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두째아이를 낳는다 합니다.
그래서 제 마님께서 운전하여 여수를 가자고 명합니다.
저는 하는수 없이 평일인데도 운전하여 그곳으로 곧장 달려갑니다.
그 동안 궁금하였던 "이순신 대교"도 구경할 겸...
작은 아이에게 전화로 물어봅니다.
이순신 대교를 거쳐서 가려면 어떻게해야 하는가 라고 물으니
머라고 머라고 하더니만 "옥과"라는 곳에서 내리면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답니다.
세계엑스포를 개최하였기때문에 임시 개통한 교량이니 엑스포개최 시기에 맞춰서 부랴 부랴
임시 개통을 하였으리라 생각하니
지난 세월에서 수없이 많이 공기를 재촉받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 공사에 추입된 최초공사 공기 맞추느라 얼마나 많이 힘들고 시달렸을까 생각하니
약간의 쓴웃음도 나옵니다.
예의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일년내내 막히고 왜 중앙고속도로 지선이라고 부르는지 연유를 알수 없는 중앙고속도로를 잠시 경유하여
남헤 고속도로를 거쳐 얼마전에 탁티운 남해고속도로를 거쳐가니
내려야 할 그곳은 이곳과는 달리 나들목이 많아 꼼꼼히 챙겨야합니다.
옥과라는 곳이 동광양입니다.
네비게이션은 도통 "이순신대교"라는 것 자체가 없읍니다.
일단 동광양에서 내려 이정표가 가르쳐 주는데로 가는데
네비게이션이라는 기계는 계속하여 우회전을 하라고 재촉을 합니다.
그렇게 수십번에 걸쳐 네비 선생님의 가르킴을 외면하고 곧장 달려가니
이정표에 이순신대교라는 글씨와 여수 EXPO 라는 글씨가 덭붙혀져 있다.
그렇게 10여키로를가는데 갑자기 앞에 이순신대교 이정표가 나오면서 제일 갓길인 5차선으로
들어가라는 화살표와 빨간 분리봉이 길게 늘려트려져 있고
그 앞에 청년 한 사람이 손전등으로 연신 신호를 흔들고 있어
갑자기 멈춰서서 뒤에서 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하여 몇대를 기다렸다가 간신히 램프에 올렸다.
신기할 정도로 이상하게 고가 도로를 올라 표시하는데로 가니
주탑이 매우 높다는 교량이 나타난다.
마치 거가대교처럼 ...
이 다리를 거쳐 마지막에 다다르니 여천공단,돌산대교라는 간판이 나오는데
미심적지만 여천공단을 택하였다.(돌아올 때는 돌산대교 방향으로 왔다)
아이집에 가니 만삭의 며느리가 아이와 함께 예의 행활과 놀이를 하고 있는데
여늬때처럼 들어가자 마자 징징 울어대며 외간 사람들을 경계를 한다.
그 다음날 분만위해 떠나면 아이에게 여늬때처럼 "학교갔다올께"라고 말하며 떠났다.
12시에 분만이니 그 후에 잠시와서 아기를 보고 큰아이를 데리고 ㅇㅅ으로 가라고 코치해준다.
에의 때가 되어 모든 채비는 어제 해 놓았기에
큰아이만 꽤서 데려가려고 나가서 밥먹으러 가자니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쩌는수 없이 아이의 짐은 다 실어놓고 혼자 ㅇㅅ로 향하였다.
병원 마치고 아이를 싣고 ㅇㅅ와서 새벽에 병원으로 간단다.
아이 아버지도 힘든일이다.
자정이 되어 아이가 아기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새벽에 아기를 두고 ㅇㅅ병원으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난 아기는 징징하더니만 울음을 그치고
금새 사태를 파악하였는지 할머니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두고 할머니는 측은하다며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 상황을 전해주었더니 엄마도 눈물을 흘린다.
고부가 눈물단지를 비울줄을 모른다.
그렇게 어린아이 하나에 노인 둘이 매달려 하는일없이 하루 하루를 이어간다.
문밖은 커녕 현관문앞 근처에 조차 가지 않던 아이가
실내 자동차를 태워달래며 그 영역을 조금씩 넓히더니
마지막 내근 사무실 안에까지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인다.
그리고 자동차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제발로 그 방에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 출입현관 앞이라는 개념 자체도 무너져 현관문앞을 뻔질나게 지나쳐서 끝방을 들락거린다.
그리고 어느날
가지고 온 모자 중에 끈만 달린 모자를 혼자서 썻다가 벗어 놓는다.
그리고는 한참을 놀고 있는데 복도에 나가 자전거를 타자니 따라 나선다.
그래서 처음으로 출입때 쓰는 신을 신고
자전거에 타고
문밖 복도에 나간서 빙빙 돌아다녀본다.
그러니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을 가르킨다.
얼른 두 노인내외는 옷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않고
반가운 마음에 자전거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1층으로 내려간다.
아파트 안에 설치된 미끄럼 틀이 있는 작은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 선수가 이 아니냐...
마침 그곳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나 오후에 뙤약볕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땀이 비오듯하는데 ...
그곳을 피하여 아파트 주위를 돌며 자전거 보관대가 잇는 구명에 들어가 "오리피스" 목에서
실바람을 중간 중간 맞으며 한바퀴를 도는데 땀이 끝이 없다.
마침 이런 경우 대비해 차 열쇠를 갖고 왔길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3 祖,孫이 차를 타고
처음으로 드라이브 길에 올랐다.목적지 없이....
ㅇㅇ 운전면허시험장....
실내가 쾌적하게 에어컨이 있고
운전시험과 연습용차량이 다양하게 있어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에 딱 맞을듯...
아이가 자판기에서 무엇을 사서 달라는데
두노인은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다.
얼른 사무실에 들어와서 염치 불구하고 책임자 같은 분에게 "여차 저차 "설명하니
1000원을 얼른 챙겨 주며 기다리라고 하더니
냉장고에서 아주 시원하게 냉장된 캔음료를 들고 나와 가져가란다.
(새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하며 염치 불구하고 나중에 갚겠다하며 밖에 나와보니)
아이가 울고 있는데
어떤 분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서 주려하니
아이가 한사코 않먹는단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은 일체 받아 먹지를 않으니..)
가져간 음료를 주니 얼른 받아 마신다.
이 장면도 엄마가 보면 질겁을 할지 모르지만
앞에서 보고 있질 않으니 반칙에 반칙을 반복하는수 밖에 묘책이 없다.
그렇게 동냥 구걸로 울음을 멈추게하고 집으로 들어오려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에 오니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얼른들어가서 아이의 옷가지,간식꺼리,지갑과 더위에 필요한 소도구를 챙겨 나온다.
그렇게 코스를 바꿔 들어온 다음
아무래도 더 놀다 들어가자 떼를 쓸것같아
아예 저녁을 외식을하기로 하였다.
저녁은 순두부와 청국장을 전문으로 밥을 돌솥밥을 눈앞에서 끓여주는 집으로 가잔다.
펄펄끓는 밥솥과
펄펄 끓는 청국장,순두부
아이는 본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우리가 앉은 식탁을 뺑뺑 맴을 돈다.
9시 뉴스를 할 즈음 집으로 들어왔는데 또 다시 들어가지 않겠단다.
다시 다른 코스로 드라이브 하여 들어오니 자시가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그리고 짧은 코스 드라이브를 마치고 겨우 들어왔다.
이렇게 첫번째 외출을 마쳐는데 꼭 10일만에 거사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점심무렵
아이가 현관문앞을 가르키며 나가잔다.
(밖은 태양이 이글 이글 차안의 40도 가가운 온도의 불볕 더위 )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
그렇게 바라던 외출을 열흘만에 성공(?)한 것에 대한 희열이 채 가시기 전이라 데리고 뜰에 나왔다.
그리고 어재와 비슷한 반복 끝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 보듬하여 들어오니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처음으로 강압을 ...
억지로 잠재우려고 TV를 보게한다.
(이것도 하루에 두번만 보여주라고 하던 엄마의 신신 당부를 어기고 반칙을 거듭하고 있다.)
주말에 데리러 오기로 한 아이에게 데리고 갈터이니 오지말라고 전화하였단다.
보내고 나면 보고싶어 않되겠단다.
얼마전 넘어져 손목에 골절을 겪어 아직도 온전하지 않은 할머니에게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안아달라고 보채는데도...
아니하던
아침에 깨자마자 안아달라고 보채기까지..
(집에서는 좀처럼 안아달라고 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이 또한 반칙을 거듭하기 시작하였는데
분담을 위하여 팔을 벌려도 내게는 거들떠도 보질 않는다.
오랜 휴가 기간을 이렇게 보내고
아기 낳고 2주가 되는 내일 데리고 왔으면 하지만
긴 후가를 마치자 마자
또 하루를 비우기가 눈치가 보인다.
여차 저차 설명하니 주말에 데리고 가자니 쾌히 승낙한다.
아마도 더 데리고 싶어서 일게다.
팔이고 허리가 끊어지더라도
손자를 원없이 안고 싶은게다.
주말오후 늦게 ㅇㅅ를 가면 엑스포 마지막 주말인데다
다음날 점심에 ㅇㅅ에서 국민학교 동창회를 하여야한다.
아마 4시간을 가정하면 그곳에서 4시에 출발하여야 하고
정체를 감안하면 7시에 출발하여야 할지 모른다.
DNA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핏줄은 어쩔수 없나보다.
그렇게 내심 손자를 BABY SEATING 하지 않으려던 마음이고 뭐고 간에
핏줄을 안아 보는 순간 모든 결심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다.
누가 시켰는가?
어느 학원에서 가르쳐 주었는가?
**지금까지 빌린 돈을 갚지도 못하고 있는데...
( 그 맘씨 좋은 사람들 지금은 서운한 생각도 들 때가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