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공덕비 이야기】
‘상길육영회’ 공덕비에 새겨진 ‘아름다운 칭송’
― 청양 출신 역사학자 정구복 박사가 지은 <서병훈 선생 공덕비>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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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수필】 ‘상길육영회’ 공덕비에 새겨진..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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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수필】
‘상길육영회’ 공덕비에 새겨진 ‘아름다운 칭송’
― 청양 출신 역사학자 정구복 박사가 지은 <서병훈 선생 공덕비>를 바라보며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청양군 장평면 출신
“성공한 학자지. 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명석했어. 공부를 잘 했지. 근동에서 손꼽히는 인재라고 소문났지. 어디 우리 동네뿐인가. 면내는 물론이고 군내에서 칭찬이 자자했지.”
그러면서 구순의 장모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집안이 가난했어. 공부는 잘하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거야. 그래서 모두가 안타까워했는데, 큰 동량이 될 것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줬지.”
내 고향 청양의 향토 언어 중에 ‘밀어줬다’라는 표현은 ‘도움을 주었다’라는 뜻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밀어주고, 독지가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주인공이 저명 역사학자인 정구복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한국사학사학회 명예회장)요, 도움의 손길이 닿은 것이 서병훈 선생의 ‘상길육영회’다.
▲ 정구복 박사 프로필(출처= 정구복 저 《우리 어머님》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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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1913~2000) 선생은 ‘고향 사랑’을 실천으로 옮긴 분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고향의 후진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에 썼다.
은혜를 입은 정구복 박사는 청양문화원에서 발행한 《七甲文化》 33호(2023) 칼럼 형식의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서병훈 선생은 아버지로부터 1953년경에 청양양조장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전부 쏟아 선친의 이름을 따서 ‘상길육영회’를 만들어 당시 군내에 있었던 두 개의 중학교 즉 청양중학교와 정산중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1년에 한 명씩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공과금을 지원해 주었다. (중략) 나는 바로 그 ‘상길육영회’의 혜택을 듬뿍 받은 사람이다. (하략)”
▲ 서병훈 선생님 회갑기념 사진(출처= 정구복 저 《우리 어머님》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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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충청남도 청양군에는 정계, 관계, 학계, 예술 문화계 등에서 명성을 떨친 인재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훌륭한 인재로 성장했는지 극히 일부 가까운 이웃과 지인들만 알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정구복 박사 역시 ‘상길육영회’ 혜택을 받아 학문적 성과를 크게 이루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정 박사 가정 형편과 진학에 관한 구체적인 내력을 몰랐다.
청양군 장평면 낙지리 한 동네 사셨던 장모님이 생시에 들려준 말씀이 정 박사 관련 ‘인물 정보’ 중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정 박사뿐만 아니라 당시 장학금을 받은 사람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여럿이라고 들었다.
‘공덕비 건립’이 그래서 필요하다. 몇몇 혜택을 입은 특정 범위에서 공덕 내용을 칭송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 공덕비 문안(출처=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카페) - 본 공덕비 제막식은 11월 22일 청양읍 송방리 46-1번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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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미디어 홍보 수단이 발달한 이 시대에 좀 더 세상에 알려져 생시 공덕이 지역 사회에서 귀감이 되어야 한다. 인재 양성을 위한 토대가 되고, 교육 사업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고향 선배님인 정구복 박사님이 자랑스럽다.
은혜를 잊지 않고 그 공덕을 기리는 비를 고향 땅에 정성을 다하여 세우니, 후세에 길이길이 장학사업의 본이 되고 빛이 되리라 믿는다.
『효성 · 겸손 · 고향 사랑』, - ‘상길육영회 공덕비’에 새겨진 칭송이 아름답다. ■
2024. 11. 18.
청양인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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