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생일이 23일 이죠" "아니다 21일 이다 지났단다" "말씀 좀 안하시고요" "괘안타" "금요일 형님 식사 같이하기로 해요" "시간이 나나" "네 형님"
잘 사는 집안에서 갑자기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의 실패에 대한 상처를 많이 받아서인지 아버님은 병에 걸리셨고 어머님은 학교 선생으로 근무 하다가 생활을 이겨 내기 힘들다고 판단하시고 깡깡이 일을 하시기 시작하였다. 한글과 영어를 아시는 분들이 드믈어서 그런지 어머님은 일을 하시자말자 반장 직함을 가지시게 되었고 어머님을 도우신다고 형님은 학업을 포기 하시고 부산 영도의 철공소 일을 하시기 시작하였다. 만약 형님께서 일을 하시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학업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장남을 우선시 하는 풍토가 깊었는데 형님은 동생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 하신 것이다. 우리 형제들에게 형님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셨다. 네째가 사업을 시작할 때 형님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과감히 그만 두시고 네째의 공장이 우뜩 설 수 있도록 기술을 제공하셨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으로 들어가는 내진장치 회사로 우뚝 서게 만드신 형님이시다. 그 형님이 이제 내 일을 도와 주신다고 나서시길래 괘안타 하며 이젠 형님 펀하게 쉬세요 하며 나는 말리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네게 해 준것이 하나도 없더라" 하시며 나의 일을 뵈주신다고 하시길래 "형님 이 철공의 일을 60년 가까이 하셨잖아요 이제 되었습니다 형님 그냥 쉬시면서 지내세요"하며 못하게 하고 있다. 50이 넘었을 때 형님께서 아버님께 얻어 맞으셔서 입이 터졌다 그 광경을 보고 처음으로 나는 아버님께 대 들었다. "아버지! 형님 나이가 얼마인데 손찌검을 하십니까 네" 아버님도 미안하신지 그냥 고갤 돌리시니 형님께서 오셔서 "너 이자식 무슨 말을 그렇게 하노 아버지께 네가..."하시며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겁이 좀 없는 사람이다. 누구도 겁낸적도 없고 싸움이 벌어지면 물러서는 것을 몰랐던 다혈질이었는데 형님의 말씀에는 꼼짝을 못했다. 뭐랄까 형님께 뭔가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 자슥아 나는 아버님께 맞을 때 아픈 것 보다 기쁘더라 왠줄아니 아직 나를 때릴 힘이 있으시다는 것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 아니니" 정말 효성스런 아들이셨던 형님이시다. 그 소중한 형님의 생일을 잊고 있었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형님과 함께 점심 육회비빔밥을 먹고 명지로 가서 전어회를 샀다. 전어회 포장하시는 아짐매에게 형님이 가시더니 포장을 두 군데 하신다. "희정아 하나는 네가 먹어라"하며 계산을 할려 하시기에 "형님 지금 뭐하십니까 이리오세요 " 하며 재빨리 내가 계산을 했다. 아직 형님의 눈에는 내가 어린얘로 보이는 것 같다. 형님과 헤어져 집으로 와서 전어회에 매운탕을 하여 저녁식사를 하며 형님을 생각한다. 형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하며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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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형님 좋은 동생님의 형제애에~~
부럽습니다.
잘지내시죠
언제 얼굴 함 뵙죠 ㅎㅎㅎ
진짜루 너무 멋진
행님이시네요
존경할 만한 행님이신거
같아요
우애도 좋으신거 같구..
감사합니다
늘 좋은날들이 함께 하시길 바래요^^
형제애에
감동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날들이 함께 하시길 바래요^^
멋지신 형제분께
큰 박수를 드리고 싶어요.
건강하게 오래도록 행복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형님
그 형님에 동생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날들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