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이 시간에 “기도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즉 기도의 정의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장 급할 때 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디오 전파는 l초에 l8만 6천 마일을 갑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는 빛과 같은 속도입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1초도 많고 그것의 몇 십분의 1 이면 전파가 도달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빠른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급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기도를 드리는 순간 그 기도는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여 마치기도 전에 벌써 응답이 옵니다.
단 9장을 보면 다니엘이 기도할 때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기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단9:23) 했습니다. 급하면 급할수록 며칠 혹은 몇달 몇년 전부터라도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1.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여러 곳 나옵니다. 시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삿20:18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이상의 구절에서 기도가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세도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과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그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가 대화라는 것은 항상 대상을 의식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라는 의식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믿어지고 응답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응답는 기도의 아주 중요한 모습입니다.
또 기도가 대화이기 때문에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내가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울이고 이것이 기도입니다. 시5:3에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했어요. 하박국 선지자도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기도하고 나도 잊는 그런 무성의한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대화이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와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용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는 중언부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중언부언(重言復言)이란 이방중교와 같이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6:7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셨습니다.
2.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입니다.
계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구약 시대의 성전 안에는 향단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웠는데, 이 “향”은 기도를 상징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향은 제조법에 은사를 주셔서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이 수직으로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 향 제조법은 극비에 붙여져서 이교도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향이 수직 상승하듯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왜 향이라 했을까요? 그만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1:6에 하나님을 찾기만 해도 상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최고의 어른 대접은 늘 여쭙고 되어지는 일을 알려 드리고 대화하는 것이듯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공경이요, 기도 자체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향기로운 기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3. 기도는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눅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 “기도”를 영어로 “Pray”(prei)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간청한다, 탄원한다, 애원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왕 앞에 아무나 강청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페르시아 같이 엄한 나라에서는 왕후라도 부름 없이 나가다가는 처형당한다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믿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신자 된 우리는 예수 피를 믿고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가 간청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이고 그러므로 이 특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은 억울한 일 만난 과부의 기도를 말씀하신 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하셨습니다. 이 눅18:8 말씀은 문맥이 기도와 관련된 교훈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자가 오신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다양하게 쓰였는데 여기서 이 말씀은 재림 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권고하러 오시는 바로 응답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억울한 일 만난 과부처럼 강하게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악의 세력들은 하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기독교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온갖 궤계를 다 부리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억울한 일 만난 과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런 죄악된 세상에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이처럼 기도는 강청하는 것입니다.
4.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명처럼 귀중하다 해서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잠시도 호흡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기도하지 않고서는 우리 영혼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산부인과 아이들이 태어날 때 위험한 것이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이랍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호흡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것입니다. 아기들의 폐에서 양수가 배출되고 공기로 가득 차면서 힘차게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을 때는 때려서라도 울게 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 영혼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때려서라도 기도를 시키신다는 말입니다. 억울하고 말 못하고 답답한 일 당했다면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거꾸로 잡고 엉덩이를 때리는 것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사명자들은 누구보다 더 두들겨서라도 기도를 시키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인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당하면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라고 시험이 있는데 안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도 저산소증이라고 숨을 쉬어도 세포에 산소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 저산소증입니다. 저산소증의 원인이 여러 가지인데 모든 것이 정상적이어도 산소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물중독에 걸렸을 때입니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신데다 싱겁게 먹으면 적혈구의 산소가 세포로 들어가지 못해 숨을 쉬어도 숨이 가풉니다. 이처럼 기도도 잘해야 합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기도하면 우리 속의 악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고 또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기도는 향기입니다. 기도는 강청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이 생명보다 귀한 기도를 귀히 여기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기도의 종류
(1) 일반 기도
①사적인 기도
사적인 기도는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즉, 자신의 여러 문제와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고 도움을 구하는 기도인데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드릴 때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②중보적인 기도
중보적인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이때 명심할 것은 우월감을 가지고 해서는 안되며, 오직 겸손한 마음과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도해야 한다.
③공적인 기도
공적인 기도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체를 대표하여 드리는 기도이다.
예를 들면, 예배에서의 대표 기도나 구역 예배시의 기도, 심방시의 기도 등을 들 수 있다.
공적인 기도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사항은 첫째, 기도의 내용이 반드시 그 모임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형편, 처지,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간구의 내용이 주관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객관적이며 보편적이어야 한다.
셋째, 기도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하며 모두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기도해야 한다.
넷째, 미리 기도문이나 내용의 요약을 준비하여 계획성있는 기도를 해야 하며, 시간과 장소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공적인 기도를 맡은 사람은 본인 스스로 준비 기도를 해야 한다.
④규례적인 기도
규례적인 기도는 아침 기상해서 드리는 기도나 취침기도 식사기도와 같은 규칙적인 기도를 말한다.
이 기도는 일정한 형식과 내용보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과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
⑤합심(공동)기도
합심 기도는 두 사람 이상이 마음을 합하여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을 말한다.
통성 기도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리라(마 18:19)"고 말씀 하셨다.
합심(공동) 기도에서 유의할 점은,
첫째, 공동기도의 제목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다른 사람의 기도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기도에만 열중해야 한다.
⑥묵상 기도
묵상 기도는 형식과 시간 장소에 제한 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일치되는 있는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식사시간에, 차속에서, 걸으면서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소리없이 드리는 이 기도를 분명히 들어 주신다.
⑦윤번 기도
윤번 기도는 예배시간 등의 대표 기도 시에 2-3명이 차례로 기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내용이 풍부해지고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일학교나 학생부 예배에서도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드리는 기도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2) 특별 기도
①새벽 기도
새벽기도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기도이다.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경건하고 보람찬 하루를 위해서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새벽 기도의 제목이 육신적인 축복만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좀 더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며, 이웃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더니(막 1:35)"
③공적인 기도
공적인 기도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체를 대표하여 드리는 기도이다.
예를 들면, 예배에서의 대표 기도나 구역 예배시의 기도, 심방시의 기도 등을 들 수 있다.
공적인 기도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사항은 첫째, 기도의 내용이 반드시 그 모임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형편, 처지,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간구의 내용이 주관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객관적이며 보편적이어야 한다.
셋째, 기도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하며 모두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기도해야 한다.
넷째, 미리 기도문이나 내용의 요약을 준비하여 계획성있는 기도를 해야 하며, 시간과 장소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공적인 기도를 맡은 사람은 본인 스스로 준비 기도를 해야 한다.
④규례적인 기도
규례적인 기도는 아침 기상해서 드리는 기도나 취침기도 식사기도와 같은 규칙적인 기도를 말한다.
②금식 기도
금식 기도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맑은 영혼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하는 기도이다.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결단하는 기도이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을 밤낮 금식 기도 하셨고(마 4:1), 모세도(출 34:28), 에스라도(스 10:6) 바울도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했다(행9:9).
금식 기도에서 주의할 점은 첫째, 뚜렷한 목적없이 영웅심이나 자랑하기 위해서 해서는 안된다.
둘째, 충분한 준비 기도 후에 실시해야 하며, 시작하기 2-3일 예비 금식을 하여 식사량을 줄인 후에 시작하고 기도가 끝난 후 바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셋째, 금식 기도 후에는 능력과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때 사탄은 그것을 사욕의 도구로 삼도록 유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③철야 기도
철야 기도는 기도하기에 알맞은 밤에 깨어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욥기서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신다(욥 33:15-16)"고 하셨다.
밤에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체험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선택하시기 전 날 밤에 철야 기도를 하셨고(눅 6:12),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도 철야 기도를 하셨다.(마 26:39-46).
즉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밤을 새워 기도하셨던 것이다. 철야 기도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분명한 목적과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되 건강 상태나, 가정 사정, 생활의 형편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④산상 기도
산 기도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식어진 신앙이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에서 드리는 기도이므로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산에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으매.......(눅 6:12-13)"
산 기도에 있어서는 기도원 선택이나 장소 선택에 있어서 가급적 교역자와 상의하는 것이 좋으며 신비적인 체험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자칫하면 사탄의 시험에 들기 쉽기 때문이다.
⑤안수 기도
성직자가 성도의 몸에 손을 얹든지 만지면서 하는 기도로서 더욱 풍성한 은혜와 영적인 힘을 주기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안수했다 증거하고 있다.
축복을 빌 때(마 18:13-15,창 27:1-21,창 48:8-22),
성직을 위임할 때(신 34:9,행 6:6),
성령을 받기 위해 (마 8:14-17,행 9:17-18),
병 낫기를 위해(마 8:3,막 8:23,눅 4:40),
안수 기도는 받는 이에게 믿음이 있어야 하고, 안수 하는 이에게 능력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섭리적인 응답이 있어야 한다.
안수 받을 때 주의할 점은 준비 기도를 한 후에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안수에 임해야 한다.
또한 안수하는 사람의 받은 영과 신앙의 상태를 먼저 분별하고 함부로 받아서는 안되며 가능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받는 것이 좋다.
⑥방언 기도
방언이란 희랍어의 "혀"와 "말하다"의 합성어로 "혀로 말하다"라는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받아 황홀한 상태에 빠져서 자기의 언어가 아닌 말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방언에 대하여 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 하며(고전 14:9),그 결과 방언하는 자를 정신 이상자로 간주하기 쉽다고 보았다.(고전 14:23).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 견해는 방언을 황홀한 상태에서의 증언이라는데 중점을 두고 방언을 예언된 영적 운동의 발현이라고 생각 했다.(행 2:13, 3:24-25).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에게 주시는 성경적 교훈은
첫째, 교회에 부덕이 되지 않도록 힘쓸 것(고전 14:5).
둘째, 통역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할 것(고전 14:13).
셋째, 통역이 없는 방언은 잠잠히 하나님께만 할 것(고전 14:28).
넷째, 덕과 질서를 위하여 절제가 필요 있을 때에는 절제할 것(고전 14:32)이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에 있어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방언은 통역자가 없는 한 예배에서는 통용을 금하고 있다.
⑦예언 기도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언은 성서 기자들에게 주신 예언과(벧후 1:21) 신자들에게 주시는 예언 (고전 12:10)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성서의 완성을 위해 특별 계시로서 주어진 특수 예언이고, 후자는 성서가 완성된 이후에 신자들의 바른 신앙 생활을 지도하기 위해 주시는 은사적 예언이다.
예언의 목적에 대해서 성경
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더욱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고전 14:3)"
즉 예언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훈련시키며 권면하고 환란과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언 기도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목적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언을 사욕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미신적이고 점치는 식의 예언은 사탄의 역사라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예언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되어져야만 옳은 것이다기도의 종류
번호: 191 글쓴이: 풍자향
조회: 124 날짜: 2004/11/30 07:10
[유용한정보] 기도의 종류
글쓴이: #딴지
기도의 종류
기도는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통성 기도(행 4:24, 31; 렘 33:3).
큰 소리로 하는 기도이다. 큰 소리로 하는 이유는 문제의 긴급성, 간절함 등을 표현한다.
-묵상 기도(창 24:63; 시 19:14).
말씀을 읽는 중 감동이 오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주는 위로, 약속, 책망, 인도에 대해 기도한다.
-합심 기도(마 18:19-20; 행 1:14).
여러 명이 한 제목을 두고 마음을 합하여 하는 기도이다.
-찬양 기도.
찬양은 기도의 한 요소이자 곡조 있는 기도이다. 따라서 찬양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중재 기도 (딤전 2:2; 엡 6:18-19).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대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족, 교회의 지도자들 및 이웃을 위한 기도를 말한다. 이는 중요한 주제이므로 “중재기도”에서 자세히 다룬다.
(*일부에서는 '중보기도'란 용어가 유일하신 중보이신 예수님이 드리시는 기도라고 주장하면서 타인을 위한 기도를'중보기도'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신자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이므로 성경적, 신학적으로 우리가 타인을 위해하는 기도도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재기도'란 용어를 사용한다).
-대표 기도.
예배나 집회 시 회중을 대표해서 하는 기도이다. 시간은 2-3분이 적합하다.
-축복 기도.
기도 받는 자의 복을 비는 기도이다.
-작정 기도.
어떤 기도의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이다. 21일, 40일 작정 기도가 있다.
-금식 기도.
물만 마시는 금식기도, 아무 것도 마시지 않는 단식기도가 있다. 제3과 금식기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서원 기도.
특별히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응답해 주시면 내가 그 대신에 이런 것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는 기도. 기도 응답이 왔을 경우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가 미친다.
-치유 기도.
마음이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기도이다.
-안수 기도.
직분자를 세우거나(딤전 4:14; 5:22),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거나(행 8:17; 19:6), 치유할 때(막 6:5; 8:25) 안수기도할 수 있다.
-방언 기도.
방언으로 하는 기도이다(고전 14:2, 14-15).
-명령 기도.
축사나 신유를 위한 기도이다(눅 10:19; 약 5:14).
-전투 기도 또는 목표 기도.
중재기도의 일종으로 특정지역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단 10:2-13; 엡 6:18).
-임재 기도. 명상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기도. 일반적으로 간구기도가 끝난 후에 하는 기도이다.
-듣는 기도.
임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이다.
2. 기도의 때
성경에 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침 제사와 관련된 새벽기도, 저녁 제사와 관련된 제 9시(우리의 오후 3시(행 3:1) 및 황혼 무렵이었다.
-새벽 기도(시 5:3; 88:13; 막 1:35; 행 2:1-4, 15).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3).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시 88:13).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여기서 말하는 아침은 동틀 녁, 여명이란 뜻도 있다.
*미명(未明)이란 먼동이 트기 전,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이른 새벽이란 뜻이다.
-정오 기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
-저녁 기도(마 14:23; 막 6:47; 눅 6:12).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막 6:47).
-철야 기도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결론적으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기도해야 하지만 새벽기도, 저녁기도 및 철야기도와 같이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도 좋다.
3. 기도의 장소
어디서 기도하나? 예수님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
*여기서 은밀하다는 말은 나 혼자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하나님만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크므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나 혼자만의 은밀한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
- 다락방(행 1:13, 14)
- 집(행 10:30; 12:5-17)
- 강가(행 16:13)
- 해변(행 21:5)
- 광야(눅 5:16))
- 한적한 장소(막 1:35; 눅 4:42)
- 산(마 14:23; 막 6:46; 눅 5:16; 6:12; 9:28; 요 6:15). 영적 공격이 심하므로 초보자는 혼자서 하는 산 기도는 삼가하는 것이 좋다.
- 혼자서할 수 있는 곳(마 6:6; 26:39; 막 6:46; 14:32-42; 눅 6:12; 9:18; 22:41).
- 성전(행 3:1). 시편의 상당 부분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드린 기도문이었다.
4. 기도의 자세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나?
- 앉아서(대상 17:16-27)
- 무릎 꿇고(왕상 8:54; 스 9:5; 눅 22:41; 행 9:40)
-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출 34:8; 느 8:6; 시 72:11).
- 서서(느 9:5; 막 11:25; 눅 18:13)
- 손을 들고(대하 6:12, 13; 시 63:4; 딤전 2:8).
- 걸으면서(왕하 4:35).
- 완전히 엎드려서, 부복하여(수 7:6; 스 10:1; 마 26:39; 막 14:35).
이처럼 여러 자세가 있으므로 때에 따라 형편에 따라 어울리는 자세로 하는 것이 좋다.
5. 얼마 동안 기도해야 하나?
할 일이 많고 중요할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의 양은 개인이나 형편에 따라 다르다.
-초보자는 10-15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도 제1과에 소개된 방법대로 기도하면 최소 1-15분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점점 시간을 늘여가라. 기도를 할수록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는 중재기도의 몫이 점점 늘어남을 알게 된다. 결국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기도가 된다.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최소 1시간,
-목사나 전임사역자는 2-3시간,
-중재기도사역자는 하루 최소 2-5시간 또는 그 이상 기도하는 사람이다. *
성경이 밝히는 기도의 종류와 방법
성경에 나타나는 기도의 종류는 크게 시간과 장소에 제한됨이 없이 홀로 기도하는 개인기도와 여러 사람이 한 곳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공적인 기도(혹은 공중기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개인적기도와 공적인 기도는 기도하는 방법에 따라서 또는 기도자의 외적인 표현방식과 자세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제 그 종류들을 차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개인기도
개인기도는 사적으로 어떤 일정한 형식이나 습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의 빌 바를 아뢰는 기도이다. 따라서 기도의 범위와 관심사는 주로 자기 중심적으로 일관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인기도는 이후에 살펴볼 중보의 기도로 그 내용이 채워질 수도 있으며, 자신의 기도로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는 공적인 대표기도와 달리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기도자의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때 모든 기도자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적어도 편협하지 않고 이웃과 영적인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을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으로 에베소서 1장 17절-19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말씀을 삼는 것이 적절하리라고 본다. 이외에도 개인기도의 내용은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2.공적인 대표기도
(1) 정의
공적인 대표기도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예배나 특별히 각종 예식을 행할 때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의 심령을 대표해서 드리는 기도다. 이때 기도의 주체는 1인칭 단수로서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1인칭 복수로서의 우리가 되고 기도의 범위 역시 함께 모인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의 기도제목으로 확대되고 그 초점이 모여지게 된다. 그러므로 공적인 대표기도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특성이나 신학적 입장이 기도의 형식과 내용적인 틀을 잡아 주며 그 어투나 표현 역시 함께 모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기도자는 시공간의 제약성을 인정하고 가급적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여 철저히 공동체 구성원들의 중보자적인 입장에 서서 간명하게 짧은 시간(3-5분 이내 정도) 내에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표기도를 할 사람은 미리 통고를 받고 기도에 대한 특별한 준비시간을 가지고 기도에 임하는 것이 좋다.
(2)대표기도의 중요성
대표기도는 사실상 중보기도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지만 대표기도자가 함께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즉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연약하고 제한적인 중보적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지만 공적인 대표기도 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써 중보기도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기도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한 사랑의 섬김이고, 하나님을 향한 책임있는 봉사라는 중요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식에 있어서 그 경건함을 더하게 하며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까지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 백성들의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을 위해 기도하는 느헤미야(느 1:3-11)는 대표기도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대표기도자의 바람직한 자세
대표기도는 자신만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회중들을 대신해서 드리는 공식적인 대언(代諺)의 기도인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대표기도를 드리는 지도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 정도는 염두에 두고 대표기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내용: 대표기도는 모든 회중이 “아멘”으로 공감할 수 있고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2.음성과 언어: 대표기도자의 목소리는 모든 기도자가 다 들을 수 있는 적당한 음성이 좋고, 기도 중에 사투리나 천박한 언사 및 부도덕한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3.기도의 시간: 대표기도는 가능한 한 간결하고 명로하게 하여 3-5분 정도를 넘지 않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
4.기도자의 외형: 대표기도자는 가급적 그 태도와 옷차림에서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5.중요 유의사항: 기도는 설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훈계하거나 해서는 안 되며, 인위적 단어의 나열이나 중언부언하는 것, 과다한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도 삼가야 할 유의사항이다.
(4)대표기도 준비시 유의사항
대표기도는 먼저 기도하는 모임이 언제(시간), 어느 곳(장소)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주의깊게 파악하여 그들의 갈급한 기도제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기도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아 바람직하다.
(5)공예배시 대표기도의 순서
1.하나님께 영광과 찬양, 감사를 올려 드린다.
2.죄에 대한 자백을 한다.
3.모임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공동체의 믿음과 헌신을 다짐한다.
4.자신과 공동체 및 이웃의 기도제목을 간구하고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청원한다.
5.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한다.
6.예배 순서(찬양,헌금 등)를 위해서 기도한다.
7.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신뢰에 대한 확신으로 아멘으로 끝낸다.
3.기타 성경이 중요하게 언급하는 기도의 여러 종류들
(1)중보기도
자신을 위한 기도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웃과 남을 위한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 더 능력이 있으며 특별히 원수를 위한 기도는 이웃을 위한 기도보다 더 능력이 있다(마 5:44). 왜냐하면 그 기도 속에는 사랑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중보란 어원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중보의 역할을 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 우리는 분명히 완전한 중보자는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린 사실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우 세 번씩 중보기도 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단 6:1-28). 에스겔 22장 30, 31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중보자를 찾으셨는데 찾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진노의 불로 멸하셨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어쩌면 모든 기도의 종류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시는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중요한 중보기도의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 라고 말씀한다. 또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밝혀 주는 역대하 7장 14절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어 스스로, 겸손해 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고 말씀한다. 점점 패역해 가는 이 땅과 시대를 향해서 조금이라도 영적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중보 기도를 하지 않겠는가!
(2)안수기도
안수기도는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자가 기도 받는 자의 몸에 손을 얹든지 혹은 만지든지 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성경은 예수님이 친히 안수기도를 하셨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서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랐다…….”(마 19:13). 구약 성경에서 안수기도를 한 예를 살펴보면 축복을 빌 때 안수하며 기도했고(창48:8-22 등),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물에 안수했으며 (출29:10:레 1:4), 성직을 임명하거나 위임할 때(민27:18: 신34:9)도 안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신약의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셨고 (마19:13-15: 막 10:16), 병자를 고치실 때도 안수하셨다 (마 8:3: 막7:32:눅 13:11-13: 행 28:8). 초대교회 시대에 와서는 집사와 성직을 임명할 때(행6:6: 9:17,18: 딤전 4:14), 성령을 받고 은사를 받기
위해 기도할 때 (행 8:15-17: 9:17,18) 안수를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성경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안수기도를 받을 때 믿음이약한 자들은 그 믿음이 강해지는 체험이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수기도를 행할 때에는 주의 할 요소가 있는데먼저 안수하는 사람은 디모데전서 5장 22절의 “아무에게나 경솔 하게 안수하지 마십시오. 남의 죄에 끼여들지 말고, 자기를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는 말씀을 기억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각별히 유의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안수기도를 받는 사람 역시 오직 믿음으로만 받되 안수하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잘분별하여 공개적인 상태에서 자신이 먼저 기도로 준비한 다음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금식기도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금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음식을 멀리하고 괴로워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성경을 보면 금식을 하게 되는 경우는 전쟁이 았을 때, 질병을 앓을 때, 사람이 죽었을 때, 재앙이나 기근이 임했을 때 등 인간의 범죄돠 관련이 깊은 사건들이 나타났을 때 금식하면서 마음을 괴롭히고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일들을 병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즉 단지 외적인 모습으로만 슬픈 기색을 띠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금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외에도 국가적 위기시에(삼상 7:5,6), 사역 감당과 성직 임명시에(행 13:2,3)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그러므로 분명히 금식기도는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사 58:6)이다. 그러나 금식기도에 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즉 반드시 애통하며 죄를 자복하는 기도(눅 2:37)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렘36:6),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면서 (대하7:14)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마 6:16-18)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금식기도는 주님의 금식기도와 같이 사탄의 시험에서 이기는 금식기도가 되고 (마 4:1-11)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삿20:26)능력과 권능을 소유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바른 금식기도 후에 금식 기도자는 사탄의 시험(마 4:1)이 있음을 유의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욱 겸손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4) 예언기도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특별한 권위로 예언을 허락하심을 볼 수 있다(사 41:22,23). 그러나 이 예언은 특별계시인 신 구약 성경의 완성을 통해 이미 완성된 예언(벧후 1:21) 성도들에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예언기도나 말씀의 분별없이 예언을 행하는 것 자체는 교회의 덕을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감동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예언만 붙들려고 하지 말고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기도에 더욱 힘쓰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
(5) 방언기도
성경에 기록된 방언기도에는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바대로 하나님의 큰 역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 있고, 한편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나는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드리는 방언기도가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방언기도인데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고 각양 좋은 은사를 하나님께 합당하게 주시므로 방언기도의 은사만을 받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고, 혹시 방언기도를 할 수 있는 은사를 스스로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드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의 질서를 따라 개인적으로만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적절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언어를 선물로 주셨으므로 그것을 사용해서 충분히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굳이 방언기도를 해야 할 이유가 또한 없음을 주지해야 한다.
(6)신유기도
야고보 사도는 병고침을 위해서 분명히 기도하라고 권면한다(약 5:13-16).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치유의 역사를 바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병고침을 위해서 기도하되 균형잡힌 기도가 필요하다. 즉 하나님의 특별하신 신유의 은총만 바라고 하나님께 일반적으로 주신 은총을 사용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병 중에 있는 사람은 신유의 기도를 꾸준히 드리되 동시에 하나님의 일반은총 속에 있는 의사나 약을 통한 신유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7)합심기도와 통성기도
예수님은 분명히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 이상이 마음을 합하여 같은 장소에서 소리를 내어 통성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공동의 기도제목이 주어지고 전심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기도의 방법이다.
(8) 특별한 상황의 기도
특별한 상황의 기도는 기도자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방법과 상황 속에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금식기도와 새벽기도(막 1:35), 철야기도(눅 6:12), 산기도(출 24:18) 등이 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엡1:15-23)
시편찬송:시편66:1,7;시편66:8;시편110:1,2,3;찬송37:2,4;시편68:8,12.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보내는 이 편지에서 자주 교회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교회를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여 부릅니다. ‘건축 계획(2:21), 거처(2:22), 새 사람(2:15), 신부(5:22ff)’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사용해서 교회를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이미지가 부각되었습니다. 그 이미지는 바로 몸(body)입니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이미지는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도 사용하였습니다. 머리-몸이라는 이미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관계‘를, 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회중(몸), 지체들을 기술하는 이미지입니다. 사도는 다른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이 이미지를 해명했습니다. 사도가 이것을 어떻게 해명하는지를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1장 문맥 안에서 살펴봅시다.
여기에서 사도가 교회를 “그의 몸” 이라고 부를 때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의 집단(body)’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교제(fellowship)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소망을 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풍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 때문에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임재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다음과 같이 설교를 요약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1.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랍니다.
3. 교회는 그리스도의 임재로 충만합니다.
1.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1) 교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 예수님을 믿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community)입니다.
2)바울은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15절, 이를 인하여(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고 성령님의 유업, 그 인치심을 인하여) 주 예수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에 대해 들었습니다(사랑의 공동체).
㉠이렇게 믿음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즐거운 소식을 들은 사도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도가 이 편지를 쓰기 7,8년 전에, 에베소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약 2년 6개월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사역을 했습니다(행19장). 사도는 진심으로 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님 안에 그들이 믿음을 두고 또 모든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사랑을 베풀면서 견고하게 서 간다’는 이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16절,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노라‘ 사도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누구겠습니까? 만약, 믿음과 사랑이 없다면, 사실상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은 바로 믿음으로(by faith)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와 비참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 자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으로? 믿음으로(by faith)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바로, 믿음으로(by faith)입니다.
㉢‘이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 생명이 에베소 교회에 살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이 믿음’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만일 바울이 오늘, 우리에 대해서 들었다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내가 여태껏 주 예수님을 믿는 너희 믿음에 대해서 들었는데, 너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너희들의 믿음은 잘못됐다. 헛된 것이다’ 이렇게 책망할 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합시다. 자동조절장치를 작동해 놓은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이 판에 박힌 일, 자동조절 장치를 작동하는 식으로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 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판에 박힌 일이나 기계적인 일, 관례도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자신을 훈련하고 또 질서가 잡힌 생활을 하기 위해서 판에 박히고 또 기계적인 일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이 판에 박힌 일이 되면 안 됩니다. 관례나 습관이 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이 문화적인 사안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이 여전히 유익한지를 성경에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근원이 아닙니까? 고후13;5절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자신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오늘, 우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 그 믿음이 원기 왕성한지, 칭찬할만한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회중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 사도는 모든 성도를 향한 에베소 교회회중의 사랑에 대해서 감사드렸습니다. 에베소 교회회중은 피차에 대한 기독교적인 사랑에 진실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우리를 위해 행하셨던 유형의 사랑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행하고 계시는 유형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사랑 받을 만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조차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사랑, 참된 사랑이 우리 가운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이를 살펴봅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도록 합시다. “이를 인하여(참된 사랑을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노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란다.
1)에베소 교회회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16).
두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는 공동체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회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16). 사도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지를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7절,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 회중에게 계시와 지혜의 성령을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도는 에베소 교회회중의 마음, 그들의 눈, 영적인 눈이 열려 그들이 세 가지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①그 첫 번째, 18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던 소망에 대해서, ②두 번째, 18절 하반절, 그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로서 얼마나 부유한지에 대해서, ③세 번째, 19절, 그들의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 3가지 사실에 대해 더 크고 더 나은 이해를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마음에 일하실 때에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 크고 더 나은 이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열 때에만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에게 베푸신 그의 사랑, 그의 은혜, 그의 자비하심을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열 때에만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냉담하거나, 사실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어떤 사실들을 아는 지식도 아닙니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어려운 자료들을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이 지식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지식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저기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어느 한 사람이 면식이 있다는 정도의 의미를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는 여러분이 그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가 생각하는 방식,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인격을 압니다. 그의 기질을 압니다. 그의 됨됨이를 압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지식의 유형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당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 행하실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품성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말씀과 성신’을 통해서, 계시의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배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계시하신 성령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이 계시를 여셔서 우리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 안으로, 우리 영혼의 눈을 밝히시는 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계시하실 때에, 성령님께서 이것을,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우리 마음에 가지고 들어오셔서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복음 설교를 들을 때에, 성령님께서 일으키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명, 우리를 부르심, 그 소망을 알게 하십니다.
2)바울은 ①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소망을 알기를 소원했습니다(복음 설교를 통해).
이것이 바울이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첫 번째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소망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그 은혜를 알도록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은혜를 확신시켜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저장해두신 경이로운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대단히 흥미롭게 학수고대합니다. 왜닙까? 이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대하는 영광스러운 소망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면할 것입니다. 그 때, 그분은 우리를 반기실 것입니다. 우리도 그분을 반길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와 비참을 종식시킬 것입니다. 이생의 모든 실망과 좌절을 끝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생에서 많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특정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망을 둘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망은 빗나간 소망입니다. 그래서 좌절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은 하늘 창고에 우리를 위해 저장해둔 소망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늘 창고에 우리를 위해 저장해 놓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진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완벽함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내용이 본문 18절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소망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확실합니다. 왜닙까? 여러분을 부르신 이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망은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복음 설교를 통해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복음 설교를 통해서 그 부르심,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부르셨다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해 점점 더 완전하게 알고 이해하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3)바울이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②두 번째 것은 성도 안에,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입니다.
㉮삶의 시작과 최종적인 때
만일 ‘영광과 소망의 부르심’이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의 삶의 시작을 가리킨다면, 유업에 대한 이 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 ‘이 영광의 충만함’을 최종적으로 받을 때를 가리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결코 소멸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영원히 하늘에 간직된 유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 그 풍성함을 상속할 자들입니다.
㉰언제 그 풍성함을 상속받는 가?
언젠가 우리는 이 기업의 충만한 소유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는 것
이것은 사적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모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무리가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조차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무리는 모든 나라와 족속과 민족과 방언으로부터 나온 사람들로 어린양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과 완벽한 교제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유업을 곰곰이 묵상하고 기대하는 것 때문에, 바울이 우리를 건방진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그는 우리가 이 지식 안에서 자라가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기업의 부유함과 영광에 대한 지식 안에서 자라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4)바울이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더 잘 알기를 바라는 ③세 번째 사항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알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합니까? 바울은 이 능력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셨던 당신의 전능한 힘의 사역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 능력’에 대해 여기에서 몇 가지 다른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19절,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 즉 ㉠일하심(working),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즉 ㉡전능한 힘(mighty strength),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즉 ㉢발휘하심(exertion)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과 행사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행하셨던 위대한 행사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런 저런 낱말과 표현들을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확신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일부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의심할 여지가 전혀없는 신앙의 12조항, 사도신경 전부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믿음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과 의와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에 있는 것이지 나의 확신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사단이 우리에게 걸어놓은 철장을 박살냈습니다. ‘철장, 죄로 인한 질식’, 이것을 종식시킨 것도 측량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신 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힘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삶속에 어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였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 능력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 가운데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동일한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하늘로 데려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능력과 반대되는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1절, 천사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는데 ㉡이 천사들은 적의적인 초자연적인 능력들입니다. 이들 사이에는 다른 계층들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으로 각기 다른 행사를 수행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에베소 근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치열하고 전쟁 중인 세력들의 지속적인 전쟁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사람들은 적의적인 초자연적인 능력들이 [세상을] 주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적의적인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달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에베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골로새라는 곳이 있는데, 바울이 기록한 골로새서에 보면, 그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천사 숭배에 빠져 들어갔다는 분명한 증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당대의 사람들은 세상이 치열한 전쟁터이기 때문에 그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적의적인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들 위에 높아지셨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러한 통치자, 권세, 능력, 지배권, 이 모든 권세들 위에 높아지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있습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이, 초자연적이든 아니면 지상적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 주어질 수 있는 모든 호칭 위에 탁월하게 높아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머리로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능력과 힘으로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높아지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 초자연적인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하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 동일한 그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했던 죄가 파괴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복음 설교를 통해서 일으킨 믿음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능력을 아십니까? 죄를 파괴하고 믿음으로 살게 하는 이 능력, 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능력을 공급받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행하고 계시고, 또 이미 행하신, 그리고 앞으로 행하실 전능하신 사역을 여러분들이 바르게 평가하고 이해하기를 위해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일을 아는 여러분은 이제 큰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게 하신 이 능력이 여러분을 위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 행하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이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여러분을 강건케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이 세상의 어려움, 삶의 여러 가지 힘들고 복잡한 일들 속에서, 영적인 전투에서 여러분을 지원할 것입니다. 이 능력에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에 여러분 자신을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의 강건하심, 신실하심에 여러분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 맡기는 헌신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1).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공동체의 살아있는 지체로 살아야 합니다.
(2).(또한)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는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소망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의 기업에 대한 지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지식으로 더욱 더 전진합시다. 성령님께서 복음 설교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실 때, 성화로 이끄실 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는 그리스도의 임재로 충만하다.
세 번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임재로 가득 채워진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과 만물 위에 그리스도를 높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노무현 씨가 대한민국 대통령 이듯이, 그리스도가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1)만물을 다스리는 머리로 그리스도를 지명하셨다.
따라서 바울은 현저할만한 일을 계속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두시고, 교회를 위해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로 그리스도를 지명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이 22절입니다.
왜 그리스도를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로 삼으셨습니까? 그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섭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눈동자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에는, 늘 당신의 교회(백성들)를 염두에 두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관심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권세들을 일으키시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교회를 염두에 두시고 역사의 완급을 조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해, 그 역사를, 그 결론을 이끌어 가십니다.
2)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사도는 본문23절에서, 교회는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어디서나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면서 그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친밀한지를 말한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임재로 충만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임재로 당신의 교회에 충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충만하셨듯이, 구름이 늘 구약의 성전과 성막을 덮었듯이,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과 권위와 위엄으로 우주를 충만케 하십니다.
㉰교회 역시 그분의 충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표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충만함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곳이 바로 교회 안에서 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공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교회의 회원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교회를 필요치 않아!” “나는 교회 없이도 신자 일 수 있어!”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등을 돌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곳에서 당신의 위엄으로 계십니다. 그러나 오직 교회에서 ㉠당신의 은혜와 ㉡당신의 성령과 ㉢구원의 선물을 공적으로 부어주십니다. 공적인 예배를 통해서, 복음 설교를 통해서 주십니다.
3)왜 교회를 통해서, 복음 설교를 통해서 당신의 은혜와 당신의 성령과 구원의 선물을 공적으로 주십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 사이에 있는 관계는 대단히 친밀하고 친근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요14;15절에서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의 말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철장을 들고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형벌을 집행하기 위해서 철장을 손에 들고 오시는 것입니다. 왜닙까? 공적으로 주시는 당신의 은혜와 당신의 성령과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섭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됨됨이가 어떠합니까? 이를 바르게 평가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죄와 비참 가운데 구속함을, 죄 사함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임재 속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임재 속에 있는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입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계시에 의해 하나님을 알게 된 공동체이자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기업,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신 소망에 대해 알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향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이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구주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