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또래 나이의 사람들이 출연하는 유튜브에서 시골생활의 여유로움을 맛본다. 동네사람들과 농사일을 돕고, 가까운 이웃들과 틈틈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냇가에서 천렵도 즐기는 소박함에서 정겨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자들이 갖가지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여 요리를 만들고, 그것을 안주삼아 소주나 막걸리 한잔 으로 농사일의 피로를 풀며, 이웃간의 정을 쌓아가는 유튜브 '그까이꺼'이다.
고희에 가까운 나이들과 꾸밈없이 연출되는 생활에다 구수한 사투리가 한층더 흥겹게 화면을 구성한다.
오늘의 내용은 두 남자가 오리를 그들이 만든 화덕에서 구운다음, 그것을 가지고 산속 계곡물에 발 담그고 소주 곁들여 먹는 장면이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차가워 오래 견디기 힘들다며, 그곳을 그들만의 비밀장소로 남겨두자고도 하였다.
그들의 여러 대화중에서 '보리밥도 배불리 못먹었지만,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비유되는 말이다. 나역시 그런말을 들으면 전적으로 그 말에 공감이 갔다. 70년대 시절에서 먹을 것만 조금 더 풍족했으면 진정한 파라다이스였을 거라고...
그 시절에 정말 그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말한다면, 배부른 소릴 한다고 넘기고 말일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로서는 거친 음식도 배불리 먹지 못헀고, 소위 보릿고개를 직접 경험한 것이니 그러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뿐만 아니라 생존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그 세대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일반적인 생각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행복에 관한 수식어들을 등달아 만들어 자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태여 발달한 물질을 개입시키더라도, 행복에 관한 마음속의 척도는 갈수록 뒤걸음을 친다는데는 부인하지 못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것은 순전히 정치라는 영역 때문이다. 그 배고프던 시절엔 서로간 시기질투가 적었고, 이념의 처절한 갈등도 없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민주화란 소용돌이 속에서 발달한 이념대립이 세상을 둘로 갈라놓고 말았다.
그것이 지나쳐 서로 반목하고, 감시하고 분열하는...설령 나라가 쪼개져 없어진다 하여도 마음을 돌려먹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한 감시와 통제를 연상하게 만드는 사회분위기, 그 '거까이꺼'의 비밀장소도 그들 편승한 문명의 이기에 의하여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온라인 공간에 이처럼 서툰 글을 올리면 어느새 감시의 눈이 다가온다. 그것을 들추어 낸다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없다.
세상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개인의 삶은 더더구나 힘이 든다. 가끔 '거까이꺼'를 보면 옛시절이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망가뜨린 정치인이란 명함가진 그들이 원망스럽다. 가만히 두면 좋으련만 왜 그들이 가난한 백성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더 많은 눈물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유튜브 댓글을 보니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괴롭힌다'고도 하였다. 입장에 따라서는 국민을 앵벌이 시키고, 삥뜯는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공산사회주의 국가체제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무지랭이들이 있으니 넘어가고 볼일이다.
거까이꺼 대충 살다 죽기도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저녁밥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추적거리는 빗속 회색 콘크라크뿐, 삭막한 도시엔 내가 갈곳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애 엄마에게 한 넉두리로 핀잔을 받았다. "노는데도 그렇게 힘들어 하느냐"고 하였다.
내가 내뱉았던 말인즉, "죽는 것보다 사는게 더 재미가 없는 것같다"는 것이었다. 핀잔들어도 마땅한 말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