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그제 박수근의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두 손녀를 앞세우고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란 타이틀의 회고전을 관람했습니다.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렸던 『박수근家 3대에 걸친 화업의 길』이란 주제의 전시회를 2006년 2월에 관람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의 회고전 역시 무척이나 특별한 전시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박 화백의 그림들을 한데 모아 174점에 이르는 역대 최다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1층과 2층의 4개 전시관은 그의 그림은 물론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전시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한결같이 극히 단순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과감한 구도와 담백한 화풍에 소박한 정취가 스며있습니다. 또 어떤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깃들어 있는 듯도 하지만 우리 일상의 따스한 정경과 보통사람의 질박한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려 했다고 스스로 말했던 화가 박수근, 그의 그림은 그 어느 것에서나 그가 그의 노트에 적어놓은 ‘소박적(素朴的, Naive)’이라는 말의 뜻풀이처럼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생긴 그대로’의 순박함과 소담함이 은은하게 묻어납니다.
여러 해 전 내가 박수근의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2005년의 노트를 펼쳐 보니 「신춘독서」라는 제목과 함께 그즈음 읽었던 세 권의 책에 대한 독후감이 적혀 있습니다. 『나무의 회상록』(소스피로 지음 박선옥 옮김 눈과마음 펴냄, 2005.2), 『빨간우체통』(원종성 지음 월간에세이 펴냄, 2000.5),『나목』(박완서 지음 민음사 펴냄, 1997)이 그것이었습니다.
박완서의 소설 『裸木』은 그녀가 알고 있던 박수근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월간 「여성동아」의 1970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으로 박완서를 소설가로 데뷔시킨 그녀의 첫 소설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裸木』은 당시 자신이 일하고 있던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초상화 화가로 일했던 박수근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쓴 그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이 1965년 타계한 이후 1968년에 열린 그의 유작전을 보고 그에 대한 ‘증언의 욕구가 치솟으며 글을 쓰고자’하는 결심에서 탄생한 것이 이 소설입니다. 박수근 화백은 그림에 몰입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우울한 풍경과 자신의 처지에 방황하기도 했고 그의 예술혼을 마저 불태우지 못하고 불과 51세의 나이에 건강 악화로 인하여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박완서 역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학업 중 6.25사변을 당하여 그녀의 가장이었던 숙부와 오빠가 목숨을 잃게 되자 생업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박완서는 당시 우연히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며 알게 되었던 박수근의 삶을 소설로 옮겼던 것입니다.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문학도였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전혀 다른 분야의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자신과도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박수근의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열정과 고뇌를 그 소설에 그리고 싶었던 듯합니다.
여린 감성을 가진 20대 초의 젊은 여성이었던 박완서는 40이라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바라보는 생의 길목에서 방황하며 힘겨워하던 모습의 박수근을 보며 쌓아두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그녀가 그 당시의 그와 비슷한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이 『나목』이라는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1950년대 초 6.25 중에 40이 되는 나이의 삶을 살고 있던 박수근의 모습을 1960년대 말 자신의 나이가 40이 될 즈음 그녀의 첫 소설로 형상화했던 것입니다.
『裸木』을 읽고
나무 그리고 숲을 좋아하는 나. 『裸木』이라는 타이틀의 소설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고 호기심이 느껴졌다. 호기심을 느끼게 된 것은 그녀가 그녀의 첫사랑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쓴 것이라는 신작 소설 『그 남자네 집(2004)』의 출간을 계기로 「TV 책을 말하다(KBS」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의 첫 소설 작품이 박수근 화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나목』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으면서였다. 최근의 그림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동종 최고가인 5억 원에 경매되었다는 신문 보도 또한 그 소설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한 그루의 나무. 그것은 거의 무채색인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枯木)이었다. 흑백의 농담(濃淡)이 이채로운 질감의 하늘도 땅도 없는 희미한 혼돈 속에 한 그루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화자인 나는 스무 살쯤의 나이를 먹은 ‘이경(李炅)’이라는 이름의 여성.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누구나가 겪었던 처절한 빈곤과 가난,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전쟁은 더욱더 큰 상실의 슬픔과 허무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 상실과 상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삶은 그 누구에게보다도 더 버겁고 외롭고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보다 한층 더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더욱 외롭고 어두운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버지 세대의 사람 ‘옥희도’라는 이름의 화가 만큼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그의 눈빛 속에 들어있는 피로와 상심,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있는 황량한 풍경의 일각을 읽어 낸다.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상실의 비애, 생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극복해내야만 하는 기갈든 가난, 시대는 그의 모든 꿈을 산산이 부숴버린 채 그를 미군PX 초상화부에서 싸구려 초상화가의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결코 꿈을 저버릴 수 없는 화가는 그 고통과 상실의 삶을 화폭에 담는다. ‘온몸을 흔들며 바람을 보내왔던 나무, 지난가을에 그토록 눈부시게 노래했던 나무, 아낌없이 그 노오란 빛을 땅으로 흘리고 또 흘렸던 나무’를 참담한 회색빛 고목의 나무로 그려낸다. 미칠 듯이 암담했던 몇 년의 시간을, 그 회색빛 절망과 그 숱한 굴욕을 화폭에 담아낸다. 자신의 삶이 불우하고 온 민족의 삶 또한 질식할 것 같이 암담했던 시대의 아픔을 그 그림 속에 담는다.
자신이 사무경리를 맡고 있던 초상화 가게의 그림쟁이, 환쟁이였던 옥희도씨와의 만남. 그들은 각자가 안고 있는 아픔과 절망 속에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찾게 된다. 참담한 현실의 아픔 속에서도 예술가로서의 꿈과 사랑을 잃지 않은 옥희도. 홀연히 떠나버린 어머니를 여읜 상실과 갈가리 찢어진 삶의 파편 속에서 고정된 인습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나고자 사고의 창을 활짝 열어젖히는 경아. 하지만 그들이 서로 느끼게 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사랑은 ‘어울림’이라고 하는 사랑보다도 더한 특별한 감정으로 승화되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꿈과 사랑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서로의 만족을 얻게 된다.
‘전쟁은 분명 미친 자들이 창안해 낸 미친 것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炅아는 그녀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등굣길에 문득 고개를 젖히고 우러른 가로수의 눈부신 신록과 햇빛의 오묘한 조화, 동부인해서 나들이 가시는 세루 두루마기의 아버지와 늘 좀 떨어져서 걷는 옥색 모본단 두루마기의 화사한 어머니, 섣달 그믐날 소반 위에 가지런히 늘어선 볼록한 만두의 행렬, 처음 신사복을 맞춰 입던 날의 혁이 오빠와 욱이 오빠의 몰라보게 준수하던 모습, 어머니와 내가 같이 사랑하던 어머니의 소지품들, 뽀오얀 수달피 목도리와 늘 낀 채로 있던 굵은 금가락지, 화창한 날 뚝꾹 떨어져 오던 보랏빛 오동 꽃... 하지만 전쟁은 그 모든 것들 거의를 그녀로부터 앗아가고 말았다. 그 기억마저도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옥희도씨에 대한 사랑을 통해 희망과 꿈을 찾아낸 炅아는 결국 ‘가장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소망’, ‘육신을 지녔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아픔’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제 평범한 한 사람의 아내가 된 여인, 아이들을 낳아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한 여자로서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옥희도의 그림, 그 枯木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남편과 함께 그의 유작 전시회를 찾은 炅아는 그의 그림 속에서 한 그루의 커다란 裸木을 발견한다.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의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樹心)엔 봄의 향기가 애닯도록 그리운’ 한 그루의 나무를...
〈나무와 여인〉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그 그림은 그 나무 밑을 지나치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녀는 그가 그 시절을 바로 그 김장철의 裸木처럼 살았음을 상기하면서 자신 또한 그 나목의 곁을 잠깐 스쳐 지나간 여인이었음을 회상한다. ‘퇴색한 잔디에 쏟아지는 가을의 양광(陽光)은 차라리 봄보다 따습다’고 생각하는 그 여인은 그녀가 20년 전쯤 그녀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갈망을 잊은 지 오래지만, 이미 세속적인 소망 속에서 자신도 몰래 평범한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려 마냥 떨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마냥 떨고 있는 벌거벗은 나목으로부터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꿈과 희망을 발견한다. (2005.2.10.)
관람을 마치고 나온 덕수궁 중앙의 잔디 광장에는 한낮의 하얀 겨울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미술관 앞뜰에 서 있는 무척이나 나이를 많이 먹은 몇 그루의 큰 배롱나무 나목에서는 다른 나무로부터보다 더 밝고 고운 봄기운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습니다. (2022.2.17.)
* 이번의 박수근을 회고하는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은 3월 1일까지(월요일 휴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첫댓글 순우친구의 글쓰기가 올해 고희를 맞이하면서 중후하고 농도가 짙어지는 것 같네요.
저도 프라도.오르세.루불.겨울궁전.키스전시미술관.밀레생가등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많이 다녔는데,요즘은 전시회 가는 것이
멈춰 버렸네요.저는 고야의 인생 막바지에 그린 그림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일이 있고,민레생가인 '바르비종'에 가서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배경과 주변 풍광에 찬탄을 금치못한 일이 있지요.
좋은 글,감사해요.
오랫만에 명작의 표지를 대하니 잔잔한 파문이 이는군요~ 더구나 대략적인 내용까지 곁들이니 희미한 기억까지 일깨워 주어 매우 좋습니다. 아울러 어린 손녀교육에는 가장 효과적인 산 경험을 시켜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할아버지 이군요! 두분 다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 혼을 꽃피운 탁월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니, 오래토록 그 유품이 전승되길 바랍니다~ 조부를 닮아 손녀들도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박수근 화백과 박완서 작가의 삶을 순우의 글을 통하여 간접체험했으니 말입니다. 매일 매일 올라오는 글이 독서량에 자신 없는 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1970년판 신동아를 지니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여성동아 잡지를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된 책자의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참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주시는군요. 저 나목이 그려진 박완서의 책이 오래 전 어느 순간 나의 망막에 자국을 남겨놓았다는 것만 기억에 있습니다. 좋은 책을 한 권 읽은 느낌을 받을 만큼 차분하면서도 밀도있게 소개해주신 순우의 글 잘 보았습니다. 호사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순우의 글은 언제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네요.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전시회에 직접 안가서 느낌의 강도는
약하지만 간접체험을 할 수 있으니
감사드립니다
할아버지를 닮아 그림에 재주가 있는 손녀들을 데리고 덕수둥 현대미술관을 찾은 순우 선생의 정성에 감동합니다. 아들과 손주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구비구비 고갯길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도 <손자 할아버지에게 길을 묻다>란 책을 썼지요. 존경스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길을 같이 떠나는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문득 잠이 깨어 순우가 어제 언급한 박완서에 대한 것이 생각나서 핸드폰를 열고 ㅡ 순우가 가진 그분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저에게 많은 흥미와 애틋함을 주신 그분의 책을 더 찾아 읽어 보려 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