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한국문학예술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작품감상방 스크랩 피카소의그림
한국문학예술 박남권 추천 0 조회 91 09.03.23 15:1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 글쓴이: 코이
  • 조회수 : 138
  • 08.05.01 20:14
http://cafe.daum.net/rebelloclinic/FWkS/1944주소 복사

피카소의 그림 작품 감상하기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 -1881-1973)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났으며, 1897년 마드리드의 상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했다.

 

 

1900년에 파리에 나가 작품 활동을 했는데, 처음에는 로트레크의 영향을 받았다. 1902-1905년까지를 '청색 시대'라 하여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의 빈민을 주제로 주로 그렸으며, 1904-1906년 사이를 '붉은 색 시대'라 하여 서정적인 서커스나 유랑 연예인을 주제로 그렸다.

 

 

1907년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20세기 회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분석적, 종합적인 단계를 거치며 '고전주의 시대',
'꿈의 분석 시대', '고전의 변용 시대', 만년의 '에로티시즘'등의 다양함을 보여 주고 있다.





화가와 모델

'화가와 모델'은 그리는 사람과 그려지는 사람이라는
관계에서 화가에게 있어서는 영원 주제의 하나에
틀림 없다고 피카소가 말했다






"그림이란 당초부터 이미지 되어지는 것도 아니며 정착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작을 하다보면 점점 떠오르는 상념을 좇아서 완성했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앞이 나타나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림이 그것을 보는 사람을 통하여 비로소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1923년 피카소는 이 해에 졸고 있는 여인을 많이 제작했다




아비뇽의 아가씨

입체파에 들어선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흔히들 이 작품을 두고 20세기 회화 사상
가장 주목할 작품이라고들 하는 것은 이 그림에는 기하학적 포름으로 환원된 인체와 반추상의
형태가 나타난 까닭이다. 최초의 습작에는 나부들 속에 두 사람의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피카소와 그의 여인들...

'그림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너무 나도 유명한 피카소,
그에게도 예술가로서의 고통과 고뇌가 있었지만,
여성편력 또한 그의 생애에 걸쳐 이어졌다.
그는 80여점의 여인들,친구들,시인들의 초상화를 남겼다.

피카소의 여인들은 대부분 불행하게 일생을 마감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피카소가 여인들의 영혼을 양식삼아
작업한 벰파이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인들은 피카소의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아 있다.





피카소는 파리 초기시절 몽마르트 언덕에 사는 친구 막스자콥의 방에 끼어살면서
막스가 일하러 나가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했다.
막스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세기말의 영향으로 피카 소는 이 시기에
페시미즘적이고 고뇌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의 그림의 주조가 짙은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청색시대이다





어려운 시기, 피카소는 마들렌느를 만난다.
몽마르트에서 캬바레를 운영하며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던 예술애호가의 딸이다.

이 초상화는 청색시대에서 분홍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피카소가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음산한 분위기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해 피카소가 고양이를 안고
어느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이 페르낭드 올리비에 집이었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인상을 "그는 작고 까맣고 후줄근했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정열로 가득차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두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피카소는 페르낭드의 사랑과 함께
우울한 청색시대를 이별하고 분홍의 시대로 넘어간다 .
1905년의 마들렌느를 그렸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과 색채로
스페인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드러나고 있다.








피카소가 세번째 여자 올가를 만난 것은 장콕토 때문이었다.
1917년 장콕토는 에릭 사티가 음악을 하고
디아길레프가 무대화하려는 발레의상을 부탁하기 위해 피카소를 찾았다.

피카소는 완강히 이를 거부 하다가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응하고 만다.
디아길레프는 피카소에게 그녀는 유뷰녀이니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둘은 이듬해에 정식 결혼을 한다.
올가는 피카소에게 자신을 그리려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계기가 된다.
올가의 초상은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고전주의 미학에 충실하고 있다.








피카소는 1927년 올가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라파예트 백화 점앞에서 희랍풍의 금발의 미녀 마리테레즈를 만난다.

당시 17세도 안된 그녀를 붙들고 46세의 피카소는 유혹한다.
"나는 피카소라는 사람인데 우리 함께 대단한 일을 해보자"
지금까지 나온 그녀의 초상화는 10작품 이상이 된다.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미적 실험을 통해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는
조각난 반짝이는 유리 영혼처럼 얼굴의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의 초상화들을 통해 머리 속에서 그려보면
사진보다 명료하게 영상이 떠오른다








피카소는 마리테레즈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셍 제르멩 거리 카 페에서
브르통, 엘류아르 등 초현실주의자들과 잡담을 하다가
도라라는 지적이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만난다.

도라를 모델로한 '우는 여자'는 피카소의 걸작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도라는 의문의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마리토레즈, 도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던 62세의 피카소는
1943년 어느날 식당에서 21살의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나 찻눈에 반한다.

아래의 사진은 1952년 지중해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피카소와 그 녀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이다








1954년 도라와 프랑수와즈가 피카소를 떠나고 58년 마리테레즈마저 떠난다.
그러나 피카소는 곧바로 자켈린이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
92세로 1973년 생을 마감한다.



피카소가 그린 어린이들


피카소의 작품 속에는 여러 감정의 순간이 복합된 다각적인 인물이 있다.
슬픔과 기쁨, 놀라움과 유쾌함 등이 마치 하나의 인물이
전 인생을 통해 경험했을 모든 희노애락이 겹겹의 붓 질로 완성된 듯하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이 있고 인생이 있다.
동그란 얼굴, 작은 어깨의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그의 그러한 특성 은 나타난다.

천진함과 동시에 기괴한 모습속에 불특정한 시간이 있다.
지금 앉아 있는 이 아이의 모습은 이미 성장한 사람의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 같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굴절과 변형된 작품 세계 속에서도
아이들의 순 수함과 맑은 영혼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프랑스와즈 지로는 이 초상화가 티벳의 승려를 닮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분명히 표정에서 금욕적이며, 엄격함을 보여 주는 초상화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가 누구의 초상이라는 것보다는 그 당시의 피카소의 흑인 조각연구에 연유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1906년 봄, 피카소는 이 작품을 그리다가는 지워 버리고,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그녀를 닮겠지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비로 이 초상화의 모델은 아메리카의 여류 작가 스타인이었다. 구도나 표현의 박력에서는 피카소의 초상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나, 과연 스타인 자신이 만족했느냐에 관해서는 전하는 바 없다.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직접적으로 힌트를 준 것은 이 벨리아 조각과 흑인 조각이라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오른 쪽 여인의 얼굴 습작이며 다분히 흑인 조각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가면을 쓴 여인으로서 가면 뒤 쪽의 목 처리로 보아서 가면에 숨겨진 머리는 가면보다, 훨씬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왜 <아비뇽 의 튼±?gt;의 오른쪽 두 여인의 코를 그렇게 과장해서 그렸으며, 또 삐뚤게 했을까. 피카소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의 삐뚤어진 코를 보고 그들의 코는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피카소 Picasso, Pablo Ruizy(1881-1973)
마르지 않는 조형(造形)의 샘
 

 
 
 
 
 
 
 
 
 
 
 
 
 
 
 
 
 
 
 
우리들은 어떤 물체를 한눈에 모든 각도에서 볼 수는 없으나, 큐비즘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형태들을 상호 침투하면서 공간을 전개하며, 정지하지 않고 조용히 호흡하는 것은 분석적 큐비즘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합적 큐비즘 시대에 들어서면 화면은 또다시 조용해진다. 다시 평면적인 데로 복귀하는 것이다. 색채의 수도 많아지며, 물론 그 색채란 화려하지 않고 친숙하며 소박한 분위기로 감싸여 진다. 시인 폴 엘뤼아르는 큐비즘에 있어서 "색이란 공간에서 낳아진다기보다는 '색' 그 자체가 공간인 것이다."라고 했다. 분석적 큐비즘 다음에 제작된 비교적 차분한 작품이다

 
 
다음검색
댓글
  • 첫댓글 "나는 찾지 않는다. 다만 발견할 뿐이다."라고 말하던 피카소는, 어떤 대상을 한 위치에서 고정된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방향에서만 부분적으로 진실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화가는 스스로 보이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이면의 아름다움까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이 매력적인 이유는, 매우 지적이며 논리적이기때문. 대상을 해체하고 분석하면서도 한편 놓치지 않는 대상의 서정성과 부드러움...<한젬마>/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하고 갑니다.

  • 09.03.29 00:10

    좋은 작품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