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26:37~43)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마지막 사명은 십자가 형벌입니다.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은 바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자기 백성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죄악에 빠진 자기 백성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므로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그 형벌을 대신 받아야 한다니 이 얼마나 슬프고 고민이 되었을까요?
마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우리들도 이 세상의 일로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 된 적이 한두 번씩은 다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정죄하고 화를 내면서 그것을 풀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단 하나뿐인 외아들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징계받아 사망에 앉아 있는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형벌을 대신 받아야 하는 이 막중한 사명 앞에 고민이 되고 괴롭고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을 정도로 고민되고 슬퍼할 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며 풀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죽을 지경이 된 고민이 풀리고 슬픈 일이 기쁨으로 변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자신을 돌아보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겨 고민되고 슬퍼하사 죽을 지경이 되었어도 굳건히 이 시험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내 뜻은 이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에 나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존재 가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만나면 원수로 여기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상대를 꺾어 누르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발광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뜻과 욕심대로 되게 할까 라며 고민하고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섬김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므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사람과 멸시 천대받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각색 병든 사람들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마23: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신을 높이려 하기 때문에 고민이 오고 슬픔이 옵니다.
막1:32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눅4: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예수님은 천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자기에게 오면 그들을 일일이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고민으로 슬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므로 마음의 답답함을 풀었습니다.
마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문제가 생겨 고민을 만들고 슬픈 일을 만날 때마다 기도로 푸셨습니다.
눅9: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하늘을 우러러 축사 감사하며 기도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자신의 뜻 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너무 소중하고 중요하기에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내 뜻이 서면 고민이 되고 괴롭고 슬픔이 밀려오지만 내 뜻을 포기하면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 뜻을 행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기도는 나의 뜻을 먼저 버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믿음으로 고민을 풀었습니다.
[마16: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세밀히 분석해 보면 대제사장은 당시 교회의 최고 권력자가 되고 장로는 교회의 대표자며 서기관은 행정의 책임자들인데 교회의 핵심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나는 부활로 살아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어도 산다“ 라는 믿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절대적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저주 앞에 고민하고 슬퍼했으나 결국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물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기고 사망을 넘어서게 하고 미혹하는 귀신과 마귀와 사탄은 이기게 합니다.
[요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11: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바로 이 말씀이 예수님의 존재 가치이며 절대적 권능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가 배신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버리고 도망하고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물리치며 은혜를 받은 사람들까지 돌을 들며 배신해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인 하나님이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마17: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작은 믿음만 있으면 죽을 지경에 이르는 환난이 있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절대 믿음이 될 것입니다. 아멘
https://youtu.be/nBM0zOIz4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