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오븐 요리법 알고 보면 무궁무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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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만능 조리기구인 오븐. 서양요리만한 쓰임새는 없지만 오븐으로 할 수 있는 한국요리도 적지 않다.
주부 임나경씨(36)는 부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오븐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큰맘먹고 구입한 가스오븐레인지가 부엌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오븐을 산 후 몇 달은 과자나 케이크를 구워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지만 여덟 살, 일곱 살 난 아이들에게 충치가 생기면서 당분이 많은 케이크나 사탕 등을 피하다 보니 더 이상 오븐을 쓸 일이 없었다.
“친구들이 다들 오븐을 가지고 있어서 쓸 데가 아주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과자, 케이크, 통닭 이 세 가지 외에는 할 수 있는 요리가 없더라고요. 하다못해 반찬이라도 한두 가지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궁여지책으로 오븐을 찬장 대용으로 쓰고 있는 임씨는 주변에서 오븐을 살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말리고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주부들이 임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오븐 보급률은 20% 정도. 그러나 주부들 대다수가 오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케이크나 과자, 그라탕 등 서양요리 외에 오븐으로 할 수 있는 한국요리가 드물기 때문.
▼‘한국요리 못 만든다’ 그릇된 생각▼
오븐은 쉽게 말해서 ‘화덕’이다. 요리할 음식을 한가운데 넣고 사방에서 열을 보내 음식을 익히는 것이 오븐의 원리다. 빵을 비롯한 서양요리의 90%가 오븐으로 조리한 음식들. 서양에서는 그야말로 ‘만능 요리기구’다. 특히 많은 분량의 요리를 한꺼번에 할 수 있고, 한번 오븐에 넣기만 하면 다시 손이 갈 필요 없이 오븐이 알아서 요리를 다 해준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한국에 오븐이 처음 수입된 것은 1982년. 그 후 강남의 아파트 거주 주부들 사이에서 오븐 붐이 서서히 일다 85년 동양의 ‘매직쉐프’가 등장하면서 오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오븐이 혼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피자와 햄버거를 비롯한 서구 음식문화의 급격한 유입과 때맞춰 분 빵, 과자 만들기 붐도 오븐의 인기에 한몫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당시에 오븐의 보급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당시 빵의 주된 원료인 밀가루와 설탕 가격의 상승으로 제과점의 빵값이 크게 뛰자 주부들이 ‘이럴 바에야 아예 내가 만들자’며 앞다투어 오븐을 사들인 것.
린나이코리아 요리연구소의 주임강사인 옥지은씨는 “오븐 열풍이 한 차례 불었지만 사람들의 입맛이 서구식으로 변하지 않은 데다가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오븐 붐은 한동안 주춤했다”고 말했다. 피자만 해도 굳이 오븐을 사용해 집에서 만들 필요 없이 전화 한 통화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또 외식을 할 때는 서양요리를 선호해도 집에서 식사할 때는 역시 ‘된장찌개에 밥’을 찾는 식성도 오븐 보급을 가로막는 요인.
그러나 최근 들어 아파트의 ‘빌트인(Built-In)’ 가구로 오븐이 들어가고 TV 홈쇼핑 등에서 30만원 대의 저가 오븐을 판매하면서 오븐 판매는 다시 활기를 띠는 양상이다. 동양매직측은 “2000년 이후 오븐의 판매량은 매년 2만대 정도씩 늘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오븐의 전체 대수는 25만대 가량”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인 부엌을 예쁘고 품위 있게 꾸미겠다는 요즘 주부들의 변화된 의식도 오븐 판매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양에서는 만능의 조리기구인 데 비해 한국에서 오븐의 한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국물요리가 안 되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븐에서 할 수 있는 한국요리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옥씨는 “떡과 약식, 돌솥밥 등은 쿡톱(cook top)이나 그릴보다 오븐에서 하는 것이 손쉽고 맛도 있다. 특히 오븐에서 한 약식은 중탕으로 18시간 이상 끓여 만드는 재래식 약식처럼 쫄깃하다”고 말했다. 돌솥밥 역시 1인용 돌솥만 구비해두면 사람 수에 관계없이 오븐으로 요리할 수 있다.
▼최신형은 연료 소모도 적은 편▼
보통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튀겨내는 돈가스 류의 음식도 오븐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기름에 튀긴 돈가스는 기름기가 많고 남은 기름을 처리하기도 곤란하지만 빵가루를 입힌 고기의 양면에 기름을 살짝 발라 오븐에 구우면 바삭한 돈가스를 만들 수 있다. 이외에 많은 양의 갈비찜을 하거나 감자, 고구마를 구울 때도 가장 손쉬운 기구가 오븐. 요리연구가 우정욱씨는 “오븐 요리법을 모르니까 주부들이 모든 음식을 가스불로 조리하는 것”이라며 “오븐은 기름을 거의 쓰지 않고 고기를 굽거나 멋진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등 좋은 점이 많은 요리기구다. 이왕 오븐을 장만한 주부들은 특별한 날에만 오븐을 쓰지 말고 쉬운 요리 위주로 항상 오븐을 이용한다는 적극적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주부들이 오븐 쓰기를 꺼리는 데에는 ‘연료가 많이 든다’는 걱정도 한몫한다. 실제로 오븐은 간접열을 이용해 조리를 하기 때문에 직접 열을 가해 만드는 조리기구에 비해 연료 소모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강제대류형(convection) 오븐은 예열이 필요 없고 기존의 자연대류형 오븐에 비해 조리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만큼 연료 소모가 적다. 자연대류형이 오븐 밑쪽에서 열을 가해 이 열이 자연적으로 오븐 속에서 순환하는 방식인 데에 비해 강제대류형은 오븐 뒤편에 있는 팬이 열풍을 일으켜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 자연대류형에 비해 최고 2분의 1까지 조리시간이 단축된다. 쿡톱과 그릴 일체형인 가정용 오븐의 경우 자연대류형 오븐은 40만원에서 100만원 선. 강제대류형은 80만원에서 170만원 선이다.
쓰기에 따라서 만능 조리기구도 되고 부엌의 애물단지도 되는 오븐. 만약 당신의 부엌에서 오븐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 새로운 오븐요리에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오븐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들]
버섯볶음밥·약식·통감자구이도 간편하게 ‘뚝딱’
케이크나 칠면조구이 등 거창한 요리만 오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요리와 반찬들 중에서도 오븐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적지 않다.
▣ 버섯볶음밥
가스불에 조리하면 삼층밥이 되거나 밑이 눌어붙기 쉬운 돌솥밥, 그러나 오븐을 이용하면 타지 않고 고루 잘 익는다.
재료 : 불린 쌀 2컵, 표고버섯 2장, 느타리버섯 70g, 쇠고기 간 것 50g, 팽이버섯 약간, 양송이버섯 3개, 다시마물 1.5컵, 굴소스 1큰술, 간장 1큰술, 식용유, 소금, 참기름 약간씩
① 불린 쌀은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② 쇠고기는 채 썰어 불린 표고버섯과 같이 양념한다.
③ 느타리버섯은 살짝 데쳐 찢은 후 소금과 참기름에 버무린다.
④ 팽이버섯은 끝부분을 다듬어 2등분하고 양송이버섯은 납작하게 썬다.
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2를 볶다가 쌀을 넣는다.
⑥ 나머지 버섯을 넣고 볶다가 굴소스로 간한다.
⑦ 돌솥이나 오븐용기에 담고 물을 부은 후 오븐에 넣어 230도로 25분간 조리한다.
▣ 약식
오븐으로 맛있게 할 수 있는 대표적 한국음식이다. 같은 방법으로 떡도 만들 수 있다.
재료 : 불린 찹쌀 3컵, 밤 10개, 대추 10개, 간장 2큰술, 참기름 3큰술, 설탕 1컵, 계핏가루, 잣 약간
① 찹쌀은 씻어서 불린 후 물기를 빼둔다.
② 밤은 껍질을 벗겨 큰 것들은 2~3등분 하고, 대추는 씨를 제거한 후 2~3등분 한다.
③ 찜통에 물을 자작하게 부어 불에 올린 다음, 뜨거운 김이 오르면 찹쌀과 밤을 넣고 찐다(중간에 물을 확인하고 1회 정도 내려준다).
④ 두꺼운 팬에 설탕을 넣어 태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갈색 시럽을 만든다. 여기에 뜨겁게 쪄진 밥과 밤, 대추를 넣고 간장, 참기름, 계핏가루로 간을 하여 버무린다.
⑤ 오븐용기에 참기름을 바르고 내용물을 담아 뚜껑을 덮어 오븐에 넣고 180도에서 20분간 조리한다. ⑥ 완성되면 꺼내 뜨거울 때 잣을 넣어 버무린다.
▣ 통감자구이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아이들 간식으로 고구마를 이용해도 된다.
재료 : 통감자 5개, 소금, 버터, 모짜렐라치즈 70g, 슬라이스치즈 1장, 지진 베이컨 2장, 파슬리 가루, 팔메산치즈
① 통감자는 씻어 가운데 칼집을 넣은 후 소금, 버터를 조금 넣고 오븐에 넣어 230도에서 25분 정도 굽는다.
② 모짜렐라치즈, 슬라이스치즈, 베이컨, 파슬리 가루를 섞어 구운 감자를 벌려 적당히 넣고 다시 오븐에 넣어 5분 동안 구워낸다.
<출처: 주간동아 3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