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30.水. 맑음
오늘의 이름은 3월26일 土요일.
찜질방 연가戀歌.
상호가 불한증막·인삼·사우나·찜질방이라면 이 업체에서 무슨 서비스를 하는 곳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불한증막도 있고, 인삼온천욕도 있고, 핀란드식 사우나도 있는 찜질방이라는 말인 듯한데 좀 아쉽게도 요즘 유행하고 있는 황토방이나 맥반석 방은 없었다. 찜질에서 ‘찜’ 이란 몸을 온천 혹은 뜨거운 모래와 물에 담가 땀을 흘려 병을 고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단순한 목욕시설이 아니라 기존의 공중목욕탕에 온천, 한증막, 사우나, 영화관, PC방, 식당 등의 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복합레저공간을 뜻하는 찜질방은 IMF 이후 2,000년경부터 활성하기 시작한 사업의 한 종류라고 한다. 우리 일행들이 들어간 곳도 그런 찜질방 업체 중의 하나였다. 다른 분들이야 깜깜한 밤중에 내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왔으니 어디가 어딘 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곳에 몇 차례 와본 적이 있어서 내부구조나 주차장 입구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는 한데 찜질방을 주간이나 저녁에만 사용해보았을 뿐 야간에 잠을 자본 적은 없으니 심야의 찜질방 풍경風景이 다소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찜질방은 공용共用이지만 욕탕과 수면실은 남녀男女가 층수가 달라 이곳에서 제공하는 찜질복장을 하고나서야 찜질방에서 일행들과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 우리나라에서는 온천이든 찜질방이든 벌거벗은 남녀가 함께 서로 바라보이는 장소를 사용하는 법이 없지만 1,987년도인가 일본 규슈九州에 있는 가고시마현鹿兒島縣의 기리시마霧島온천장에서 화들짝 놀란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온천장이라 그 규모도 엄청나게 커서 성분이 각각 다른 크고 작은 온천탕도 있고 검은 모래찜질방도 있어서 아무 곳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온천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하얀 증기가 공간에 자욱하게 끼어있어서 바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장소들도 많았다. 이리저리 구경삼아 다니다보니 일행들과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혼자 온천욕을 즐기다가 너무 덮다싶어서 바람기가 있는 곳으로 슬슬 옮겨가보았다. 그곳 증기 자욱한 온천탕 가장자리에 누워 더워진 몸을 잠시 식히고 있는데 미세한 바람이 들어오는 쪽에 통로나 복도가 있는지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자국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발자국소리에 정신을 차렸는데 아무래도 그 목소리가 여자들인 듯했다. 그래서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공중에 가득하던 하얀 증기들이 어디선가 밀려오는 바람에 거짓말처럼 말짱하게 사라져버렸다. 마침 그때 통로를 지나가던 천의天衣만 걸친 두 명의 여인女人들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는데, 미소와 함께 여유 있게 눈인사를 해오는 그녀들에 비해 나는 펄쩍뛸 만큼 당황해버렸다.
은은한 안개속의 춘향이 같고 선녀 같던 그녀들이 산뜻하게 내 시선을 비켜 지나간 뒤에야 온천탕으로 일단 들어가 정신을 차린 다음 주변 상황을 이모저모 확인해보았더니 대충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온천탕 옆으로 주욱 세워져있는 갈색 대나무 울타리가 아마도 남탕과 여탕의 경계인 모양인데, 이 대나무 울타리가 중간 중간 터져있어서 울타리 너머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잘 보이겠지만 평소에는 하얀 증기가 커튼노릇을 해주는 바람에 그럭저럭 보호막이 되어주었던 같았다. 그렇다면 그 여인들의 여유餘裕는 이런 상황에 자주 접해보았다는 이야기이고, 내가 당황唐慌했다는 것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는 차이差異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뭐가 뭔지 몰랐을 때야 선선한 바람이 감도는 대나무 울타리 옆 온천탕에서 혼자 풍덩거리면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잠도 잘 수 있었으나 안팎의 사정을 알고 난 뒤에는 그곳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많이 아쉬운 감이 있었으나 보다 안전한 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S자형 유황온천탕에서 풍덩거리며 또 놀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증기 울창한 대나무 울타리 옆 온천탕 부근을 얼씬거려 보았으나 들뜬 호기심과 더불어 괜한 겸연쩍은 마음과 어설픈 도덕심 발동에 발길을 돌려 어둡고 긴 방으로 들어가 정력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까만 모래찜질을 마구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아니고 남자는 푸른 옷, 여자는 분홍 색깔의 찜질복이 참 여러 가지를 시사示唆해주고 있었다. 홍사紅絲 바탕에 청사靑絲로 단을 댄 청사초롱이나 청실홍실의 전설이나 일반적으로 청靑은 남자를 가리키고 홍紅은 여자를 가리키는데, 그렇다고 해서 청코너에는 남자선수가 서고 홍코너에는 여자선수가 서있는 복싱경기장이란 없다. 남자들의 욕탕은 지하3층에 있어서 여기에서 몸을 씻은 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한 층을 올라가면 남녀공용인 찜질방이 나왔다. 지하2층의 넓은 휴게실 안쪽으로 한 단 낮게 찜질방이 있었는데, 맞은편에는 에스키모의 이글루를 닮은 불한증막이 있고, 왼편으로는 59도의 순한 찜질방, 69도의 강한 찜질방, 그리고 영하5도의 아이스방이 차례대로 있었다. 강한 찜질방이 69도라면 불한증막은 아마 90도는 될 만한 독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불한증막에 들어가 숨을 쉬면 코를 통해 뜨거운 열기가 기도氣道를 들락거리는 바람에 낯선 속내 통증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약간 걸려야했다. 바깥 날씨가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에 찜질방에 들어가는 것과 3월도 하순인 봄에 찜질방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은 역시 느낌이 달랐다. 순한 찜질방문을 열었는데도 훅~ 하는 열기가 방안에서 거칠게 밀려나왔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순한 찜질방이라는 기운이 몸에 부드럽게 전해져왔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방송을 듣고 있다 보면 한 시간 가량은 앉아있을 만한데도 우리 일행들은 뜨끈한 휴게실에 앉아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도 서너 차례 찜질방을 들락거리다가 나중에는 일행들과 모여앉아 수더분한 이야기꽃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요일 저녁인데도 평일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밤10시가 지나자 휴게실에 매트가 깔려있거나 잠을 잘만한 곳에는 거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둘러앉아 있었다. 시간이 자정에 가까이 다가오자 찜질이나 두어 번 더 하려고 찜질방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일행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 몸을 씻고 찜질복을 새로 갈아입은 후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3층이나 지하2층보다 한적할 듯한 지하4층 남자수면실로 내려가 보았다.
지하4층 수면실은 1,2층으로 된 나무침대가 놓여있었는데, 마침 문 안쪽의 맨 가장자리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무침대 2층으로 올라가 허리를 숙이고 빈 자리를 찾아 누워있었더니 어디선가 환기장치가 작동하는 기계음이 들려오면서 선선한 기운이 어두운 수면실 안으로 골고루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하4층답지 않게 쾌적한 공기와 알맞은 온도가 오히려 찜질방과 휴게실이 있는 지하2층보다 훨씬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이 쉽고 편안하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 수면실로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새벽1시경이었는데, 새벽3시경까지 이 생각 저 생각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가면서 팔을 뻗으면 금세 닿을 것 같은 부옇게 빛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잠자리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수면실문을 열어 복도의 형광불빛을 됫박으로 쏟아 부으면서 방안으로 들어 다녔다. 살다보니 또 지하4층에서 잠을 자보기는 처음이라 어둠의 깊이랄까 암흑의 무게 같은 것이 잠자리 주위를 떠도는 것 같았다. 내가 1,973년 1월에 서울에 올라와 여의도 순복음아파트 12층에서 처음 잠을 잘 때에도 묘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고향인 K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본정통 입구에 서있는 5층짜리 관광호텔이었는데 그곳에도 단 두 번밖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순복음아파트 12층은 거의 구름에 닿을 듯한 높이였던 것이다. 그 아파트의 주인이신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님께서 당시 숭실대학교 철학교수로 계셨는데, 철학교수님이 구워준 불고기를 저녁으로 먹고, 철학교수님이 타준 커피를 마시고, 철학교수님과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총총했다. 그래서였든지 철학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우호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져서 그 뒤로는 철학을 보는 족족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갔더니 희끗한 눈 사이로 벌건 흙이 여기저기 파헤쳐져있었고, 요란한 중장비 소리와 함께 거대한 순복음교회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날 밤에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자정을 훨씬 넘겨버렸지만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혼자 누워있을 적에도 뭔가 몸이 허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우주적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 벽에 걸린 채 붉게 점멸하는 전자시계의 3시10분까지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이름도 잊어먹은 고등학교 시절 서로 친했던 친구들과 여행인지 순례인지 풍광風光이 매우 신비로운 어딘가를 무척 바삐 돌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전자시계는 새벽5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삼십분 가량을 그렇게 가만히 드러누워 있으면서 내가 찜질방 지하4층의 수면실이 아닌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고 있는 잠수함을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이 층층 쌓여있는 심해深海의,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잠수함潛水艦의, 깊고 무거운 암흑暗黑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구축함으로부터의 도피일까, 순양함을 공격하기 위한 노림일까, 은신隱身을 위한 하강下降인지 도발挑發을 위한 상승上昇인지 어떻든 간에 길고 긴 기다림일까?
(- 찜질방 연가戀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