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인 최보식 언론인이 2. 15일 올린 글입니다. 태 영호와 같은 용기와 양심의 100분의 1만이라도 가진 정치인,학자,언론인이 몇명이나 될까?
우리 사회 ‘지성(知性)의 위기’를 또 보고 있다.
태영호 의원이 ‘제주 4·3사건 김일성 지시설’을 언급한 뒤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집단 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태영호는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다”며 “4.3사건 주동자인 김달삼, 고진희 등은 북한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미화한 북한 드라마를 유튜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아직도 4.3사건 주동자들은 추앙하고 영웅 대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나온 것은 얘상된 반응이다. 태영호가 양심에 의해 ‘자기가 북한에서 배웠던 4.3사건의 진실은 이렇다’고 언급한 게 왜 윤리위 제소 사안이 되는가.
당시 사료를 보면 ‘4.3사건의 김일성 지령설’은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이념이나 주관적 감정에 의해 거부할 수는 있지만). 여기에 태영호는 북한에서 보고 배웠던 내용을 제시해 ‘4.3 사건의 실체’를 확인해준 것이었다. 이런 태영호가 4.3사건을 조작 왜곡했다고 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괴이한 장면은 이런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는 민주당에 대해 국민의힘이 모두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여당 당대표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는 “막말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하람은 제주 4.3사건이 무엇인지 책 한줄이라도 읽고 그러는지 의심스럽다. 젊은 사람은 지적으로 무지할 수는 있지만 대신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안마다 곧잘 끼어드는 진중권 교수도 3.1운동 운운하며 “망언”이라고 했다. 소위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
지금 같은 뭇매 분위기라면 국내 정치인들이나 사회인사들은 얼른 ‘꼬리’를 내리고 살길을 찾는다. 하지만 태영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정치인의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당 최고위원에 출마한 그는 14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저보고 사과하라고 한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김일성 손자 김정은인데, 김정은한테는 입 한번 뻥긋 못하고 저보고 사과하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북한에서 와서 잘 안다"며 "종북 좌파에 의해 잘못 쓰여진 이 현대사를 제가 바로잡겠다. 왜곡·편향된 현대사를 바로잡아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리는데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태영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가 '제주 4·3 사건은 북한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고 주장하자 14일 민주당은 나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어불성설이다.
오늘 아침 언론 보도를 보니 어떤 분은 ‘제주 4·3사건을 김일성이?’ ‘3.1 운동도 김일성이 했다고 주장할 거냐’는 식으로 나의 주장을 호도했다.
우리 정부 진상보고서(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1947년 3·1절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해 6명 사망, 8명 중상을 입힌 사건이 4·3 사건을 촉발했다고 돼있다. 보고서 어디에도 '김일성 지시로 4·3 사건이 촉발됐다'는 내용은 없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적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다"면서도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의 이 부분을 보면 ’무장 폭동‘이라는 단어가 없고, 마치 그 무슨 ’민중 인권 활동‘처럼 읽혀진다.
김대중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들의 ’무장 폭동‘이라고 했고, 노무현 정부 때 진상 조사에서도 ’남로당 제주도당의 폭동‘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주도당이 왜 무장폭동을 일으켰느냐‘이고, 결국 제주 4.3사건의 진실규명에서 가장 먼저 해명해야 할 문제는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느냐‘이다.
당시 박헌영 등 남로당 지도자들은 미 군정의 체포를 피해 평양으로 들어간 상태이고, 소련 공산당의 지시로 남로당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은 김일성의 평양 중앙으로 이관된 상태였다.
김일성은 남북총선거와 5.10 단독선거 반대를 당 결정으로 채택하고 평양 라디오 방송은 매일 거국적인 투쟁에 나서라고 선동했다. 따라서 남로당 중앙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의 결정으로 일어났다. 다음으로 공산당의 운영방식을 보아도 김일성의 지시는 명백하다.
공산당은 ’중앙당 유일관리제‘로 운영된다. 유일관리제란 중앙당 결정을 거부해도 처벌받고 중앙당이 결정하지 않은 문제를 자의대로 결정해도 처벌받는 강철 같은 당 운영 방식이다.
당시 제주도당의 일부 지도자들이 ’무장폭동‘을 주장했다고 해도, 후에 김일성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면 즉시 중단하고 배를 타고 북으로 도주했어야 했다.
무고한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 뻔한 무장폭동을 평양 중앙의 지시나 허가 없이 도당의 결정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은 공산당의 작동 원리에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4.3사건에 대한 김일성의 평가이다.
4.3사건은 당시 평양 중앙에서 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던 때에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박헌영은 스탈린에게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저항은 자기가 지휘하고 있는 것이지 김일성이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당 중앙의 지휘권을 자기에게 넘겨달라는 비밀편지를 계속 보냈다.
문제는 스탈린이 박헌영이 보낸 비밀편지를 모두 김일성에게 다 알려주었다. 이렇게 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의 갈등은 6.25 전부터 시작되었고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 지도자들을 숙청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남로당의 무장투쟁에 대해서 북한 노동당 역사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제주 4.3사건만은 유별나다.
남로당의 무장폭동을 잘 다루어주지 않는 김일성이지만 다부작 드라마 ‘한나의 메아리’를 만들어 김씨 일가에 대한 충실성 교양에까지 이용했다.
4.3사건은 남로당의 무장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현대사의 비극이다.
지금은 좌우이념 무력 충돌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분들의 넋을 기리고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때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그러자면 ‘역사적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부인하고 오직 자기만의 주장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극우 색깔론’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지성적인 고찰이 아니다. 역사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덮어 버릴 수 없다.>
진실은 집단의 머릿수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