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올린 내 사진 못 내리나요” 사진 한 장이 불러온 논쟁
2023. 7. 10. 18:51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지난 4일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가족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저커버그는 아내 프리실라 챈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그중 첫째 딸과 둘째 딸의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가려서다. 그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건 2012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지 11년 만이다.
메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한다. 저커버그가 사용자의 정보를 온라인에 공유할 것을 유도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놓고 “정작 본인은 가족들 얼굴을 가린 것이 이율배반”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CNN은 “자녀 사진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데 신중을 기하는 유명인들의 최신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선 ‘셰어런팅(자녀 공개)’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셰어런팅은 ‘공유(share)’와 ‘부모(parents)’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성한 말로, 부모가 자녀의 양육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2021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만 11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진행했다. 그 결과 86.1%의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자녀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것에 대해 ‘자녀와 얘기해 본 적 있다’고 응답한 부모는 44.6%에 불과했다. 과반수가 자녀 동의 없이 사진을 올리는 셈이다.
과거에 셰어런팅이 하나의 유행처럼 받아들여졌다면, 이젠 셰어런팅의 폐해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자녀 동의 없이 올린 사진이 아동의 자기결정권과 초상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발가벗은 모습, 용변 보는 모습 등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이들의 사진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무심코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아이의 이름, 성별, 나이, 주소 등이 공개될 수 있어 잠재적 신원 도용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하면서 어릴 때 사진으로 성인 모습까지 유추해 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국 기업 바클레이즈(Barclays PLC)는 “2030년에는 셰어런팅으로 인해 최대 700만건의 신원 도용이 발생하고, 8억달러 이상의 온라인 사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해외에선 국가 차원에서 셰어런팅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법(GDPR) 제17조를 통해 ‘잊힐 권리 및 삭제권’을 명시,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정보 주체가 자신과 관련된 개인정보 삭제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자녀 동의 없이 사진을 올렸을 때 최대 4만5000유로(약 6440만원)의 벌금이나 1년 징역형에 처한다.
국내에서도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 제도화 논의를 시작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4년까지 부모나 친구 등 제3자가 허락 없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지울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개인정보위는 지난 6월부터 직접 셰어런팅 교육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자녀가 있는 학부모와 지도교사 1000여명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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