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나 나름대로는 계획이 빡빡하다. 때문에 고향에 사는 사람으로서 고향에 내려오는 지인들을 만나기는 늘 어렵다. 작년 추석에는 팔공과 화왕에 갔던가? 이번 추석에는 문경을 찾는다. 추석같은 큰 명절이 아닌 평소에 들어갈 수 없는 산(?)이 문경에 있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에 태풍으로 인한 큰 비가 온다고 해선지 동행자들이 모두 산행을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 둘만 문경으로 간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귀성객으로 전부 꽉 차 국도를 타고 문경으로 오른다. 문경으로 가는 국도! 제법 괜찮은 길이다. 이른바 천리 한양 과거길! 내가 수년전 직접 걸어내려왔던 바로 그 길이다.
아침 7:30분에 경주를 출발하여 국도를 타고 문경을 향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경주-영천-하양-신녕-부계-효령-군위-의성-비안-안계-다인-풍양-점촌-문경.........으로 들어간다. 그 중 제법 번화한 안계(경북 의성군 안계면)에 들어선다. 밥은 먹어야지. 저기 보이는 빨간색 간판, 백년식당에 들어간다. 예전 백두대간 종주 때 늘 저기에서 아침밥을 먹곤 했었다.
청국장! 주인은 바뀌어도 음식은 그럭저럭 괜찮다.
단숨에 문경새재로 들어와서 제1관문인 주흘문으로 향한다. 비가 더 내린다.
중간에 선비상이 나오고................예전 한양 과거길이라 선비들이 지나갔다고 그러는가?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자면 반드시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는데, 백두대간 상에 한양길과 가장 직선거리이고 가장 해발이 낮은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라 이 곳이 길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 새재보다 더 낮은 고개인 추풍령으로 넘어가자면 둘러가기에 한양길이 너무 멀다.
드디어 나타난 주흘문, 이른바 조령제1관문이다. 며칠전 보았던 영화 <비밀병기 활>에서도 여기가 나왔었지? 영화촬영지로 적격이다.
주흘문
새로이 복원된 주흘문이다. 주흘산 들머리는 이 문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여기가 주흘산 들머리. 예전에는 길도 없었는데 잘도 꾸며 놓았다. 그러고 보니 주흘산 온지가 20년이 되어 간다.
주흘산(1,106m)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사실 일본놈들이 지어낸 산맥 개념을 얘기할 마음은 없다. 우리 고유의 산줄기 개념인 대간-정맥 개념으로 보자면 주흘은 대간에서 벗어나 있다. 대간은 주흘산 바로 옆 조령산으로 지나간다. 그 대간이 주흘산줄기와 부봉에서 만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간에서 주흘 정상은 조금 벗어나 있다.)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는 곳이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國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 3개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주봉-영봉-꽃밭서덜-조곡관-주흘관............으로 등반을 진행할 것이다. 비가 자꾸 내려서 걱정이 조금 된다. 나는 괜찮은데 단미때문에.............
여궁폭포 가는 길에 우측으로 계곡이 나타난다. 곡충골이다. 원래 여궁폭포로 가면 등반로가 없다. 좌측 주흘산장으로 들어가 능선으로 올라타야 한다. 하지만 여궁폭포에 가고 싶다. 아마 지금쯤은 여궁폭포 쪽으로도 등반로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내가 온 지가 20년이 되었으니..............
여궁폭포, 女宮이라 잘들 아시겠지만 여성의 성기를 말한다. 그것과 흡사하게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명명한 자가 좀 점잖지 못한 사람이었는 모양이다.
여궁폭포에서 촬영을 하던 어느 친절한 photographer가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한다. 그래서 한 커트.
우리는 돌아돌아 능선에 오르고 정상으로 나아간다. 몇몇 지나는 사람들이 지금 시간이 12:30분인데 이 험한 산을 지금 등반해서 되겠냐고 걱정들한다. ㅎㅎ 물론 괜찮지. 그들 보기에 내가 초보같이 보이는 모양이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여궁폭에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조금 돌았을 뿐이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오른다.
예전에 비해 제법 설치물들이 생겼다.
위에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곳이 혜국사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측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지금 시간으로 봐서는 혜국사에 들릴 형편이 못 된다. 우리는 정상을 오르고 다시 영봉으로 나아갔다가 제2관문으로 떨어질 것이다.
해발 520m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인데,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절이다.
비가 많이 내리니 산속은 더 어두워간다. 나 혼자라면 괜찮은데 여자와 둘이서 가니 괜히 불안해 진다. 지금까지 산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다. 세상이 혼탁해진 건가? 요즘 워낙 사이코들이 많으니 말이다.
열심히 뒤따르고 있는 단미. 오늘 주흘산을 오르면 그녀는 스리쿼터를 달성한다. ㅎㅎ............. 한국100명산중 75개를 오르는 것이다.
정상 밑 대궐샘터에서 물을 마신다. 문경을 산들은 바위산들이라 물이 맑겠지? 화강암을 뚫고 나오는 물이 감로수가 아니던가?
비는 더더욱 내리고 이제 정상에 가까워졌다.
주흘산 주봉. 예전에는 여기가 정상이었다. 일부는 지금도 정상이라고들 한다. 문경읍에서 보면 이 곳이 가장 높게 보인다. 그런데 뒷날, 사람들이 산에 올라보니 이 주봉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발견되었다. 영봉(1,106m)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상이 모호해 졌다. 모호하면 둘 다 오르면 되는 것이다. 어쨋든 여기는 옛날 정상...............정상석도 여느 산정의 정상석 같지 않고 오래된 정상석이다.
주흘산 줄기 동편은 천길 낭떠러지이고 그 밑에 문경읍내가 있다. 하지만 그 멋진 광경은 산 가스(안개)에 가리고 없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운달산과 그 왼쪽으로 멀리 소백산 등이 이어진다. 남쪽에 백화산, 서쪽에 조령산, 북쪽으로는 1,107고지인 영봉(또 하나의 주흘산 정상)이 보인다.
이제 주흘산 줄기(주봉-영봉-부봉-탄항산)를 타고 북으로 나아간다. 영봉으로 가는 것이다. 단미가 추워하는 것 같다. 덥다고 옷을 벗더니 비를 맞아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다. 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저체온증(하이포서미아)이다. 비올 때 덥다고 옷을 벗어 비에 젖으면, 그 뒤에 산 위에서 기온이 떨어져 생길 수 있는 증세이다. 그러니 산에서는 비가 온다고 절대로 옷을 벗어서는 안된다. 아니 몸이 젖어서는 안된다. 젖었다면 바로 갈아 입어야 한다.
안개 속의 주흘영봉!
여기는 1,106m으로 주흘산 줄기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오티보다는 우산이 오히려 낫겠다. 이제 빨리 내려가자. 영봉에서 꽃밭서덜이 있는 계곡까지는 엄청나게 가파른 내리막길을 1시간 내려가야 한다. 무릎이 약한 단미는 무릎보호대를 착용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비는 나리고 주변에 조릿대(산죽)가 늘려 있다.
비가 내려도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 한다. 경주에서 간단하게 싸 온 도시락이다. 고급이라고 별 거냐? 산에서는 뭐든지 다 맛 있다. 한해 선배인 경주대학교 최재영 교수님이 준 멸치가 유난히 맛있다.
비가 더 온다. 우산으로 도시락만 가리고 등은 노출시킨다. 추워하는 단미에게 내려가서 문경온천에 가자고 꼬드긴다. 그녀는 온천을 너무 좋아하기에.........
한참을 내려 계곡을 만난다. 조곡골 상류이다.
급사면을 내려 계곡에 이르면 바로 나오는 꽃밭서덜...............그런데 너덜을 잘못 표기한 것은 아닌가? 끝도 없이 펼쳐진 작은 돌탑은 주변에도 계속 흩어져 있어 일반인들의 작품은 아닌 것 같고, 일종의 종교 의식이 행해진 곳 같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이런 짓을......
내려오면서 보니 멀리 조령산줄기가 보여 클로즈업시켜 찍어본다. 저 조령산줄기와 주흘산줄기가 평행으로 나아가는 데 그 가운데가 새재길이고 새재계곡이다. 물론 저 조령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비 나리는 계곡. 조곡골이다. 카메라 노출이 부족하여 어둡다. 이제부터는 노출을 극대화시켜야 겠다.
노출시키니 이제 밝아졌다. 하지만 이게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사실 지금은 어둡다. 카메라 기술로 밝아진 것이다.
계류로 인하여 둥그렇게 파진 암반 모습이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다. 노출시키니 이 정도이지 사실은 어둡기만 하다.
예전과 다르게 이쪽 길도 많이 정비해 놓았다. 문경시의 노력이 눈에 보인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돌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균열이 모두 직선으로 갈라져, 깨어져 나오는 바위의 모습들은 거의 다 직육면체이다. 다양한 용도로 쓰기에 적합하겠다.
빨리 조곡골을 탈출하자! 몸이 추워지니 걸음도 빨라진다.
주흘산 오름계곡인 곡충골보다 이 계곡의 경관이 몇 수 위다. 규모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다. 여기는 유명 계곡의 수준이다.
드디어 나타난 조곡관, 조령제2관문이다. 이 위로 올라가면 조령제3관문(조령관)이 나오는데 그 곳이 진정한 鳥嶺이다.
조령원터. 이 길이 워낙 중요한 길이다 보니 지나는 관리나 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식시설이었다고 한다. 넓은 공터에 큰 집이 지어져 있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니 카메라를 원래 노출로 환원시킨다. 저녁 6시 경인데 흐린 날이어서 이 정도로 어둡다.
우리가 오전 11:40분에 등반을 시작했던 주흘관에 저녁인 17:52분에 도착한다. 산행 시간이 6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사실 5시간이면 족한데 오늘 단미는 같이 산행하고는 가장 힘들어 한 것 같았다. 어제 친구들과 늦게까지 모임하고 간밤에 불면까지 하더니...... 나도 왠지 허리가 뻐근하다. 우중산행은 여러모로 피곤하다. 우산과 스틱을 잡고 거기다가 카메라도 쓰기에 손이 모자란다. 오늘은 문경읍내에서 편히 쉬어야 겠다. 내일 출입이 금지된 황장산에 새벽에 숨어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