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위그노 학살부터 파리 올림픽까지
최광희 목사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세느 강변에 길게 놓인 식탁, 화려한 의상의 드래그 퀸(drag queen)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전 세계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주최 측은 그것이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를 표현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그 장면은 누가 봐도 최후의 만찬을 희화화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처럼 기독교를 조롱하는 프랑스를 보면서 우리는 16세기 위그노의 피로 물든 역사를 떠올린다.
16세기 유럽에 종교개혁의 불꽃이 번질 때 프랑스에도 개혁 신앙을 따르는 위그노가 등장했다. 프랑스어 위그노(Huguenot)는 독일어 아이트게노센(Eidgenossen, 맹세한 동지)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개신교인들을 경멸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아이그노’를 지나 ‘위그노’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유력한 설명이다.
프랑스 왕실과 가톨릭 교회는 개혁파들을 반역자로 간주하였는데 그 발단은 1534년 이른바 전단 사건(Affaire des Placards)이었다. 개혁파는 가톨릭 미사를 비판하는 전단을 파리와 여러 도시에 붙였고, 심지어 프랑수아 1세의 침실 문에도 붙었다. 이 일로 왕은 개혁파를 향한 대대적 탄압에 나섰고, 이 사건으로 개혁파 지식인들과 함께 장 깔뱅(Jean Calvin) 역시 망명을 떠나야 했다.
1562년 프랑스는 바시 학살로 가톨릭-위그노 간 전면전으로 비화했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이어졌다. 프랑스가 개신교인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드러낸 사건은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이다. 파리에서는 위그노 지도자 콜리니 제독을 포함한 수천 명이 살해되었고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추산이 전해진다. 위그노를 무참히 학살한 이 사건으로 프랑스는 복음적 개혁과 화해의 길을 영원히 저버리게 되었다.
끝없는 내전을 수습하기 위해, 위그노 출신으로 가톨릭으로 전향한 앙리 4세는 1598년 낭트 칙령을 발표했다. 이는 위그노에게 제한적이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예배와 시민권을 허용한 획기적 조치였다. 그러나 이 열린 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 위그노 권리를 단계적으로 박탈했고 이른바 드라곤나데(dragonnades) 정책으로 개종을 강요하였다. 마침내 1685년 퐁텐블로 칙령으로 낭트 칙령이 공식 폐지되면서 프랑스 개신교는 지하로 숨어들거나 국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그토록 격렬하게 개신교를 억누른 데는 가톨릭 일체성을 통해 왕권 강화와 국가 통합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으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위그노의 축출 뒤 그 공백을 채운 것은 인간 이성의 자율을 강조한 계몽주의, 그리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혁명은 자유·평등·박애를 외쳤지만, 결과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교회를 추방하고 급진적 세속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결국 1905년에는 라이시테(Laïcité) 정책으로 공교육에서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1968년 5월에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Il est interdit d'interdire)라는 구호를 외치며 모든 권위와 전통, 도덕적 제도를 해체하는 급진적 문화 혁명이 터졌다. 이때 터져 나온 구호는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성(性) 윤리까지 겨냥했다. 혼전 섹스, 동거, 동성애, 낙태, 가족 해체, 성적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광범위한 재편이 서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제 다시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으로 돌아가 보자. 최후의 만찬을 희화화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한 퍼포먼스의 문제점은 프랑스 공적 문화가 기독교 상징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기독교를 여러 문화적 기호 중 하나로 상대화하고 젠더 다양성의 무대 장치로 재맥락화하는 태도는 바로 라이시테와 68혁명 이후 누적된 문화적 지형을 반영한다.
이상과 같은 프랑스의 역사는 우리에게 심각한 경고장이 된다. 대한민국이 성혁명 이데올로기와 급진 세속주의 앞에 서 있는 지금 프랑스는 여러 가지 교훈을 제공한다. 우선, 신앙 탄압은 결국 국가 자산의 유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위그노의 해외 유출이 그 예다. 또한, 정교분리의 이름으로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지우면 악한 이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혁명-라이시테-성혁명이 그 공백을 메웠다. 그리고 도덕 공백은 성(性) 해방 이데올로기가 채웠고 가족 해체 담론으로 나아갔다.
프랑스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무엇을 근본적 권위로 삼을 것인가? 신앙을 변두리로 몰아내면, 결국 인간의 쾌락과 권력이 그 자리를 점령한다. 성혁명 사상은 인간 욕망을 자기 정당화의 기준으로 삼고, 창조 질서를 해체하며, 죄 개념을 심리화하거나 정치화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 아래 설 때 교회는 죄를 죄로, 은혜를 은혜로 말할 수 있고, 회개와 복음, 거룩과 자비를 함께 선포할 수 있다. 국가 역시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 윤리를 지탱하는 도덕 자본을 공급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생명으로 삼는 유기적 완전 축자영감설을 붙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