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에 황소 숭배 신앙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본다.
기원전 2000년 대의 에게 문명
여기서는 크레타 문명, 즉 크노소스 발굴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올립니다.
고대의 역사는 문자 기록이 없으므로,, 고고학적 자료로 역사 읽기를 한다.
이때는 청동기 시대이다. 그러나 4만~2만 년 전에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 수렵-채취 생활을 하였으리라고 한다.
6000년 쯤 전에 새로운 이주민이 그리스로 들어왔다. 발굴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이들이 터키(아나톨리아)에서 발굴한 유물-유적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터카 쪽에서 들어왔으리라고 한다. 이들은 흙과 나뭇가지를 섞어서 집을 지었다. 이들을 크레타 문명의 주인이라고 본다.
이때부터 불에 구운 토기를 사용하였다.(토기 사용은 신석기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이주해온 이들은 여신을 모셨다. 즉 지모신앙을 가졌다. 여신의 조각상이 많이 발굴된다. 여신들의 조각상은 가슴, 허벅지, 궁둥이를 과장하여 표현했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들이다. 여신을 모시고 주술적인 기원을 하였으리라고 본다. 이런 것은 고대 사회의 공통된 현상임으로 크레타만의 틀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자료로 크레타 문명을 일으킨 사람은 신석기인이며, 모신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를 공부하면서, 고대 사회는 여신 신앙이 공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대사회를 모계사회, 모신신앙이라고 말한다. 모신 신앙은 남신에게 자리를 뻬앗긴다. 신앙 대상이 남신에게로 옮겨가자 여신들은 민속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 명맥을 유지하기도 하고, 아예 추방 당하여 악마, 즉 마귀, 마녀가 된 곳이 많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여신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곳도 많다. 주로 민속신앙으로 남아 있다.)
농업도 일반 작물에서 올리브와 포도가 주된 농사가 되었다.(기후 조건이 맞았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였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편리한 도구를 더 많이 만들고, 만드는 만큼 도구를 만들기 위한 더 많은 원료를 필요로 한다. 원료를 구하기 위해서 교역도 일어나고, 심하면 전쟁도 한다. 개인간에도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신분 계층이 생긴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이다.
부와 권력을 차지하여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상류층) 나타나면서 장식품도 나타난다.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더 멋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몸을 장식한다. —우리는 이런 장식품을 예술품이라라면서 공부를 한다.
고고학적 자료를 통하여 그 시대를 훔쳐 봅시다.
(*올린 사진의 설명입니다.)
크노소스는 크레타 문명의 궁궐터이다. 여기를 발굴하여 많은 자료를 얻었다
크노소스 궁궐지이다.
상아로 만들엇다.) --여신상으로 가금이 크다. 손에 뱀을 쥐고 있다.
여기서 뱀은 신적 존재임을 분명하나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른다.
( 이 섬에는 뱀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크레타 문명의 주인은 이주민으로 본다.)
아름다운 여인상이어서 별명이 파리의 여인이라고 한다.
얼굴이 백인의 모습이다.
이런 그림을 통해서 당시의 크레타에 어떤 안종이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3 황소머리이다. 상감도 되어 있고,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한다.
미노스왕 때 미노타우로스라느 황소와 미로의 전설이 만들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