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4년 8월 26일 월요일자
조그만 예의
문성해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이것을 캐낸 자리의 깊은 우묵함과
뻥 뚫린 가슴과
술렁거리며 그 자리로 흘러내릴 흙들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가던 붉은 옹고집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그래서 이것은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고
♦ ㅡㅡㅡㅡㅡ 어떤 생명체이든 존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생명을 잃으면 생명력도 잃게 되고, 물리적인 체(體)가 없으면 존재 여부를 알 수가 없다. 형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찐 고구마를 먹을 때 가슴을 퍽퍽 치면서 먹어야 한다, 언뜻 보기엔 위트 섞인 어투로 재미있게 읽히지만. ‘생명존중’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비의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맞는 말이다. 충직하게 살아낸 하나의 생명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가슴을 팍팍 치면서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http://www.s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7396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조그만 예의 / 문성해 - 서울매일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검은 흙을 밀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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