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영화안에서 특별하지만 결코 특별하지 않지않은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에
숨죽이며 살고 있는 탐욕스럽고 원초적인 사랑의 한 형식을 볼수 있었습니다. 영화속의 여러가지 사랑의 형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을뿐 우리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것이기에.
파리제1대학교 대학원 미학박사 출신 답게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었습니다.
상징과 도발 그리고 잔혹과 아름다움을 이리저리 재주껏 버무려서.
scene1.
국도를 거침없이 달리는 차안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열려있는 운전석 창문밖으로 그의 팔이 마치 지휘자처럼 흔들린다.
격정적인 베르디의 오페라 Pace, pace mio Dio! (평화를 주소서)의 음율에 따라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를 롱샷으로 잡으며 서서히 접근하기도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영상의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이 영화는 이렇게 멋지게 출발한다.
아주 오래전 과연 내가 이영화를 정말 보았는지 의심이 들정도로 이장면은 신선하다.
이미 이 첫장면에서 영화가 말하려는것 모든것이 들어있었음을 이제야 알게된다.
치명적인 운명!
죄악이 우리를 여기 이렇게 갈라 놓았네.
(중략)
오, 주여 주여 저에게 죽음을 내리소서.
죽음만이 제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Verdi / La Forza del Destino 中 Pace, pace mio Dio! (평화를 주소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중에서 레오노라의 아리아 '평화를 주소서'
평화, 평화, 오,주여! 잔인한 불운이
나를 수척하게 하네
나의 고통은 첫날만큼이나
똑같이 무겁게
여러해 동안 지속되었네.
나는 그를 사랑해. 그것은 사실!
주께서 그를
아름다움과 용맹으로 장식하셔서
아직도 난 그를 사랑해.
나의 마음에서그의 영상을
지울 수가 없네.
치명적인 운명!
죄악이 우리를 여기 이렇게 갈라 놓았네.
알바로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것은 하늘의 뜻
나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요.
오, 주여 주여 저에게 죽음을 내리소서.
죽음만이 제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이 영혼은 이 곳에세 헛되이
그토록 많은 고통의 희생인
평화를 갈구합니다.
그토록 많은 고통가운데 헛되이 이 영혼은.
[그녀는 구아르디아노가 식량을 둔 바위로 간다]
빈약한 식량
그대는 나의 불쌍한
삶을 연장하러 왔는가?
그런데 누가 여기로 오고 있지?
누가 감히 이 성역을 더럽힐까? 저주! 저주!
[그녀는 동굴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scene2.
그녀의 아파트에 놓여있던 소파.
친구의 남편과 수많은 섹스를하던 그 소파의 색깔은 상징적이다.
대부분의 색들과 마찬가지로 주홍색 Scarlet도 마찬가지로 애매한 색이다.
아래의 도표에서도 알수 있듯이 주홍색은 제조사마다 그리고 안료의 특징에 따라 수없이 많은 색들의 샘플들이 존재한다.
마치 우리가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그 두리뭉실한 표현법에 한게가 있듯이 주홍색 또한 한계가 없는듯 끝없는 색의 향연이
벌어질수 있다는 것이다.
The Scarlet Letter
그녀의 소파는 주홍색이다.
영화속 주홍색 소파는 소설속의 헤스터 프린이 옷깃에 곱게 수놓고 다녔던 진홍빛 A자(간통 Adultery)를 대체한다.
얼마전 잠이 안와 한국영화 주홍글씨를 보았다.
한석규나 이은주는 뛰어난 배우였지만 이번에는 엄지원과 성현아의 연기가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엄지원의 팔색조 같은 연기 변신력에 매번 감탄하고 있는 나름 엄지원의 광팬이다.-
영화속 사람들은 모두가 불륜이라는 공통적인 짐을 지고 살고있는데 그러한 주홍색 짐들이 색채표에
나와있는것 만큼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는 팜므파탈의 주인공 이은주.
아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것에 전혀 의심조차도 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아내와 아내 친구를 모두 사랑한다고 믿고있는 한석규.
사랑하는 이은주를 잃지 않기 위해 이은주의 남자친구였던 한석규와 결혼한 엄지원.
복잡 미묘한 느닷없는 치정살인극의 주연 성현아.
사실 이영화는 원작자 N, 호돈의 소설 주홍글씨와 특별한 관련성이 없다.
-사실은 두편의 소설, 즉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낸것이다-
억지로 찾는다면 작품속 인물들의 간통과 주홍색 소파 그리고 한석규와 이은주가 자동차 트렁크에 갇혔을때
한석규의 아이를 임신한 이은주가 자신의 아이 이름을 진주(Pearl-헤스터 프린 딸의 이름)로 지었다는것 외에는.
영화속 인물들은 저마다 각자만의 사랑을 품고있고 그 사랑이 품어내는 독소들은 결국 주홍색 핏빛이 되어 영화마지막을
처절하게 장식한다.
이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은주가 이영화를 찍지 않았었다면
그녀의 생을 그렇게 짧게 끝내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갇힌 트렁크 안에서 한석규의 권총을 자신의 턱에 들이대는 그녀의 간절한 몸짓과 눈빛을 보며.
아니 최소한 영화 첫장면에 삽입된 평화를 주소서라는 베르디의 곡만 없었더라도 그녀는 지금도
생존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헛된 상상을 해본다,
마지막 장면에 한석규가 성현아에게 묻는다.
그남자를 사랑했습니까?
사랑하면 괜찮은건가요?
인간의 사랑이 아우를수있는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것들보다 훨씬 보잘것 없고 초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사랑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모든것을 잃기도 한다.
이은주
<주홍글씨>(2004, 변혁 감독)
첫댓글 백화점녀 국물녀 어쩌구 하는 무작위적인 사생활 침해적 동영상들이 현대의 주홍글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동영상의 게시 가능 여부나 유효기간 등의 제도도 정립되지 않은 데다 이미 불특정 다수의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었으니까. 사회정의 실현의 효과에 비해 프라이버시 침해가 너무 큰것 같아요. 공권력도 (ex 경찰) 사안의 경중을 따질 새도 없이 인터넷 유포된 사건들에 우선권을 두게 되는. ...그나저나 이은주, 역시 예쁘네요.
보스코님 저 이 음악 정말 좋아하는데.. 헤스터의 이미지에 깊이 각인되어있어서인지..이 영화엔 쉽게 몰입하지 못햇어요..
하지만..두서번 보면서 참 영화를 잘 만드는구나 이은주 자살 후 더 많이 느낀 것을 보면 인간은 편견에 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그 리뷰 미즐에서 읽고 참 인상깊었는데 다시 또 읽어도 좋습니다.
이은주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