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5:16-26)
2023.1.1 신년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듣지 못했던 왕(王)이 급사를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것은 속칭 “빌라왕”이라고 불리던 김모씨(42)의 죽음이다. 그가 소유한 빌라 숫자는 무려 1139채나 된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김씨 외에도 또 다른 빌라왕들이 여럿 있고, 이들 뒤에 숨어 있는 하나의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풍자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사람이 평생 돈만 쫒아가다가 벼랑 끝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많이 있다.
이처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풍자한 그림이 있다(좌측).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사람이 평생 돈만 쫒아가다가 인생의 벼랑 끝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너무도 많다.
몇 년 전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7조원 이상의 재산으로 한때 중국 부호 148위까지 올랐던 한룽그룹 회장 ‘류한(劉漢, 52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살인과 협박, 갈취 등 마피아식 경영으로 돈을 모으다가, 결국에는 8명을 살인한 혐의 등으로 사형수가 되었다. 2016년 2월 어느 날 그는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오열했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며 살고 싶습니다. 내 야망 인생의 모든 것이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세월의 흐름이, 모든 것이 잠깐인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았을꼬”
이들은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한 번인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인생은 항상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앞세워야 하고, 내 손에 얼마나 많은 것을 쥐었느냐‘ 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제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원초적이면서 명확하고 분명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다 같이 오늘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따라 행하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페리파테이테(περιπατειτε)’이다. 이 단어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서. ‘~과 함께 돌아다니다, ~과 함께 거닐다, 함께 걷다, 함께 행하다‘라는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성령과 함께 돌아다녀라’,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는 의미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충만이며, 성결(聖潔)한 삶이다. 여주동행(與主同行, 주와 함께 걸어감)이라는 말이 이 말씀의 의미와 유사하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신년도 우리교회 표어를 정했다. 하나님이 자녀들이 따르면 안 되는 현저한 육체의 일들에 대해서 추후에 좀 더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다(갈5:19-21).
그렇다면 왜 성도들이 이처럼 성령을 따라 행해야할까? 그 이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강조했다.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하고,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면 안 된다.
이처럼 성령을 따르는 삶을 힘쓰면 나(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성령의 열매가 맺혀진다(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여기서 쓰인 표현을 자세히 눈여겨보라. “나의 열매”가 아니고, “성령의 열매”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들이 성령을 따라 행하기를 힘쓰면, 성령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지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증인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의 일은 내가 용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성경이 강조하는 능력 있는 삶의 비결이고, 부흥의 길이며, 행복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올 한 해 동안 그리고 남은 모든 시간동안 이와 같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성령님만 따라 행하기를 힘쓰자.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성령님의 지배와 인도하심에 적극적으로 나를 복종시키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1등이 되자.
영국 서쪽에 아일랜드(Ireland)라는 작은 섬나라가 있다. 아일랜드의 주류를 이루는 종족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 북부 유럽에서 건너온 켈트족(Celts)이다. 과거 그들의 성품은 매우 거칠고 호전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영국이나 유럽의 해안에서 약탈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기도 했었다.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라는 책에 의하면, 야만의 땅 아일랜드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 땅은 찬송이 넘치는 믿음의 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그 땅이 변화되는 데는 5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패트릭(Patrick)이라는 성령충만한 전도자 때문이었다. 지금도 패트릭은 성자라는 호칭으로 아일랜드에서는 교파를 초월해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패트릭은 본래 영국인인데, 그가 15살 때(서기 300년대 말) 켈트족에게 끌려서 아일랜드에 왔다. 그 후 소년 패트릭은 북아일랜드 슬레미쉬산(Slemish Mountain) 근처 마을에서 6년 동안 양치기를 하면서 노예생활을 했다.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패트릭은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고향땅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다가 21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은혜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청년이 된 패트릭은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어느 날 마치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행16장)을 보았던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청년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와서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패트릭은 십대 청소년의 시기를 눈물로 보내야만 했던 원수 같은 그 땅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몇 년간 수도원에 들어가서 철저하게 경건훈련을 하고, 다시 야만의 땅 아일랜드로 복음을 들고 들어갔다. 십대 시절에는 노예로 끌려갔지만, 이제는 복음 전도자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능동적으로 그 땅으로 건너갔다.
패트릭이 아일랜드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때, 그 땅에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많은 신유의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는 일생동안 아일랜드에 300개가 넘는 수도원과 교회를 세웠고, 수천 명의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12만 명에 달하는 켈트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 당시에 패트릭은 동그라미 위에 놓여 있는 십자가를 들고 다녔다. 그것을 보통 “켈트 십자가”라고 부른다. 지금은 켈트 십자가가 백인우월주의 상징처럼 보인다고 해서 운동경기 등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본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패트릭이 전도할 당시에 켈트족들은 주로 뱀신을 믿었다. 그래서 패트릭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 사탄을 이기고 제압하셨다는 의미로 뱀신을 상징하는 동그라미 위에 십자가를 얹었다.
461년 3월 17일, 패트릭은 숨지기 직전에 이렇게 신앙을 주님께 올려 드렸다.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하나님은 내 중심이셨다. 내가 어느 곳에 가든지 영원히 그분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러한 패트릭의 생애와 신앙에 감동을 받은 켈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멜로디에 신앙고백적인 가사를 붙인 찬송을 불렀다. 그 찬송이 바로 “내 맘의 주여 소망이 되소서(찬송가 484장)”이다.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찬송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p90p6dClHnk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들도 패트릭처럼 밤이나 낮이나 잘 때나 깰 때나 늘 주님을 생각하며, 성령님을 따라 행하기를 힘쓰자.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올 한해에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내가 서있는 그곳이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곳이 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