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21세기』
제2장 고조선 연구의 역사 - 피와 눈물과 영웅들의 드라마 (7)
주류 고대사학계와 소고조선의 행보 (3)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는 2004년 출간된 송호정의 책이다. 송호정은 200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학위 논문을 증보하여 출판한 책이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이다. 따라서 송호정의 이론은 2000년에 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송호정은 노태돈의 제자이다. 이병도의 학문적 증손자뻘, 즉 이병도 이후 주류 고대사학계의 4세대이다. 송호정은 노태돈의 권장과 지도하에 박사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자랑스러운 고조선 관련 1호 박사가 되었다. 그럼 송호정의 이론이란 어떤 것인가.
결론만 논하자면 다소 의외다. 송호정은 고조선이 줄곧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스승인 노태돈이 이동설을 주장했는데 그것을 뒤집고 이병도의 학설로 되돌아 간 셈이다. 그래도 되나? 그래도 된다. 그렇다면 스승을 거역해도 된다는 말인가? 물론 그건 안 된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스승이 자기 이론과 다른 이론을 제기하라고 하면 된다.
노태돈이 원한 것은 옳은 학설이 아니다. 대고조선론에 대항하고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소고조선론 상품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이다. 대신 그 핵심에 있는 소고조선론의 본질, 낙랑군 평양설만 확고하게 지키면 된다. 이렇게만 하면 어떻게 해도 고조선이 오래되지 않았고 작은 나라, 심지어 나라도 아닌 집단이었다는 말이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일제 식민사학 이래 정립된 고조선 이후 모든 고대사도 일제 식민사학이 설정한 대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태돈 본인의 전공인 고구려사도 노태돈이 원하는 대로 지켜진다.
반면 소고조선론의 다양성은 여러 이익을 준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학문의 자유가 있다는 선전이 가능하다는 것,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는 것, 즉 여기서는 이 말 하고 저기서는 저 말 해도 이론이 다양하기 때문에 별 탈이 없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노태돈에게는 이런 상황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렇기 때문에 송호정을 그토록 열심히 키웠다. 또 송호정이 박사가 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는 한 학술 잡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필자의 이동설을 비판하면서 처음부터 평양에 고조선의 중심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론의 제기되었다. 앞으로 이 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고찰이 요구되어진 바이다."
2000년 8월에 간행된, 앞서 말한 『한국사 시민강좌』 27집, '역사적 실체로서의 단군'이라는 글의 일부다. 그럼 필자인 노태돈을 비판하고 새로운 주장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노태돈은 그 장 각주에 '송호정, 「고조선 국가형성 과정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1994'라고 상세히 밝혀 놓았다.
노태돈은 막 박사 학위를 마친 송호정이 이렇게 기특했고 그런 송호정을 광고하고 키워주는 데 이토록 열성이었다. 비판은 무슨 비판. 그저 한통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송호정의 논문 수준은 어땠을까. 앞서 노태돈은 공부는 못했어도 아이디어와 기술은 비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호정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비상하기는커녕 송호정은 노태돈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다만 마지막에 몇 가지 잡소리를 섞어 고조선이 처음부터 평양에 있었다는 결론만 바꾸었다. 또 말하지만 그 동네는 그렇게 잡소리를 해도 되는 동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노태돈 같은 거물이 인정하고 대중이 알아채지만 못하면 만사형통이다.
사실 송호정은 공부를 잘 못한다. 또 다른 고대사학자에 비추어 그리 능란하거나 교활하지도 않다. 신용하나 윤내현을 욕할 때는 기세가 등등하지만 한편으론 자신감 없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송호정 자신이 하는 말이다.
"필자가 고조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다. 석사 과정에 있던 1980년 말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지도교수님이 중국 학계의 중국 동북 지방 관련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의 고고학 논문을 정리해 볼 것을 주문 하셨다.
…(중략)…
특히 고조선사의 경우는 …(중략)…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동안은 짧은 기간에 혼자서 정리한다는 것은 과욕이라 생각하고 일전에 정리해 본 부여사로 논문 주제를 변경하려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여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다른 기회를 이용하고,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사를 학위논문으로 다뤄보라는 지도교수님의 권유는 다시 고조선사에 전념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이것은 예의 책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머리말의 일부이다.여기서 지도교수님은 물론 노태돈이다.
나는 송호정의 이 말이 그의 솔직한 심정일 거라 생각한다. 이 인용은 짧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령 노태돈이 이미 1980년 말 중국 고고학계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그렇다. 그것은 곧바로 앞서 검토한 노태돈의 논문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와 직결된다. 노태돈은 중국 고고학계로 탈출을 이미 기정사실로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시피 송호정은 고조선 연구에 별 뜻이 없었던 사람이다. 노태돈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것이다. 또 고조선 공부를 어려워했고 그래서 부여사로 논문 주제를 바꾸려고까지 했다. 그걸 노태돈이 붙잡아서 송호정은 고조선 박사가될 수 있었다.
그중 '부여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으니 다음 기회를 이용하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고조선 연구의 동기에는 세간의 관심도 중요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간의 관심이 없었다면 고조선 연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송호정 이전에 고조선을 연구한 박사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윤내현 이전에 주류 고대사학자들 중 아무도 고조선을 연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송호정이 하필 그 시기에 고조선을 연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이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을까? 단 한 사람, 윤내현이다. 윤내현 이전엔 다른 누가 고조선을 떠들어도 그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결국 그들은 모두 윤내현의 태풍 속에 있었다.
국사학과 석·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방황하는 그를 붙잡아 준 건 노태돈이었다. 그는 송호정을 박사로 키워냈고 학계에서 촉망받는 신예 학자로 부상시켰다. 그는 나중에 교원대학교 교수가 되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결코 쉽지 않은 교수직 얻는 일에도 스승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처럼 노태돈은 청년기 이후 송호정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결정한 사람이다. 이런 노태돈에게 송호정이 가지는 애정과 존경심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송호정이 분노하는 원인과 동력을 여기에서 발견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름 아닌 신용하나 윤내현을 그렇게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 말했듯 신용하와 윤내현은 진실한 학자들이며 그 인품이 온건하다. 누가 미워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송호정이 그들을 그토록 미워했다면 동기는 하나뿐이다. 그들이 그의 스승과 그의 학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확신과 분노를 가지면 더 무섭다. 나는 그런 송호정에게 일종의 공포를 느낀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유별나게 순하지만 적들에게는 유별난 분노와 증오를 품기 때문이다. 그는 윤내현을 빨갱이로 처단하는 데 1초도 머뭇거리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런 송호정이 주류 고대사학계와 소고조선론에서 갖는 의미를 정리하기로 하자. 말했듯 송호정은 학문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소고조선론 내부에서도 그렇다. 앞서 말한 서영수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의 학설을 중시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노태돈의 논문이 훨씬 중요하다. 여러 종류의 대고조선론을 상대할 때도 노태돈의 논거를 가장 자주 가장 유력하게 사용한다. 그럼에도 송호정의 의미는 각별하다. 왜 그런가? 다음 아닌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호정의 모든 의미는 그의 박사 학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송호정의 박사 학위는 주류 고대사학계와 소고조선론에 어떤 의미인가?
첫째, 이 박사로 인하여 주류 고대사학계는 고조선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했다. 대중은 고조선 1호 박사 송호정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주류 고대사학계가 고조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계라고 완전히 속아 넘어간다.
둘째, 이 박사로 인하여 주류 고대사학계는 대고조선론을 직격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가 공적인 학술 잡지에서 신용하를 대하는걸 감안할 때 그는 공적인 지면에서조차 박사 학위라는 감투 밑에 숨어 테러 수준의 막말을 자행할 수 있다. 그의 박사 학위는 그렇게 저열한 송호정의 언사를 합리화해준다. 말하자면 그는 질 나쁜 악플러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확보한 셈이다.
셋째, 대중적 잡지나 교양 도서에 글을 쓰는 데 유리하다. 방송 출연이나 대중 강연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 이력이나 출연자 프로필에 서울대학교 고조선 박사 1호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어쩌면 소고조선론자 전부의 이름을 올리는 것보다 강력할지 모른다.
넷째, 국회, 관공서, 기타 학술 기관 등과 관계할 때 더할 수 없이 좋은 얼굴마담 역할을 한다.
이것이 송호정의 의미이며 사실상 그 의미의 전부다. 실제로 송호정은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이 일을 시작했다. 박사 학위증 잉크가 식기도 전인 2000년 말 송호정은 『역사비평』 겨울호에 「‘비밀의 왕국, 고조선, 실상은 이렇다」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그해 10월 K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로를 저격하기 위한 글인데, 이 다큐는 다름 아닌 윤내현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역사스페셜> 이란 프로그램의 '비밀의 왕국, 고조선' 편이다. 송호정의 이 글은 앞서 말한 송호정의 책 『단군, 만들어진 신화』에 다시 실렸고 신용하를 사실무근이라 하고 그를 한양대 석좌교수가 아닌 명예교수라고 폄하했던 이야기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저격은 다른 사람이 수행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노태돈 같은 거물이 이런 식의 저격 글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따로 적당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새파란 애송이, 그러나 고조선 박사 1호라는 머리띠를 두른 송호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노태돈과 주류 고대사학계가 송호정을 키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은 송호정의 저격 글에서 복수심과 증오심의 충족을 만끽했을 것이다. 이해가 간다. 빨갱이로 고발까지 하면서 때려잡으려 했던 윤내현인데 오히려 더 생생히 살아나 대규모 TV 역사 다큐에까지 등장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그들의 속내를 송호정이 남김없이 달래주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송호정은 위의 네 가지 일을 쉬지 않고 지속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론이 뭔가. 노태돈의 교두보가 사령부로 확장하기 위한 중대한 전진을 했다는 것이다. 주류 고대사학계의 그 화려한 일보 전진이 바로 송호정이다.
출처: 『고조선과 21세기』, 김상태, 2021. 129~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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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돈과 송호정은 중국동북공정을 충실히 따르는 중국 첩자다. 또한 둘 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첩자다. 이들은 이완용의 후예를 자처하는 매국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