않았다 하니 얼마나 감동적인가.
‘마하 목건련’은 걸림이 없는 신통력을 얻었기에 신통제일로 불린다.
효심이 뛰어나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고자 고뇌하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음력 칠월 보름
안거 해제일에 정진하는 대중들과 함께 어머니를 천도함으로써 우란분절(백중)이 오늘날 불교의 명절로 이어오고 있다.
‘마하 가섭’은 수행하면서 의식주에 대한 아무 욕심이 없이 항상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행을 잘 했기에
두타제일의 제자가 되었다.
한 때 오랜 수행으로 남루한 차림으로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로 돌아오자 대중들은 그를 몰라보고
경멸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당신의 자리를 내어주시며 그를 반갑게 맞이하셨다(반분좌).
‘마하 가전연’은 부처님 제자 가운데 부처님 법을 논리적으로 잘 헤아려 설법했으므로 논의제일이라
불렸다.
‘마하 구치라’는 사리불존자의 외삼촌으로 나면서부터 손톱이 길어 장조범지(長爪梵志)라 했다.
출가하여 능수능란하게 언변이 뛰어나 어떠한 어려운 질문에도 잘 대답했으므로 문답제일로 불렸다.
‘리바다’는 사리불 존자의 동생으로 한때 비를 피하려고 신을 모신 사당에 들어갔다가 두 귀신이
하나의 시신을 두고 서로 제 것이라 다투는 것을 보고 이 몸은 한낱 거짓으로 화합한 것임을 깨닫고
부처님을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선정을 주로 하며 항상 마음이 고요해 전도(顚倒)되지 않으므로 무전도제일이라 한다.
‘주리반타가’는 형님을 따라 출가했지만 자신의 이름도 외울 줄 모를 정도로 우둔했다. 이에 그의 형이
환속시키려고 하자 부처님께서 아시고 그에게 물 긷고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하며
‘먼지를 털고 때를 씻어라’는 게송을 외우게 했는데 그나마 외우지 못했다.
부처님은 빗자루를 주시면서 비를 잡을 때는 “비!”하고, 쓸 때는 “쓴다!”라고 외우면서 청소를 시켰는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마침내 그는 아라한이 되었다.
‘난다’는 부처님의 이복동생이다. 아름다운 아내에 이끌려 출가하지 않으려 하자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여주며 교화하셔서 귀의하게 된다. 육신의 모든 욕망을
항복받았기에 제근조복(諸根調伏)제일이라 한다.
‘아난다’(아난)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얼굴이 잘 생겨서 여러 차례 여인들의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고결한 인품으로 극복하고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까지 잘 모셨다.
다문(多聞)제일로 경전결집(經典結集)에 참여하고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 등 비구니의 출가를
도운 분이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속가 아들로 15세에 출가해 계율을 잘 지키며 남이 보지 않아도 부지런히 수행을
잘했으므로 밀행(密行)제일로 불렸다.
‘교범바제’는 사리불존자를 스승으로 출가했으며 계율을 잘 안다고 해율(解律)제일로 불렸다.
‘빈두로파라타’는 16나한 중 한 분으로 왕사성에서 신통을 부렸다가 부처님께서 이후부터 신통을
부리지 말라는 꾸중을 듣기도 한다. 남인도의 마리산에서 부처님 열반 후 중생을 제도하는 대복전
(大福田)이 되었다. 사찰의 삼성각, 독성각의 나반존자님이 바로 이 분이다.
‘가루다이’는 피부가 검게 빛나 흑광(黑光)이라 했는데, 사리불존자의 설법을 부정하고 승단에
나쁜 짓을 많이 하는 등 말썽을 부리기도 해 부처님은 그에 따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마련하셨다.
‘마하 겁빈나’는 금지국의 용맹한 왕이었으나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고 감동하여 제자가 되었다.
천문지리(天文地理)에 능통하여 지성숙(知星宿)제일이라 한다.
‘박구라’는 얼굴과 몸매가 매우 단정했으며 항상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기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계모의 손에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평생 한 번도 앓지 않고 160세를 살아 장수
(長壽)제일로 불렸다.
‘아누루타’(아나율)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중에 졸다가 꾸중을 듣고 다시는 졸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여러 날을 자지 않고 수행하다 눈이 멀지만 열심히 정진해 천안통을 얻고 천안(天眼)제일이 되었다.
217. 사마 (四魔)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석가모니불이 네 가지 마(四魔)를 정복하여 대웅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는 그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4마(四魔)를 자세히 풀이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마(身魔)ㆍ음마(陰魔)ㆍ오온마(五蘊魔)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인간의 눈ㆍ귀ㆍ코 등
육체의 감각 기관에 마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눈이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할 때 마가 숨어들고,
귀가 소리를 올바로 듣지 못할 때 마는 우리의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감각 기관은 백팔번뇌 등의 헛된 망상을 함부로 일으키고 산란한 애증(愛憎)의
원인이 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장본인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욕마(欲魔)ㆍ번뇌마(煩惱魔) 라고 불리는 것으로, 인간의 의식 위에 빚어진 갖가지 욕심과
번뇌를 지칭하고 있다. 욕심과 번뇌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인간의 몸과 마음은 결코 괴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생명을 헛되이 잃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을 참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니라 번뇌와 욕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 번뇌를 비워버리지 못한다. 그만큼 번뇌마(煩惱魔)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셋째는 사마(死魔)이다. 인간의 생존은 몸과 의식의 각 기관이 계속해서 활동하는 데 있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은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만다. 이 피할 수 없는 내객(來客)을 사마(死魔)라 부르고 있다.
넷째는 천마(天魔) 또는 천자마(天子魔)이다. 앞의 셋이 인간 각자에게 내재하고 있는 내면의 마라고
한다면, 이 마(魔)는 밖으로부터 오는 외마(外魔)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상계(天上界)에 있는 마왕과
그 수하들은 수도인이 훌륭하게 되는 것을 시기하여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갖가지 일을
꾸며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 마(魔)는 무서운 모습 또는 요염한 모습으로 밤에 찾아와서 수행하는 사람에게 공포를 주거나 미묘한 욕심을 충동질하여, 수행인으로 하여금 그 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설펴보면 마(魔)에는 씨가 없다. 알맹이가 없고 마 자체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 뿐이다. “마가 아무리 치성을 부릴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고 한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는 스스로 깨어남으로써
마(魔)를 물리치고 진실을 체험하여 대웅이 되셨던 것이다.
218. 사마유 (四馬喩)
사마유란 사람들이 세상의 무상함을 느낌에, 빠르고 느림이 있는 것처럼 이것을 말(馬)에 비유해
나타낸 것이다.
첫째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놀라는 말은, 다른 마을에 아무개가 죽었 다는 말만 듣고도
놀라는 사람과 같다.
둘째 채찍이 털에 닿기만 해도 놀라는 말은, 자기 마을에 죽는 이가 있 음을 보고 놀라는 사람과 같다.
셋째 채찍이 살에 맞고야 놀래는 말은, 자기의 친척이 죽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과 같다.
넷째 채찍에 맞아 뼈에 사무치도록 아파야만 놀라는 말은, 자기가 병들 어 않아 누워야 비로소
놀라는 사람과 같다.
219. 사명대사 (四溟大師)
사명 유정(四溟惟政:1544~1610)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자(字)는 이환(離幻), 호는 송운(松雲) 또는
사명(四溟)이다. 13세에 김천 직지사(直指寺)에 출가하여 18세에 승과에 합격하고, 그 후 직지사에
주지로 머물다가 1575년에 묘향산에 들어가 휴정(서산대사)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승군을 모집하여 평양성을 탈환한 공로로 선교양 종판사에 임명되었고, 1604년에
강화 사절로 일본에 가서 전란 때 포로로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들을 데리고 이듬해 귀국했다.
<본서 유정참조>
⌾휴정의 제자 1천여 명 가운데 뛰어난 제자가 70여 명이었고, 그 중
사명유정(四溟惟政)ㆍ편양언기(鞭羊彦機)ㆍ소요태능(逍遙太能)ㆍ정관일선(靜觀一禪)은 4대파(四大派)를 형성했다. <서산대사 참조>
휴정과 동문인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는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信明)에게 출가하고,
부용 영관을 사사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그는 말이나 문자에 따르는 격식을 떠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했고,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입적했다. 그의 제자 7백여 명 가운데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문하가 가장 번창했다. 선수 문하는 휴정 문하와 더불어 조선불교
승단의 주축을 이루었다.
☀ 사명스님의 외교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잡혀간 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귀국한 사명(四溟)스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명스님이 일본에 도착하기 전 일본인들은 30리 되는 곳에서부터 보장(步障)을 세우고 좌우에 병풍을
세웠는데, 거기에는 모두 일본인들이 지은 시사(詩辭)를 써 놓았다. 관사(館舍)에 이르는 동안 사명은
그 시사들을 다 외워 버렸다. 물론 한 자 한 획도 틀리지 않았다.
이를 본 일본인들은 놀라워 왕에게 보고하니 일본왕은 사명의 수행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10여 미터의
구덩이를 팠다. 그 속에 사나운 코끼리와 뱀을 넣고, 그 위를 유리로 덮었다. 그리고 사명에게 그 위를
걸어 자리로 가서 앉게 했다.
사명대사는 구덩이 속에 들어 있는 괴상한 것들을 보았다. 염주를 떨어뜨려 유리로 덮혀 있음을 확인하고, 유유히 그 위를 지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광경을 본 일본인들은 사명의 지혜에 감탄하였다.
그 이튿날은 철마(鐵馬)를 세웠는데 겨우 한 사람이 다닐 만큼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 밑 사방에는
숯불을 피워 철마를 벌겋게 달구고 있었다. 화염(火焰)이 치솟는 그 통로 사이로 사명에게 걸어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이에 사명대사는 서쪽을 향하여 합장했다. 일심으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갔다. 그러자 조선쪽으로부터 검은 구름의 떼가 우르르 물려오기 시작하더니, 장대 같은 빗줄기가 철마와 숯불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비가 개이고 나니 철마는 싸늘히 식었고 숯불은 죽어 버렸다. 사명은 유유히 그 사이로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자 이를 지켜보던 일본인들은 말했다.
“이 사람은 생불(生佛)이고 선승(禪僧)이다.”
그런 후로부터는 사명스님을 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워 모시고 다녔으며, 우리 측의 요구조건이 모두
받아들여지고, 스님은 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220. 사물(四物)놀이 ☀ 불교에서 나온 말
절에서 불교의식 때 쓰인 법고(法鼓)ㆍ운판(雲板)ㆍ목어(木魚)ㆍ범종(梵鐘)의 네 악기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이것이 북ㆍ징ㆍ목탁ㆍ태평소로 바뀌고 지금은 다시 북ㆍ장구ㆍ징ㆍ꽹과리의
네 민속타악기로 바뀌어, 일반적으로 사물놀이라고 하면 이 네 종류의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과
그 음악에 의한 놀이를 가리키게 되었다.
221. 사부대중 (四部大衆)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청신남)ㆍ우바이(청신녀)를 통칭하여 사부대중이라 말한다. 즉 계를 받은
출가한 남녀 스님과 재가 남녀 불자를 통털어 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세분해서 7부대중(七部大衆)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비구ㆍ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식차마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말한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설했다. 가르침을 들은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붓다의 첫 제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불교 교단의 시초이다. 그 후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집을 나와 수행하는 출가자(出家者)와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자(在家者)가 점점 늘어났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각각 성별을 나누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분한다.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는 비구(比丘),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은 여자 승려는 비구니(比丘尼),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는 우바새(優婆塞), 재가 여자 신도는
우바이(優婆夷)라고 한다. 이 사부대중을 ‘화합의 집단’, 즉 승가(僧伽)라고 한다. 비록 출신이나 성별 등은 다르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받들면서 화합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222. 사섭법 (四攝法)
관자재보살님은 대비행을 닦는 열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고 있는데, 그중 골격을 이루는 가르침인
보시(布施)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네가지로 구성된 것이 사섭법(四攝法)이다.
‘보시(布施)’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베풀어주는 것 즉 남 에게 베풀고 자기의 소유물을
놓아 보내는 것이다.
‘애어(愛語)’는 부드럽고 평화롭고 순수하고 사랑이 담뿍 담긴 말로써 중 생들을 진리의 세계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즉 고운 말을 쓰고 말을 친 절하게 하는 것이다.
‘이행(利行)’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 되고 보람된 선행(善行)을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이행 즉 남을 돕는 것, 남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이렇게 보시(布施)
하는 마음, 고운 말, 이행의 몸 등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행위들뿐이다.
‘동사(同事)’는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하고 길흉화복(吉凶 禍福)을 같이 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즉 그러 한 인간들 끼리 서로 돕고 서로 힘을 내서 일을 같이하는 것
즉 사회 적 협력(社會的 協力)이다.
위의 네 가지에 인간의 도덕적인 생활의 근본이 다 들어 있으므로 불교에서는 그것을 사섭법(四攝法)
또는 사섭사(四攝事)라고 한다.
이 밖에 화안(和顔) 즉 온화한 표정으로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용어도 있다.
223. 사성제 (四聖諦)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도를 깨달으시고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5비구에게 최초로 설한 가르침이며
마지막 열반하실 때에도 거듭 설한 가르침으로써 불교사상의 핵심에 해당된다.
연기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이라면, 사성제는 실제 문제 즉 인간 고(苦)의 문제 해결에 응용된
이론이다. 사성제의 성(聖)은 ‘거룩하다, 성스럽다’는 뜻이며 제(諦)는 ‘진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다.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는 고성제ㆍ집성제ㆍ멸성제ㆍ
도성제인데 간단히 ‘고집멸도’라고 한다.
1) 고성제(苦聖諦)
고성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진리”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괴로움 아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사실 고(苦)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도,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울면서 시작된 이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젖먹이 때도 울음을 그칠 날이 드물고, 조금 철이 들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누구나 건강한 삶을 바라지만 병은 찾아들고, 항상 청춘이기를 바라지만
늙어서 죽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괴로움은 태어나는 괴로움(生), 늙어가는 괴로움(老), 병드는 괴로움(病),
죽음의 괴로움(死)이다. 이 네 가지 괴로움(生老病死)을 근본사고(根本四苦)라고 한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애별이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오온)이 치성하여 일어나는
괴로움(오음성고:五陰盛苦)을 합하여 팔고(八苦)라고 한다.
그러나 중생들의 괴로움이 어찌 이 네 가지, 여덟 가지만 되겠는가?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이라면
괴로움도 팔만사천가지이며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도 상징적인 의미로써 한량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다.
2) 집성제(集聖諦)
고(苦)는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그 원인이 규명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집성제다.
집(集)이란 집기(集起)의 약어로서 ‘발생’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집성제란‘고통이 일어나는(발생하는)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란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渴愛)”때문이라 하셨다.
갈애란 범어로 타나하(tanaha) 목마름이란 뜻이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타오르는 욕망의 작용을 가르킨다.
부처님께서는 욕망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다. 흔히 불교는 일체의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종교인 줄 아는 경향이 있지만 부처님께서 배격한 것은 “그릇되고 지나친 욕망‘이다. 욕망일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밖에 무엇을 뜻하겠는가?
욕망은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먹고 싶다는 욕망,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들, 이런 것이
너무 과도한 데 병폐가 있지 그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될 수 없는 문제이다. 한데 과도한 욕망은 왜
생기느냐? 무지에서다. 무지는 지혜가 없음을 만하다.
쇼펜하우어(A.Schopenhauer)가 “부(富)란 바닷물과 비슷하여,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온다”고
말을 명심해 볼 필요가 있다.
3) 멸성제(滅聖諦)
우리 인간은 이렇게 괴로움을 달게 받고만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 멸성제다.
갈애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겼으니 이 갈애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 멸성제이다.
멸성제는 “고통이 없는 성스러운 진리”를 말하는바 괴로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밝히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리고 증득한 경지도 열반이다. 열반은 번뇌,
망상이 마치 타오르던 불꽃이 완전히 꺼진 것처럼 된 상태를 말한다. 바로 이와 같은 열반을 성취하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것, 이것이 멸성제이다.
4) 도성제(道聖諦)
고통이 없는 세계(부처님 세계)에 도달하게 하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에 대답하는 것이 도성제이다.
도성제는 “고통이 없는 세계에 이르게 하는 방법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뜻하며 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중도(中道)이다.
중도를 양극단을 배제한 중간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중도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 삶의 방법을
가리키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팔정도다. <본서 팔정도 참조>
224. 사십구재 (49재, 천도재, 수륙재, 예수재)
1) 49재 (齋)
불교에서의 천도재(薦度齋)는 죽은 이로 하여금 생전에 지어 놓은 모든 악업을 떨쳐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여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49재란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재, 혹은 49일 동안에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는 의식이다.
불교에서는 예부터 사람이 죽은 후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과정이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인연에 의해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유의 상태에 머문다. 그 기간이 길어야 49일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도록 한다. 영가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최종적으로 49일을 잡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보통 49일 동안에 7번 나누어 7일에 한 번씩 재를 지낸다.
100재, 소상재, 대상재 등은 유교적 관습이 불교에 영향을 미쳐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
2) 천도재(薦度齋)
자손이 조상을 받드는 것은 인간의 근본을 귀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천도재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를 지내서 영가가 생전에
지었던 모든 업을 소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원래의 청정한 마음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또한 영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에 참석하여 공덕을 짓는 이들에게도 생사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재의 공덕은 망자와 동시에 재를 올린 이에게도 회향된다. 그 종류에도 49재,
100재, 소상재, 대상재, 기재 등의 정기적인 천도재와 수륙재처럼 필요에 따라 행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도 있다.
3) 수륙재(水陸齋)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이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사생육도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하자 지공선사에게 부탁하여 수륙재을
행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4) 예수재(豫修齋)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의식이다.
속칭 자신의 49재를 미리 지내는 것이라고도 한다.
49재는 순수하게 죽은 이를 위한 재이나 예수재는 살아있는 이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미리
준비함의로써 생자나 망자가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례이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 미리 재를 지내어 죽은 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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