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렸다고 주장한 초능력자 유리 겔라.
[말랑말랑과학-68] "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초능력 스파이(psychic spy)였다."
칠순을 앞둔 한 남자가 최근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초능력' 하면 떠오르는 그, 한국 방송에도 출연해 시청자들과 함께 숟가락을 구부리고 멈춘 시곗바늘을 다시 돌게 만든 사람. 바로 유리 겔라다.
겔라는 인터뷰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스파이로 일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2013년 BBC는 겔라가 초능력을 활용해 이스라엘의 이라크 핵시설 폭격 작전인 '바빌론 작전'과 우간다 엔테베 공항 인질극 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초능력이란 현대 과학으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 염력, 예지, 텔레파시, 투시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겔라는 생각만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등 각종 염력을 선보여 초능력자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스라엘 출신인 겔라는 1971년 미국의 초심리학자인 안드리야 푸헤리치를 만난다. 스스로를 초능력자라고 밝힌 겔라는 최면 상태에서 "5만3000광년 떨어진 곳에서 외계인들이 나를 우주선에 태워 지구로 보냈다"고 말했다. 푸헤리치의 열렬한 지지 속에 겔라는 1972년, 1973년 스탠퍼드대 연구소가 주관한 초능력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한다. 이 테스트 결과는 1974년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으로 실렸고, 겔라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렇다면 겔라는 진짜 초능력자였을까?
당시 겔라를 검증하기 위해 이뤄진 실험들은 저명한 연구기관인 스탠퍼드대가 설계했다고 보기엔 매우 조악했다. 연구팀은 2㎝ 크기의 주사위를 7.6×10×3㎝의 철제 상자에 넣었다. 연구팀 중 한 명이 이걸 흔든 뒤 책상 위에 내려놓으면 겔라가 주사위 윗면에 어떤 눈이 오는지를 맞히는 실험이었다. 겔라는 10회 중 8번을 맞췄다. 약 100만분의 1 확률이다. 맹점이라면 상자가 완전히 밀봉되지 않아 상자의 틈 사이로 주사위 눈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겔라가 상자를 흔들기도 했다. 눈썰미만 좀 있다면 얼마든지 틈새로 숫자를 슬쩍 보고 맞힐 수 있었다.
또 다른 실험은 연구팀이 무작위로 그림을 그리면 맞은편 방에 고립된 겔라가 그림을 맞히는 것이었다. 겔라는 역시 13회 중 10회를 맞히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실험도 허점이 있었다. 겔라는 창문을 통해 당시 동행한 여동생과 비밀 사인을 주고 받았고, 연구팀이 그린 그림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겔라가 틀린 세 번의 경우 연구팀이 그의 몸에 측정 장비를 달아 움직일 수 없는(즉 겔라가 동생과 사인을 주고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겔라는 원래 이스라엘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던 마술사로 마술 트릭을 '초능력 쇼'로 교묘히 포장해 먹고살았다. 구글에서 겔라의 이름을 검색하면 일루셔니스트(마술사)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그는 초능력자가 아닌 마술사로, 마술 트릭들을 조합해 초능력인 양 뽐내며 과학자들을 농락한 것이다.
앞서 겔라의 전매특허로 알려진 숟가락 구부리기도 실은 간단한 '마술 트릭'이다.

▲ 초능력 사냥꾼 제임스 랜디. 유리 겔라도 그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 같은 그의 사기 행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겔라의 초능력에 의구심을 보인 사람들이 나타났고, 결국 겔라는 유명한 초능력자 사냥꾼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겔라의 검증에 들어간 사람은 바로 제임스 랜디. 랜디는 캐나다 태생의 프로 마술사다. 그는 1976년 초자연 현상과 사이비 과학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 조사를 위해 결성한 비영리단체인 '의심탐구위원회(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CSI)'의 창설 멤버다.
CSI엔 로봇 3원칙을 만든 아이작 아시모프,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프랜시스 크릭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겔라를 먹잇감으로 고른 랜디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자니 카슨과 손잡고 카슨의 토크쇼에 겔라를 초대한다. 겔라는 별 의심 없이 방송에 출연했고, 각종 초능력을 시연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랜디는 겔라가 마술 트릭을 쓸 수 없도록 미리 손을 써뒀고, 겔라는 전매특허인 초능력을 쓰지 못한 채 방송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랜디는 방송 후 "겔라가 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해 숟가락을 구부린다고 친다면 그건 숟가락을 구부리고자 애써 어려운 방식을 고른 셈"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랜디는 '진짜' 초능력자를 찾기 위해 1964년 자신 앞에서 초능력을 입증해 보인다면 상금 1000달러를 주겠다고 전 세계에 공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상금은 100만달러까지 올라갔고 수많은 초능력자들이 도전했지만 아직도 상금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영욱 과학기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