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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계간평
소설의 활력과 빈곤
김성달
공지영의 단편 「맨발로 글목을 돌다」(『문학사상』, 2010년 12월호)를 읽고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니 이 작품이 2011년 이상문학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막 전파를 타고 있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나’로 나오는 소설이다. ‘나’는 자신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H’를 만나러 간다. 번역가 ‘H’는 일본인으로 북한에 납치당했다가 돌아와 번역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일본어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H’를 보는 순간 “그의 삶이 내 삶속에 끼어드는” 예감을 바탕으로, 위안부의 순이, 아유스비츠의 비극, 탈레반에게 납치당한 친구들이 있는 교회에 다녔던 조카, 그리고 7년 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나의 고백이 얼기설기 얽힌 작품이다. 고백에 겨워서일까 호흡이 거칠고 너무 맨몸으로 달려들어 소설적 미학내지 구조적 미숙함이 보이지만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로 덮어버리는 능숙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한아의 「오픈하우스」(『문학사상』, 2010년 12월호)는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억지로 꾸며낸 흔적이 없는 간결한 문체의 힘인 듯하다.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들을 위한 S치료소에 입원한 세 여자가 있다. 우선 지난 1년 동안 몸이 물약을 먹는 엘리스처럼 작아지고, 작아진 나는 연구소에 근무하는 30대의 노처녀인데 연애에 실패하고 직장 상사인 유부남을 만나는 동안 “일주일에 반은 야근을 하고, 야근이 없는 날이면 혼자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들였다. 김밥, 샌드위치, 피자 도넛, 치킨, 땅콩버터 따위를 품에 안고 돌아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음식을 먹었다. 입속에서 음식을 부서뜨리고, 씹고, 깨물고, 삼키는 동안 나는 멍한 쾌감을 느끼”는가 하면, 사흘간 휴가를 같이 떠나기로 한 유부남이 가족들 때문에 안 될 것 같다는 통보를 해오자 사흘을 굶으며 “그 후 내 몸은 점점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블랙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스킷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견뎠다. 살이 빠지면서, 내 몸은 점차 윤곽을 드러냈다. 골반이 솟아올랐고, 팔꿈치 뼈가 튀어나왔고, 구슬처럼 동그란 손목뼈가 도드라졌다. 그와 헤어질 무렵 나는 몸무게가 35킬로그램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때즈음엔 이미 그에 대한 관심보다 내 몸에 대한 관심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알몸으로 거울에 서면, 갈비뼈를 하나하나 세어 볼”수 있는 여자이다. 또 한 여자는 3년째 이 치료소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수미라는 아가씨이다. 내 옆방의 여자는 결혼한 여자인데 17살에 치료 상담을 받은 후 무려 1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치료소를 찾고 있으며 남편은 출장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세 여자가 치료소 주변을 함께 걷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반쯤 그늘이 드리워진 잔디밭이 보이”고 “연못의 작고 둥근 바위 위에 노랑부리 새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집을 발견한다. 그 집은 건축가인 남편이 아내를 위해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인데 지금은 비어있고 뚱뚱한 공인중개사 여사가 가끔 와서 청소를 하는 집이다. 중개사 여자는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집은 텅 비어 있는데, 저 언덕 너머 허물어져 가는 집은 방마다 빠짐없이 사람들이 들어서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라고 세 여자 앞에서 지껄이다 풀색 자동차에 올라타고 떠난다. 그때 키가 훌쩍 큰 남자가 여자들 앞에 나타나 “혜주야” 하고 불렀고 옆방여자가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하고 대화가 이어지더니 곧 “등 뒤로 툭탁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거짓말, 나약한, 이해하려는, 중독, 고집스러운, 내 몸, 믿을 수 없는, 지긋지긋한…….” 등과 같은 말들이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이때 나는 장미향 초콜릿을 까서 수미에게 건네고, 박하향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었다. 이곳에 들어와 배정 받은 방 매트리스 밑에서 발견한 초콜릿 중 하나였다. 내가 오기 전 이방에는 하루에도 “매일 밤 윗몸일으키기를 수천 개씩 하”고, “고작 윗몸일으키기나 하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어 버린” 체중 25킬로그램의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가 있었다. 내가 먹은 초콜릿이 다름 아닌 생리적인 구원의 대상이다. 그래서 내가 “숨을 내쉴 때마다 공기 중에 하얀 입김이 퍼지”는 것이다. 입김은 생명이다. 수다 떨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요즘 소설에서 흔하게 보이는 과도하고 독기어린 뒤틀린 자의식 없이도 전체를 보아내는 시선이 아름답다.
김연수의 「일기예보의 기법」(『문학동네』 겨울호)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고 기상대에 근무하는 여자 미경의 이야기이다. 미경은 사귀던 남자(자신이 발로 차 버린) 형식이 결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마다 전화를 걸어 “그때 나한테 팻 메스니 시디를 선물로 줬었잖아. 기억나? 왜 그 시디를 고르게 된 거였니?”, “그렇게 네가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이나 거기 앉아 있었어. 어두운 느티나무 아래에 나 혼자.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같은 날카로운 질문과 석연찮은 얼버무림으로 이어지는 전화를 매일 걸다가 결국은 형식의 약혼녀가 값비싼 식기 세트를 부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전화를 하지 않은 여자이다. 또한 일찍이 여덟 살 때 아빠와 사별한 엄마가 간호사로 다니던 병원의 원장 닥터 강을 “두 개의 누런 송곳니가 툭 튀어나온 흉악한 짐승의 몰골”인 늑대로 생각했고, 닥터 강이 슬픈 표정으로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는 말을 오빠에게 하고 떠난 뒤에도 계속 그 늑대를 의식하며 살아온 이혼녀이다. 2009 올해의 최우수 동네예보관 미경의 연애가 아닌 순애보가 이 소설의 진짜 사연이다. “미경이 세진이라는 이름의 청년을 눈여겨보게 된 건 신규자들을 환영하는 회식자리에서였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기가 기상청에 들어오게 된 건 전적으로 그 전해 12월의 안개 덕분이라고 했다. 얘기인즉슨, 공채시험을 준비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돼 시험을 포기할 정도로 방황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밤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는데,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던 건 시정거리 삼 미터도 안 될 안개였다. 그건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부유하는 상실의 덩어리와 같았다고 세진은 회상했다. 술집에서 친구가 들려준 위로의 말들은 헛되이 사라졌는데, 안개 속을 걸어가는 일만은 무엇보다 위안이 됐다고. 대기 속에서 순환하는 바람들과 물방울들과 따뜻하고 차가운 공기들이 그를 감싸고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고. 그리하여 안개 속을 걸어가는 동안 그를 둘러싸고 있던 고통과 불안은 서서히 사라져, 마침내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세진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그래서 다시 시험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고 결국 기상청에 들어오게 됐다고. 그러면서 그는 첫눈이 내리는 날 헤어진 여자 친구와 재회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때까지는 멋진 예보관이 되어 사랑을 되찾겠노라고 다짐했다.” 미경이 세진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세진의 잘 생긴 얼굴과 더없이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 때문이지만 신앙고백과도 같은 안개 이야기도 한 몫 한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바로 결말이 보인다. 이런 세진의 독백 앞에, 즉 작가의 지나친 친절 고백 앞에서. 그래서 동네최우수예보관 미경이 “비가 내린다고 써야 할 텐데, 미경의 오후 다섯 시 예보 문에는 네 글자, 첫 눈 예상. 예상기온이 높든 낮든 간에 첫눈 예상. 너희 기상대만 날씨가 미친 거냐고 항의전화가 쇄도하리라는 게 불을 보듯 뻔 한데도 미경만은 무조건 첫 눈 예상. 무슨 일이 있어도 첫 눈 예상.”이라는 예보를 한다는 문장을 읽는데도 가슴이 떨리지 않았다. 작가가 이미 비법을 들켰기 때문이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미경이 이럴 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윤고은의 「요리사의 손톱」(『문학동네』 겨울호)은 지역신문의 광고기자 정방배 이야기. ‘CHEF’S MAIL’을 ‘CHEF’S NAIL’로 잘못 읽은 즉,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요리사의 손톱으로 착각 혹은 혼동한 정방배가 회사에서 잘린다. 회사에서 임대해 준 집에서도 쫓겨나야 할 순간에 정방배가 들어간 직장이 ‘광고대행사 책벌레’인데 책 읽는 것이 직업이다. 사람이 제일 많이 타는 지하철 2호선에서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되는 것. 읽어야 할 책은 「민달팽이의 집」 작가는 이 책과 지하철에서 어떤 사내가 직접 판매하는 “세프스 네일, 그러니까 요리사의 손톱이라 합니다.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는 책”을 연결시키며 결국 정방배를 지하철 역사에 몸을 던지게 하고 ‘입체에서 평면으로’ 즉 정방배를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하고 밟혀 죽는 ‘민달팽이’로 묘사하는데 허전하다. 정방배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이야기를 난해하게 만드는 재주는 있는데 자연스럽지 못한 게 흠이랄까.
최민석의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창작과 비평』 겨울호)는 활력이 넘치는 유쾌한 작품이다. ‘유리스탄 스타코니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사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소설의 화자는 키르키스스탄의 용사의 후예인데 한국에 일을 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이다.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떡을 급하게 먹다가 급사한 콩고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분개한다. 사장이 빨리 떡을 먹지 않으면 새마을 운동을 배울 수 없다고 채근하는 바람에 급히 떡을 삼키다 급사한 주글레리 죽음을 두고 “경찰은 주씨의 죽음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흔한 자연사라고 했다. 떡 먹다 죽은 사람들의 무덤을 쌓아놓으면 태백산맥을 능가할 것이라며 껄껄”대는 한국사회에 분개해 청와대를 폭파하기로 하고 동료 이주 노동자와 공모하여 결국 서울의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지만 청와대를 폭파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주문진으로 달려간다.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는 어느새 진부한 이야기로 취급받고 있는데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필력으로 재미있게 읽힌다. 능청스러움이 동반하기 쉬운 과장이나 약자에게 흔히 보이기 마련인 막연한 화해의 제스처도 없이 이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선주의 중편소설 「바다의 깊은 뜻은」(『한국소설』 2011. 1월호)은 잘 읽힌다. 6·25 전쟁 참전 용사인 제럴드 하베이의 전쟁 체험과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잘 직조된 작품이다. 자칫 진부하게 읽힐 소재와 구성인데도 읽어갈수록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과 무인도 고립이라는 극한 상황이 가져오는 진정성이다. 한국군 유격대원 천대위와 그의 누이동생 설화, 그리고 미사령부의 제럴드 하베이 소위의 사연이 애처롭다. 대화도에서 백령도로 오는 도중 배에서 난파한 제럴드와 설화가 아무도 없는 섬 파라도에서 원시적인 사랑을 키워가는 장면은 아름답고 서늘하다. 군인의 신분을 잊고 타민족 남자라는 것을 망각한 남과 여는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전쟁 중이라는 것도, 지도상에도 없을 조그마한 섬에 갇혀 있다는 것도……” 모른다.
중편소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한국소설』, 2011년 2월호)는 작가 이선의 저력을 확인해주는 작품이다. “아빠가 돌아온 것은 선기가 막 스물 한 개의 촛불을 끄고 난 후였다”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생각의 여백과 울림이 크다.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간 아버지가 4년 만에 느닷없이 돌아와 생기는 가족 사이의 크고 작은 감정과 에피소드를 은수저 한 벌로 밀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저 이가 웬일이래. 엄마가 뜨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하마터면 우리 입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올 뻔했다. 거리에서 반소매 차림도 볼 수 있는 유별나게 일찍 더운 4월 중순인데 아빠는 겨울패딩 점퍼 차림으로 헐렁한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현관에 서 있었다. 아빠를 알아본 순간 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도대체 문단속을 왜 제대로 안 하는 거야.” 처음부터 이런 반응이니 이 집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은 이미 속옷을 드러냈을 터. 사나흘 있다 또 훌쩍 사라질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림을 맡아 앞으로 가족들의 밥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하지만 부도로 풍지박살 난 집에서 먹고살기 위해 출퇴근 시간이 제각각인 식구들이 모여 앉아 밥을 먹기란 애당초 그른 일. 즉 가족의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암시로 작가는 독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말한 대로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언니처럼 빨래건조대까지 뒤져보았지만 집안 어느 곳에도 아빠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소파에 놓여있던 이부자리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수저통은 그대로 싱크대 위에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은수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 사람에게 일일이 은수저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녹슨 은수저를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이연희의 짧은 단편 「재판장, 악인의 낯빛을 보다」(『문학사계』 겨울호)는 “악인의 낯 보기? 근데 누가 악인”인가를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서사 구조로 묻고 있는 작품이다. “이제 선인이 악인이고 악인이 선인인데, 재판관들 악인의 낯 보기가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하면서도 이 작품에서는 집요하게 악인의 낯빛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고 있지만 독자들이 악인과 선인의 낯짝을 구별하기 힘들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눈물 쭉쭉 빼며 파·마늘을 다듬고 밤이면 다락방으로 잠자러 올라가던 여자가 어느 날 “다락이 아니라 간이 화장실 변기 옆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세숫대야 앞에서요. 세숫대야 물 한가득 받아놓고 거기 머리가 거꾸로 박혀있는 형상으로 죽”고 얼마 후 그 식당여자 아들도 자살을 한다. “자신의 모교 문리대 건물 옆 작은 연못 속에 풍덩 빠져서, 모친과 똑같이 물로 죽었답니다.” 소설은 이 둘 중에 누가 악인이냐고 묻고, 가난에 대해 묻지만 결국은 이 세상 ‘수사학의 왕’ 재판장의 낯짝을 자꾸 궁금하게 만든다.
지난 겨울에 나온 소설들을 읽으며 많은 작품들이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모호하며 모순적이며 무의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근본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해서 어떤 도식 속에 들어가지 않고 평평하기보다는 구불거리고 평탄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불안, 혼란, 모순, 모호, 무의식 같은 양상들이 작품에서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맨 얼굴로 고스란히 뻔뻔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작가는 주변의 결함과 틈과 찌꺼기의 직관을 통해서 작품을 창조하는데 요즘 소설은 너무 반듯하고 너무 똑똑하다. 즉 직관이 아니라 논리와 계산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소설의 활력 속 빈곤을 절감했다.
김성달 / 1964년 경북 영덕 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문학』과 『삶이 보이는 창』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환풍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