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작품상 등 4관왕… '실화'의 힘 보여줘
허구를 이기는 '사실(팩트)의 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들에 주요 부문 상을 몰아줌으로써 때론 현실이 지어낸 이야기(영화 각본)보다 더 극적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27일 오후(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영국 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킹스 스피치'에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을 안겼다. 톰 후퍼가 만든 이 영화는 말더듬이 영국 왕 조지 6세(콜린 퍼스)가 언어치료사를 만나 연설공포증을 극복하고 우정을 쌓는 과정을 그렸다. 올해 최다인 12개 부문 후보작. 콜린 퍼스는 독일과의 전쟁 위기에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라디오 연설을 해야 하지만 말을 더듬는 약점을 지닌 흥미진진한 캐릭터를 소화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여우주연상에는 예상대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에서 순수함과 사악함을 오고가는 발레리나의 내면세계를 완벽하게 그려낸 나탈리 포트먼이 받았다. 포트먼은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SAG)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 ▲ 1.‘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 역을 맡아 남우주연상을 받은 콜린 퍼스. 2.시상식 공동 진행을 맡은 앤 해서웨이는 레드 카펫에서 발렌티노의 붉은 드레스로 시선을 끌었다. 3.등이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스칼렛 요한슨. 4.‘더 브레이브’에서 열연한 헤일리 스타인펠트는 15살 소녀답게 옅은 분홍색 드레스와 머리띠로 귀여운 이미지를 살렸다. 5.광택이 있는 은빛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귀네스 팰트로. 6.가수인 남편 키스 어반과 입맞춤을 하는 니콜 키드먼. 7.‘블랙 스완’으로 여우 주연상을 받은 나탈리 포트먼. 발레 안무를 맡은 벤자민 마일피드와 약혼하고, 아이를 가졌다. /AP·로이터·연합뉴스·뉴시스
남녀 조연상은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파이터'에서 아들과 어머니로 출연한 크리스천 베일과 멜리사 레오가 각각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SAG)상에 이은 3관왕이다. '파이터'는 미국에서 1970년대 활동한 전설적인 권투 선수 형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족애와 도전정신을 그린 영화다. 배트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일은 권투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14㎏을 감량하고 복싱도 본격적으로 배워 "실제 선수가 되돌아온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편집상·각색상·음악상을 받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제 창업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글로브상, 전미영화비평가협회상에서 작품상 같은 주요 부문을 수상했지만 아카데미에선 예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평론가 황희연씨는 "이들 논픽션 영화들의 선전(善戰)은 팩트(fact·사실)에 전통적으로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묵직한 주제의 휴먼 스토리나 영웅 이야기를 담아 감동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론가 전찬일씨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소셜 네트워크'에 주요 부문 상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영화적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협소한 배경 설정과 스토리로 폭넓은 공감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은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등 기술 부문의 4개 상을 휩쓸었다.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미술상과 의상상을 받았다. '토이스토리 3'는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차지했다. 글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던 덴마크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터 월드'가 아카데미의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