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15일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비리(非理) 기업인과 전(前) 정권 인사, 선거법 위반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사면 기초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 판결을 무효화하는 사면권을 갖는 것이 3권(權)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데도 국가원수에게 사면권을 인정하는 건 법원 판결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시정할 최종 구제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 따른 것이다. 국가 이익이나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한 사면 역시 국민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헌법학계 일부에서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의 사면, 대통령의 취임이나 국가경축일을 기념하기 위한 사면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학설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60여년간 모두 99차례 사면이 이루어졌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평균 1년에 두 차례씩 모두 1280여만명에게 사면장을 줬다. 현 정부도 지난 대선에서 '사면제도의 오·남용 방지책 강구'를 공약하고서도 벌써 네 차례, 총 469만5867명을 사면했다.
정권들마다 정권의 인기 부양용(浮揚用)으로 '생계형 범죄 사면' 카드를 꺼내썼다.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나 동지의 전과자 딱지를 떼주기 위해서, 또는 정적(政敵)을 회유하거나 야당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사면을 써먹기도 했다.
국가가 형사범 한 명을 처벌하려면 수사부터 기소·재판·수감까지 적잖은 시간·인력·돈이 들어간다. 사면은 이 모두를 헛일로 만들어 버린다. 사면 대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줬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된 것인데 어떤 정부도 사면 전에 그 피해의 원상복구 여부를 확인한 적이 없다. 독일은 지난 60년간 사면을 네 번밖에 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은 아예 사면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우리 국회도 2004년 정부가 사면 1주일 전에 대상과 죄의 종류 등을 국회에 미리 알려 국회 의견을 듣도록 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사면법 개정을 주도했던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정부·여당은 지금 사면 얘기를 다시 꺼내기 전에 6년 전 자신들이 만들었던 것처럼 사면권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부터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