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사 (九鳳山 寒山寺) / 전통사찰
- 전남 여수시 봉산동
1194년(고려 명종 24)에 지눌(知訥)이 창건하였으며, 물이 맑고 산이 좋아 한산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1403년(조선 태종 3)에 시학대사(始學大師)가 중수하였고, 1931년에는 주지 환해(煥海)가 개축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1195년(고려 명종 25)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고 보광사라 하였지만 증명할 자료는 없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 수군이 머물렀던 호국사찰이다.
1750년(조선 영조 26) 주조하여 만든 것으로 보이는 한산모종(寒山暮鐘)이 있다.
모종은 저녁 종소리를 뜻한다. 여수 8경 가운데 제3경이 한산모종이며, 소리가 맑고 아름답다.
1988년~1995년, 종열선사께서 중창 불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산사 안내문 요약)
한자도 같은 한산사가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여러 정보를 얻는다. 올 8월에 한산사 지장시왕도를 전남 유형문화유산을 신청하였다고 한다.
12월 중에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여수 한산사 시왕도는 본사인 구례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구봉산은 높지 않아 여수시민들이 산책하는 곳이다. 이곳 약수도 물맛이 좋다고 한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돌산읍이다.
극락전
대웅전
약사전
육화당
삼성각이다. 독성각, 칠성각, 산신각
용왕각, 육각이다.
대웅전 앞에서 보는 경치가 참 좋다.
은은향, 금목서
여수 연등동 벅수 / 국가민속문화유산
- 전남 여수시 연등동
화정려 뒤편에 <戊申四月二十八日午時立(무신4월28일오시립)>와 <化主□主事□金□昇(화주□주사□김□승)> 음각 글씨가 있다.
어느 해 무신년인지 모르지만 1788년(정조 12)으로 추정한다.
마을주민은 남정중이 하늘을 맡고(天神), 화정려는 땅을 관장(地神).
이는 중국 삼황시대(三皇時代)에 황제가 중(重)과 여(黎)에게 벼슬을 주었다.이름인
남정(南正)에겐 사천(司天)을, 여(黎)에게는 사지(司地)다. 중국 『사략(史略)』의 기록으로 해석했다.
좌수영 동문, 남문, 서문 세 곳에 벅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덕충동, 봉산동, 연등동이며, 연등동과 봉산동에 벅수가 남았다.
(연등동은 문화유산으로 등재, 봉산동 벅수는? 전통사찰 한산사는 봉산동, 석천사는 덕충동에 있다)
벅수는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장승과 같은 뜻이다.
南正重(남정중), 높이 174㎝, 너비 37㎝
火正黎(화정려), 높이 173㎝, 너비 39㎝
석천사(石泉寺) / 전통사찰
- 전남 여수시 덕충동
정유재란이 끝난 3년 뒤인 1601년,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승장 옥형과 자운이 장군의 인품과 충절을 기려 세운 암자다.
지금 충민사 뒤편 큰 바위 아래 샘이 있어 석천사라 이름을 지었다.
충민사 정화사업으로 절의 위치도 바뀌고 일주문도 없어졌다.
(석천사 안내문 내용 정리)
마래산(馬來山) 중턱에 있다. 석천사 옆은 충민사(忠愍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석천사 창건 유래를 두 가지로 든다. 고려 지눌이 세웠다는 것.
석천사 안내문에 있는 유래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대웅전
의승당
석천사와 충민사는 주차장을 같이 쓴다. 금목서 키가 엄청 크다. 나는 이게 비파나무인줄 알았다.
충민사(忠愍祠)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이다.
1601년(선조 34)에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 발의하였다. 왕명을 받은 통제사 이시언(李時彦)이 건립하였다.
아산 현충사(顯忠祠)나 통영 충렬사(忠烈祠)보다 앞서 세워져, 이순신 장군을 모신 최초의 사당이다.
“여수 북쪽 약 5리 마래산(馬來山) 아래에 있다”고 한 기록이 있다. 마래산 아래가 지금 덕충동 산기슭이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을 주향, 의민공 이억기(李億祺)와 좌찬성 안홍국(安弘國)을 좌우로 배향하였다.
우부승지 김상용(金尙容)이 임금에게 청하여 건립 뒤에 사액(賜額)되었다.
1709년(숙종 35)에 충무공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사당 면모를 갖도록 하였고, 1732년(영조 8)에는 이명상이 제사를 계승.
1870년(고종 7)에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충민단(忠愍壇)만을 남기고 철거되었다.
이후 충무공에 대한 제사는 옆에 있는 석천사(石泉寺)에서 행해졌다.
1873년(고종 10)에 이곳 주민들이 고쳐 세웠지만, 1919년에 일제가 부숴버렸다.
1971년부터 여수 유림(儒林)에서 ‘정화 5개년사업’을 펼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78년에 정비가 완료되어 오늘에 이른다.
충무공 이순신
의민이공( 의민공 이억기(李億祺))
충현안공(좌찬성 안홍국(安弘國))
2024년 10월 12일
여수시 유일한 국보인 진남관에 갔다. 2025년까지 보수한다. 2026년 이후에나 볼 수 있겠다.
여수시 전통사찰은 흥국사, 향일암, 은적사, 한산사, 석천사, **사 등 여섯 곳이다.
유형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절은 흥국사뿐이다.
2024년 10월 11일 오후 늦은 시각(오후 5시 40분쯤)에 **사에 들렀다.
종각과 대웅전 등 사진 석 장을 찍고 대웅전 마당에서 종무소 직원(?)을 만났다.
저녁공양을 했냐고 묻기에 아직이라고 답했다.
빵과 떡을 주겠으니 사무실로 가자고 한다. 사양하는 건 염치겠지만 누군가의 선업을 막는 일이라 염치불구하고 따라갔다.
빵과 떡, 아메리카노커피를 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눠고 주지란 중이 들어왔다.
어디서 왔으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프로냐 아마츄어냐...등등을 묻는다. 나느 나를 이야기하였다.
구례 화엄사 본사에서 지시한 사항이다. 사진을 찍으면 절에 보여줘야 한다. 본사에도 보고하여야 한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는 준비가 안 된 절이다. 당신의 카페에도 어디에도 절을 언급하지 마라.
사진도 찍지 말고 **사가 준비가 되면 연락할 터이니 그때 사진을 찍어라.
"이게 무슨 개소리여~!" 내 마음에 외친 말이다.
자격지심일까 의심도 했지만 나는 무척 당황하고 모욕감을 느꼈다. 결국 돈 안 되는 놈이니까 꺼지란 말이다.
절에서 나오면서 구역질이 났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전통사찰을 찾아 다닐 까닭이 있을까?
그렇지만 마음을 추스렸다. 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으니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직원 보살이며 주지는 땡이다"
언제쯤 주지가 바뀔지 모르겠지만 주지가 바뀌면 다시 가야겠다. 보살인 직원(?)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웃음으로 따뜻하게 나그네를 맞이한 이, 따뜻한 마음으로 음식과 음료를 건넨 이가 부처이다.
절에서 나올 때 음료수 한 병과 과일(포도, 사과, 귤)을 한 봉지 챙겨준다. 다니면서 먹으라고. 고맙다.
절에서 일하든 아니든 절에 있는 여자가 모두 보살이 아니다. 이런 사람이 보살이며 부처다. 중보다 낫다.
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친절한 승려와 직원도 여러 명을 만났다. 고마웠던 사람만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