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10:1~8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21) 열심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1.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첫째, 혈통의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진정한 유대인입니다. (롬 9:8)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그냥 입술의 고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품고 사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 믿음이란 말씀을 품고 순종하며 살아가려는 애씀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이 택함 받은 것은 자신들이 구원받고 이 구원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롬 9:17)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하나의 생명을 얻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저버리고, 복음 증거를 멸시하며 전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저버림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결국 하나님께서 죄의 길로 가는 유대인들을 “내버려두셨습니다.” (롬 9:18)
우리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고 구원받았지만, 유대인들과 같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내 갈 길대로 간다면 동일하게 버림받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진단입니다. 이 진단 앞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 열심만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
오늘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열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그랬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심이었습니다.
작은 행동과 말 하나 하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고민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율법을 향한 열심”만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3)
열심만 있는 자들은 오히려 결국 그 열심으로 인해 교만하여 지고, “율법주의자”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주신 은혜,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이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종교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직 은혜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그래서 이들에게는 항상 “감사”밖에 없습니다.
일을 잘 해도 감사합니다. 잘 하게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되어지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더디 이루시는 이유가 반드시 있고, 그 이유는 오직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신으로 부릅니다. 율법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복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이 아버지로 존재하시고 또 우리로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우편 강도를 기억하십니까?
정말 하나님 은혜로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잘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 예수님이 찾아오셨고(이는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지요?), 그를 구원주로 고백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사실 십자가의 우편 강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6.25한국전쟁 당시에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아들의 전사소식을 들은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집사님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새벽녘에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힘들지? 나도 똑같이 힘들어. 나도 그 마음 너무도 잘 안다. 2천 년 전에 나도 아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거든...”
그러자 집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깊숙이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감사하면서 위로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지금 그 하나님 곁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은 항상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항상 주님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언제나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성역을 마치고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모두가 수고를 칭찬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이 갑자기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입니다.
“당신은 바리새인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 분위기가 완전히 싸해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집사님의 고백으로 저의 사역이 부족하고 부끄러웠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인 것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가 눈물을 훔치며 감동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의 고백이 그 순간 섭섭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감사가 터지게 하셨다느 것입니다.
때로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을 부르시면, 은혜가 부어집니다. 그 은혜로 지지 않고 늘 이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열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교만과 죄의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집니다. 이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기반으로 언제나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