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이다. 국력이 다하여 倭國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아픔이 되살아나는 날이다. 오늘은 국어교사 출신인 여당의 한 실력자가 태극기를 태국기로 트위터에 잘못 올렸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다. 요즘같이 한글이 혼란스런 때도 없다. 어쨋거나 삼일절 해프닝이고 높으신 양반에게는 삼일절 망신살이다. 우린 자전거를 잔차로 불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 높이 올라 갈수록 빨간 궁뎅이가 더 잘 보인다. 사람도 지위가 높아 갈수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린 잔차를 타고 행주산성엘 오르기로 했다. 보통 때는 행주산성 원조집이라는 국수집 언저리에서 맴돌다 되돌아 오는데, 오늘은 삼일절이라 기념탑이 있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하였다.
산성정문을 지나 초입에 들어서면, 권율장군이 긴칼을 짚고 서있다.
아침에 내린 春雪이 산응달에 쌓여 있다.
방화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3만명의 倭軍들이 개미떼처럼 몰려 들었을 한양 쪽 자유로, 지금은 자동차의 물결이다.
대첩비각과 기념탑이 보인다.
비각 속에 있는 대첩비의 비문은 다 마모되어 읽을 수가 없다.
토성 터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덕양정이다. 시멘트로 만든 기둥이 거슬렸다.
행주산성을 내려와 집으로 오는 길에 뒤돌아 보았다.
다시는 倭賊 따위 들의 무리가 이 강토를 넘볼 수 없도록 우린 잘 해야한다.
행주대첩(幸州大捷)
행주대첩(幸州大捷)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지휘하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일본군을 싸워 크게 이긴 전투이다. 행주대첩은 진주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大捷, 크게 이긴 전투)으로 불리고, 진주대첩, 연안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육전 3대첩으로 불리며, 살수대첩, 구주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한민족 4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권율은 임진왜란 초에 광주 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이치 전투와 독성산성 전투 등 전공을 세워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다. 권율은 행주산성에 웅거하며 명군과 합세해서 한양을 탈환하려다 명군이 벽제관에서 대패하여 평양으로 돌아감으로써 고립 상태에 빠졌다.
한편 일본군은 총퇴각을 하던 중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을 대파하고 한양에 머물게 되었다.
권율은 1593년 음력 2월에는 병력을 나누어 부사령관 선거이에게 시흥 금주산(衿州山)에 진을 치게 한 후 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하였다. 이때 의병장 김천일과 승병장 처영의 병사들도 합세하여 총병력은 2,800여명에 이르렀다.
행주산성의 지형은 전방만 뚫려 있으며 후방에 한강이 흐르고 있었으므로 배수진이 되었다. 왜군은 오직 전방에서만 공격이 가능했다. 행주산성의 군민들은 3만 명의 대군으로 공격해 온 우키다 히데이에의 일본군을 맞아 바위, 화살, 불덩이, 끓는 물을 퍼부어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하고 적장 우키타 및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이시다 미츠나리, 킷카와 히로이에게 모두 부상을 입히고 격퇴하였다. 특히 우키타 히데이에는 중상을 입고 죽을 위기에 몰렸으나 부하 병사들이 우키타 히데이에를 업고 뛰어서 도망친 덕택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또한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한산도 대첩 때처럼 화살을 온몸에 맞은 채로 목숨만 붙어 달아났다.
이때 성내의 아녀자들이 치마 위에 짧은 덧치마를 대어 적군들에게 던질 돌덩이를 운반한 것이 행주치마의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1527년(중종 12년) 최세진이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에 의하면 임진왜란 전부터 행주치마라는 단어가 존재했다는 점으로 볼 때 이는 잘못되었다. 또한 이때 조선군의 신무기인 화차와 비격진천뢰도 맹활약한 바 있다. 행주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빛난다. 권율은 이 전공으로 도원수에 올랐다가 탈영병을 즉결 처분한 죄로 해직되었으나, 한성부판윤으로 재기용되어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을 겸직하였고, 1596년 충청도 순찰사에 이어 다시 도원수가 되어 어마(御馬)까지 하사받았다.
첫댓글 양훈이는 언제나 백작부인과 동행하는 모습이 참~~~좋~~타! 타이밍이 맞았더라면 맛있는 국수집을 가 볼 수 있었는데......
다음에 꼭 불러도라이~!
행주대교는 우리 동네 근처임에도 가 보질 못하네~~~
어제는 행주산성으로 출발하면서
자네와 승훈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한분은 불통이고...ㅎㅎ
다음에 행주산성 국수집에서 한번 보자! ^^
무사 한 분은 불통이었는지......ㅋㅋㅋㅋㅋ
족은 집에 간 줄 알았는데...ㅎ
예식장에 갔었다고 합니다...^^
행주를 수십차례 가도 산성을 오른적이 없고 국수집도 못가봔 행주산 아래서만 맴돌다 와신게....
옛 어르신들에게 삼가 감사와 조의를 표합니다.
언제 국수집에서들 보자고...
세수대야에 담은 국수값이 5백원 올라서 3,500원 이더구만,
물가가 걱정이 된다! ㅎㅎ
내일 올 수있으면 이쪽 동네로 오라! 장춘이랑 말곡~~~
장춘? 돈돈이 미운 털 박힌 생이여.
나학교때 울엄니가 해주신 우동 낭푸니만허다.
행주 대 장춘이라...각각 맛이 다르지 않은가~~나는 양쪽에 다 가고 싶네.
영철아! 가고 싶으면 양쪽 다 가라!! 그러나 때로는 일부 회원의 입장도 배려하는 심부름꾼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행주기씨 촌락 이기도함 무순 우연도!!!맛은 몰라도 양은 최고로 많습니다!!!
캡틴,그날 행주산성에 있는 나무가지 위에 쌓여있는 눈들이 어울러져 마치 동양화 화폭속에서 노는 기분이 나겠네.특히 백작부인과 함께라서.잔설이 떱힌 북한산 자체가 동양화였으니까.그날이 기억되네.
게메... 春雪이라 가녀린 오후 햇살에도 금방 녹아버리더군!ㅎ
다행인가? 우리 올라갈 때는 殘雪이 남아 있어서 그런대로 멋진 풍경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