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첫 여부사관으로 임관한 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흔히 남자들만의 영역으로 알려진 군대에 여자의 몸으로 지원하면서 느꼈던 긴장감과 기대감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여자로서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실무 부대로 첫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행정 업무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실무 부대에서 내게 주어진 첫 직책은 분대장 임무였다.
대원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생활해야 하는 분대장 임무는 해병대 최초의 여분대장으로 무척 두려운 일이었지만 또 그만큼 기대되는 일이기도 했다.
세상 무슨 일에나 쉬운 일은 없겠지만 분대장 임무는 더욱 그랬다. 여자라는 이유로 생기는 한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분대장으로서 마땅히 대원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해야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밤이면 어김없이 개인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 분대장에게 대원들도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토록 원했던 해병대에서의 첫 임무인데다 또 해병대 최초의 여분대장이었기에 더더욱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어떤 훈련에도 여자라는 핑계로 열외하지 않았고 모든 훈련을 대원들과 똑같이 소화해 나갔다. 체력적 한계는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여군으로서 찾아오는 한계점들은 여군으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여자로서의 섬세한 배려와 친절함으로 나는 대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었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 과정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노력한 만큼의 결실은 찾아왔다.
자신들과 똑같이 훈련을 소화하고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대장 앞에서 대원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훈련을 마칠 때마다 예의상으로만 대하던 대원들도 점점 진심을 담아 “필승! 분대장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 왔다.
대원들이 나를 분대장으로 인정한다는 진심이 느껴져 눈물을 쏟을 뻔한 적도 많았다. 열심히 하려는 내 모습에 동화됐는지 우리 분대는 열외나 낙오도 거의 없을 만큼 열성이었다.
여군으로서의 특권의식이나 소외의식을 버리고 대원들과 함께 훈련받고 함께 호흡할 때 나는 여자라는 한계를 넘어선 해병대 분대장이 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정예 해병 육성의 산실인 해병대교육훈련단에서 부사관 후보생 훈련관으로 복무하며 1년 전의 나처럼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입대한 후배 여군들을 교육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늘 말해 주곤 한다. 해병대에 입대한 순간 이미 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병대의 일원이라고. 여자로서의 특권의식이나 소외의식을 버리고 대원들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할 때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해병이 될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