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을 통치했던 수니파 이슬람왕조로
아나톨리아에서 펀잡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 왕조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부족으로,
오늘날 그 자손들이 아제르바이잔,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셀주크족은
본래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인 오구즈 투르크(Oghuz Turks)일족에 속해 있었다.
오구즈 투르크족의 카칸 야브구(Yabghu)는
9세기 중반 무렵
이슬람 제국의 경계인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에서 거주하다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10세기에 이르러 셀주크족은
페르시아의 쿠라산(Khurasan)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수 십년 간 페르시아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이며
현지인들과 혼혈을 이루었다.
10세기에 이르러
셀주크족은 페르시아의 쿠라산(Khurasan)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수 십년 간 페르시아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이며 현지인들과 혼혈을 이루었다.
대(大)셀주크왕조를 건설한 셀주크족의 투그릴 베그(Tughril Beg:재위 1038~1072)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진출, 아바스조의 분쟁을 틈타 가즈나왕조를 격퇴하여
페르시아 사만 왕조를 병합했다(1040).
이어서 1043년 이스파한을 함락함으로써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곧 이어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부와이흐조로부터 지배권을 넘겨받는다.
셀주크 군주, 투그릴은
아바스조 칼리프 알 까임(al-Qaim 재위 1037~1075)으로부터
‘동서방의 술탄’, ‘최고의 아미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로써 아바스왕조의 분열 이후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셀주크투르크는
11세기 중엽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셀주크조는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 재위 1063~1072)와
그의 아들 말리크 샤(Malik Shah 재위 1072~1092) 때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들은 뛰어난 재상 니잠 알-물크(Nizam al-Mulk)의 노력으로
정치적·군사적 면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절정에 달했으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장악하고, 파티마 왕조
11세기 말에 이르러,
셀주크조는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중동의 이슬람 세계는
전기 아바스 칼리프조 이래 처음으로 다시 통일되었다.
뿐만 아니라 셀주크조는 비잔틴의 영토를 공격했으며,
1071년 셀주크 술탄 알프 아르슬란의 지위 하에
반(Van) 호수 북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비잔틴 군을 참패시키고
황제 로마누스 디오게네프를 포로로 잡는 한편,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나톨리아 전역이 이슬람화되었으며,
14세기 초까지 셀주크의 통치 하에서 동부 아나톨리아는 터키화(化) 되어갔다.
한편 11세기 중엽 기독교인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자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성지 탈환을 위하여 십자군을 조직,
1096∼1270년까지 200여 년 간 10차례에 걸쳐 성지 탈환을 시도하였다.
교황의 성지탈환은 끝내 실패하였으나
이 전쟁으로 인하여 제국의 국력은 쇠퇴하였다.
11세기 말부터 정권 분쟁으로 분열이 일어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의 대(大)셀주크조는
1157년 술탄 산자르(Sanjar 재위 1097~1157)의 사망 이후 세력이 약화되어
여러 소국가들로 분할되었다.
또 게르만·시리아·이라크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분파 정권도 12세기에 모두 멸망하였다.
그러나 아나톨리아에 세워진,
셀주크 룸(Seljuk Rum 1077~1307)으로 알려진 투르크계 군주국은
몽골인의 서진(西進)을 막아내며
1307년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다.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