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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心情)이란 무엇인가.
말선8-343 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논리적(論理的)으로 해명(解明)될 수 없는 세계(世界)입니다.
<신천성경p61>심정(心情)이란 무엇인가? 심정(心情)은 사랑보다 더 전체(全體)의 중심(中心)입니다. 심정(心情)은 사랑의 과정(過程)을 거친 결과적(結果的)인 입장(立場)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체적(立體的)인 세계(世界)의 중심(中心)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中心)은 심정(心情)인데 이 심정(心情)은 반드시 가정(家庭)을 중심(中心)삼고 살아 있어야 하고 그러한 심정(心情)은 하나님을 중심(中心)삼고 연결(連結)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 가정(家庭)이 좋은가? 그곳은 심정(心情)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復歸)의 완성(完成)은 심정(心情)을 빼놓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1330,) 심정(心情)은 생활관념(生活觀念)등, 모든 것을 통과(通過)할 수 있는 내용(內容)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生命)의 근원(根源)에 위치(位置)에 있는 것이 심정(心情)이기 때문에 생명(生命)을 부정(否定)하더라도 심정(心情)을 부정(否定)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存在)를 부정(否定)하더라도 심정(心情)을 부정(否定)할 수는 없습니다. 심정(心情)은 존재(存在) 이전(以前)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결론(結論)이 나옵니다.
우리는 심정(心情)을 본 일이 없습니다. 심정(心情)이 긴 것이냐, 둥근 것이냐, 높은 것이냐 하고 따져 묻는다면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그리움이 가득히 괴여온다는 것입니다. 신경(神經)의 최고의 촉감(觸感)까지 가득히 괴여옵니다. 오감(五感)으로 한계(限界)를 잴 수 있는 심정(心情)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인간(人間)의 심정(心情)만 하여도 이러한데 절대적(絶對的) 심정(心情)의 주체(主體)이신 하나님과 관계(關係)를 가지고 그 심정(心情)에 접한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은 표면(表面)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존재(存在)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심정주의(心情主義), 심정이념(心情理念)을 중심(中心)으로 새로운 세계(世界)를 향(向)해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용사(統一勇士)들입니다.
<신천성경p1330> 심정(心情)은 마음(心)의 정(情)을 말합니다. 마음의 정(情)이 있는 곳은 어디나 심정권(心情權)에 속(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人間)을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心情)의 흐름이 벌써 거기에 내적(內的)으로 연결(連結)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전기(電氣)가 통(通)하는 것이 심정권(心情權)입니다.
심정권(心情權)에 대한 체휼(體恤)은 그 전기(電氣)를 ‘아이고!’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체휼(心情體恤)은 얼마나 강(强)한가를 느끼는 것입니다. 좋은가 어떤가를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권(心情權)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통(通)할 수 있는 내용(內容)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심정권(心情權)에 속(續)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은 어디든지 심정적(心情的) 전기(電氣)가 통(通)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기(自己) 아기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이웃동네의 거지, 혹은 빈민(貧民)의 아들딸이 젖을 못 먹고 있으면 그들에게 자기(自己)의 아들딸과 같이 젖을 먹여줘야 심정(心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심정(心情)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고, 세계(世界)를 넘어서라도 그 사랑을 실천(實踐)해야만 심정(心情)의 세계(世界)가 오게 됩니다. 정(情)의 세계(世界)가 옵니다. 동네에 수많은 아들딸이 태어나면 그들을 자기(自己) 아들딸보다 더 사랑할 수 있고, 자기(自己)아들딸을 사랑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심정(心情)을 가져야만 심정(心情)의 세계(世界), 해방(解放)의 세계(世界), 하나님이 찾아올 수 있는 세계(世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한 몸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영혼의 세계p162.> 심정(心情)이란 뭐냐? 심정권(心情權)이 도대체 무엇이냐? 심정(心情)이라는 것은 마음의 정(情)을 말합니다. 마음의 정(情)이 있는 곳은 어디나 심정권(心情權)에 속합니다. 이러한 심정권(心情權)에는 모든 피조세계(被造世界)가 다 들어갑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心情)의 흐름이 벌써 거기에 내적(內的)으로 연결(連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정(心情)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절대적(絶對的)이고 무한(無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심정권(心情權)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의 전기(電氣)가 통(通)하는 권(權)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理解)될 것입니다. 그걸 잘 모르겠으면 전기(電氣)를 한번 잡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졸던 사람도 정신(精神)이 반짝 들 것입니다. 몸에서 작동(作動)이 일어납니다. 또 드러누웠든 사람도 즉각 일어서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정(心情)만 지지직 통(通)하면 우주(宇宙)가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心情)만 차지하면 모든 게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기(電氣)와 같은 사랑의 주체(主體)입니다. 그런데 그 주체(主體)는 사람을 통(通)해야 합니다. 다 그런 상관관계(相關關係)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안테나가 높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안테나를 왜 세우느냐? 공중(空中)에 플러스 전기(電氣)가 있는데 그 플러스 전기(電氣)를 받아들이려니 안테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거기에 높을수록 거기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안테나가 높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영혼의 세계p165> 심정(心情)이라는 것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의 중심(中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직결(直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남철(指南鐵)이 있는데 지남철(指南鐵)이 혼자 있을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쇠붙이만 만나면 위대(偉大)한 힘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대할 수 있는 쇠붙이요. 하나님의 심정(心情)은 지남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방향(方向)이 같고 모든 위치(位置)가 같으면 자동적(自動的)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무뚝뚝한 남자(男子)도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 줄 모르지만 아름다운 여자(女子)가 오게 되면 자연(自然)히 가게 됩니다. 여자(女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否定)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지남철(指南鐵)이 필요(必要)하고, 사랑의 전기(電氣)가 필요(必要)합니다. 그렇다면 그 세계(世界)는 사랑의 전기(電氣)로 충만한 세계입니다. 영계(靈界)라는 곳이 사랑의 전기(電氣)로 충만(充滿)한 세계(世界)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전기(電氣)를 가지고는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조화(調和)가 벌어집니다. 이런 입장(立場)에서 우리의 의식구조(意識構造)를 가지고 치리(治理)할 수 있는 가능권(可能權)이 영계(靈界)라는 것을 생각(生角)할 수 있습니다.
말선9-314 생명(生命)의 내용(內容)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게 되면 심정(心情)이 나옵니다. 심정(心情)은 사랑입니다. 생명(生命)이자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생명(生命)을 주창(主唱)하고 사랑을 주창(主唱)하는 것입니다.
말선8-275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도 지(知), 정(情), 의(意)를 내포한 주인공(主人公)을 찾습니다. 지(知)와 의(意)는 상대적(相對的)이로되, 정(情)은 절대적(絶對的)입니다. 세상(世上)에 아무리 훌륭한 인격(人格)을 갖춘 자(者), 명망(名望)이 높은 자(者)가 있다 할지라도 심정적(心情的)인 면(面)에 있어서 어느 한 기준(基準)에 이르지 못했다면 불행자(不幸者)입니다. 이걸 부정(否定)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선51-75 사랑은 중심(中心)이요. 뜻은 상대(相對)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뜻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말선462-285 사랑받는 자리에 가게 되면 좋은 것도 좋은 것이요. 나쁜 것도 좋은 것이 된다는 거예요. 사랑만이 그 일이 가능(可能)하다는 거예요.
<신천성경p61>사랑과 심정(心情)은 어떻게 다른가? 보통 사랑이라 하면 마음이 들떠 있는 기분(氣忿)을 느끼고, 심정(心情)이라하면 마음과 밀접한 관계(關係)가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심정(心情)은 사방성(四方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정(心情)이 사랑보다 더 전체(全體)의 중심(中心)입니다. 심정(心情)은 사랑의 과정(過程)을 거친 결과적(結果的)인 입장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심정(心情)은 입체적(立體的)인 세계(世界)의 중심(中心)입니다.
말선9-90하나님께서 정성(精誠)을 들여 지으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심정(心情)은 죽었습니다. 이 심정(心情)을 부활(復活)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6천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심정기준(心情基準)을 갖춘 완전(完全)한 아담 해와를 찾아 세워 전세계(全世界)를 한꺼번에 복귀(復歸)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선9-313 하나님은 심정(心情)을 기반(基盤)으로 하여 모든 존재물(存在物)을 지으셨기에,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벗어난 만물(萬物)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하나님과의 심정(心情)의 귀일점((歸一點))을 찾아 그 자리를 닦아 놓기 위하여 이 땅위에 와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독생자(獨生子)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메시아다운 말씀이에요. 과연(果然) 메시아입니다.
말선7-55 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제제(帝制)도 받지 않지만 마음의 세계(世界)는 제제(帝制)를 받습니다. 마음의 세계(世界)는 상대적(相對的)인 입장(立場)이요. 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주체적(主體的)인 입장(立場)이다. 마음은 사방성(四方性)을 갖고 있는 연고(緣故)로 제제(帝制)를 받는다. 심정(心情)의 세계(世界)에는 둘이 있을 수 없다.
신천성경p1334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어떤 제제(帝制)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世界)는 제제(帝制)를 받습니다. 마음은 상대적(相對的)인 조건(條件) 여하(如何)에 따라서 제제(帝制)를 받지만 심정(心情)의 세계(世界)에서는 제제(帝制)할 자(者)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사랑하는 마음을 무엇이 제제(帝制)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태산(泰山) 같은 장벽(障壁)이 앞을 막아도 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世界)는 제제(帝制)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世界)는 상대적(相對的)인 입장(立場)이요. 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주체적(主體的)인 입장(立場)입니다. 마음은 사방성(四方性)을 갖고 있는 연고(緣故)로 제제(帝制)를 받습니다.
그러나 심정(心情)의 세계(世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정세계(心情世界)에 도달(到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하나님의 간 길과 선생님(先生任)의 간 길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다는 자세(姿勢)를 가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 심정세계(心情世界)를 체득(體得)할 수 있지 다른 데에서는 체득(體得)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까지 올 때까지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 길을 오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苦痛)스럽고 얼마나 비통(悲痛)했다는 사실(事實)을 알아야합니다.
(신천성경p1331,)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 말하는 심정(心情)이란 인류(人類)가 공(共)히 바라는 소망(所望)의 심정(心情)이요. 하나님이 지금(只今)까지 찾아오시는 심정(心情)입니다. 그 영역(領域)에 있어서는 천지(天地)를 포괄(包括)할 수도 있고 전체(全體)를 감싸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心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용사(勇士)가 되려면, 첫째로 이 심정(心情)을 통(通)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문제(問題)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타락(墮落)함으로써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인격(人格)을 완성(完成)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갔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祝福)해 주시고 그들에게 당신(當身)의 심정(心情)을 상속(相續)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심정(心情)이 통(通)할 수 있는 천적(天的)인 부부(夫婦)를 통(通)해 혈통적(血統的)인 가정(家庭)을 만들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과 해와는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상속(相續)받아 심정(心情)의 기반(基盤) 위에 인류(人類)의 참 시조(始祖)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심정(心情)의 터전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墮落)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상속(相續)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⓵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잃어버렸고, ⓶하나님의 심정(心情)을 닮을 수 있는 인격(人格)을 잃어버렸으며,⓷인격(人格) 위(位)에 세워져야 할 말씀의 목적(目的)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말선234-279 사랑자체(自體)는 인격(人格)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인격(人格)에는 지(知), 정(情), 의(意),가 있다. 그렇지만 사랑자체에는 정(情)밖에 없다. 남성(男性) 여성(女性)을 중심(中心)삼고 서로 주고받는 생활적(生活的)인 환경(環境)에서 정(情)을 중심(中心)삼고 위(爲)하게 되면 지(知)가 나오고 의(意)가 나옵니다. 또 정(情)으로 하나 되려니 소망(所望)이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요즘 인간세계(人間世界)에서 지(知), 정(情), 의(意)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情), 지(知), 의(意)라고 해야 됩니다. 이렇게 다시 정(定)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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