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 불감증의 사회에 대한 경고, 유신론적 무신론
(예레미야 5:1~19)
* 본문요약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유하게 해주시자 그것으로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바쁩니다.
이에 맹수가 먹잇감을 물어뜯듯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찢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그들을 훼파하되 다 진멸시키지는 말고
가지는 모두 잘라버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해도 그들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불이 나무를 태우듯, 그들을 사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방신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강한 이방인을 보내셔서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으며, 죽이고, 포로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34장(새 276) 아버지여 이 죄인을
337장(새 279) 인애하신 구세주여
375장(새 331)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 본문해설
1.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핵(1~2절)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라 돌아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 공의를 행하며(1절) : 미쉬파트
공의(정의)로 번역된 미쉬파트는 ‘공정한 재판, 정당한 판결’을 뜻합니다.
고아나 과부나 이방인처럼 힘없고 약한 자라 하더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권세가라 할지라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재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공정한 재판을 하는 관리나 재판관이나 통치자가 있는가,
또는 그렇게 연약한 자를 존귀한 마음으로 대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자가 있는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 진리를 구하는 자(1절) : 에무나(진리), 메바케쉬(구하는 자)
• 진리로 번역된 ‘에무나’는 ‘견고함, 확고부동함’을 뜻하는 것으로
확고부동하게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뜻하고,
• 구하는 자로 번역된 ‘메바케쉬’는
‘찾다, 노력하다, 시도하다, 구하다’의(강조 능동) 분사형으로
간절히 찾고 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분사형으로 쓰인 것은 찾고 구하는 노력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고자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행하고 진리 안에 굳건히 선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자를 찾고 있으나,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2. 예레미야의 보고(3~6절)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며(교훈받기를 거부하며),
그 얼굴을 바윗돌보다 더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회개하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귀인(자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혹시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부수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숲속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부수고 결박을 끊은지라(5절) :
유다와 예루살렘의 일반 백성들이야 무지한 자들이니
그렇게 죄악에 빠져 산다고 하더라도
율법으로 백성을 다스릴 책임을 가진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은
좀 다를 것이라 여기고 그들에게 시대의 상황을 말했더니,
그들은 더욱 죄를 범하더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황소가 멍에를 꺾고 주인에게 반발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3. 피할 수 없게 된 심판(7~ 11절)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모두 창기의 집으로 몰려가서 음행하였으며,
8) 그들이 살찌고 (정욕이 왕성하여) 두루 다니는 수말과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9)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10)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그것들은 이미 나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이 내게 심히 패역하였느니라.”
-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8절) :
이웃의 아내를 그냥 범하면 간음이 되지만,
가나안 우상의 예배 의식 속에 있는 음란행위인 신전매춘(神殿賣春)에 참여하면
간음이 되지 않으니 각기 이웃의 아내에게 눈짓하여
가나안의 우상 앞으로 함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간음행위입니다.
이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 전역에 퍼졌습니다.
4. 무신론에 빠진 유다 백성들, 불처럼 삼키리라(12~19절)
12)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시지 아니하니(여호와는 아무것도 아니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13) 선지자들은 공연히 지껄이는 바람 같은 것들이라.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러한 일은 그들이나 당할 것이라’하느니라.
14) 그들이 그런 말을 하였으므로 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장작이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너희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말을 하여도 너희가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16) 그들의 전통(화살통)은 열린 무덤이요, 그 사람들은 다 강한 용사라.
17)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어 치우고,
네 양 떼와 소 떼를 그들이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그들이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읍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아니하리라.
19)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하라”
* 묵상 point
1. 하나님의 고발과 탄식
1)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고발과 탄핵 : 한 사람이라도 찾는다면(1~2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을 왕래하여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는 자를 단 한 사람이라도 찾는다면
유다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실상은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장이요, 하나님의 탄핵입니다.
혹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자를 찾더라도 거짓 맹세를 하는 자들뿐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도 지키지 않습니다.
그저 그때를 모면하기 위해 한 거짓 맹세일 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찾는 자 : 공의를 행하고 진리 안에 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는 자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진리를 완벽하게 행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 자신도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을 포함하여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애통해하면서 공의와 진리를 간절히 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 앞에 신실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런 사람 10명이 없어서 유황불로 멸망을 당했는데,
여기는 단 한 사람도 없으니 그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3) 혹시나 싶어 지도층에게 갔더니 그들은 백성들보다 더욱 심하였다(3~5절)
예레미야는 일단 평범한 일반 시민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채찍을 징계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 이런 고집스럽고 완고한 사람들의 얼굴이
반석으로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마도 비천한 천민들이나 평범한 일반 서민들이었기에 그러리라 생각되어
이번엔 세련된 우아함을 가진 사람들은 조금 다를 것이라 여기고
예루살렘의 지도층과 부유층의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가진 이들조차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멍에와 결박을 끊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자나 표범과 같은 맹수에게 찢기듯
하나님의 진노에 찢기기에 마땅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4) 하나님의 고발과 탄식(7~8절)
이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해야 심판을 면하겠느냐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부유하게 하시니
그들은 그것으로 우상숭배에 참여하고,
마치 발정 난 수말같이 욕정을 참지 못하고 창기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이제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묵상 :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➀ 지도층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제적인 타락
모두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싫어하였고,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셔도 징계로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와 결박을 부수고
스스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파괴하였습니다.
자기의 욕망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지도층에서부터 하층민에게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총체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에서는 의인 10명만 찾으면 멸하지 않으리라 하셨는데,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는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는 자 단 한 사람만 찾아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하지 않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의인은 고사하고
지도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길과 법을 아는 자가 없었고,
그 진리의 길을 구하는 자들조차 없었습니다.
➁ 혹시 나는 어떤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혹 나도 세상살이에 바빠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삶을 살펴봅시다.
다른 일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자꾸만 뒤로 밀리면
나도 결국 유다 백성들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십시오.
무엇을 하든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반드시 가지십시오.
2. 피할 수 없게 된 심판
1) 거짓 설교, 거짓 평안(12절)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며 거짓 설교를 합니다.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라는 예레미야의 설교보다
그저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이런 거짓 설교를 더 좋아합니다.
일단 그들은 자기들이 범하는 죄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즐기면서도 복을 받게 해준다니 이 얼마나 좋은 설교입니까?
그렇게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서로 의기투합하여 더욱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2) 지도자들이 예레미야를 공연히 지껄이는 바람 같은 것들이라고 공격함(13절)
예레미야가 지도층을 행하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하자,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대동하여 예레미야의 설교가 바람 같은 것이라며 공격합니다.
예레미야가 헛된 말로 백성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불이 되게 하리라(14~17절)
유다의 지도자들이 예레미야를 포함한 선지자들을 가리켜
공연히 지껄이는 바람 같은 것들이라고 공격하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불처럼 권세가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이 나무를 사르듯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말 그대로
무서운 이방의 군사들이 유다의 모든 백성을 삼킬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는 강력한 이방인이 그들의 모든 곡물과 양 떼와 소 떼,
심지어 그들의 아들과 딸들까지 모두 빼앗고 파괴하고 삼킬 것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자녀들이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어 치우고’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는 ‘추수 곡물과 양식, 양 떼와 소 떼,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딸들도 모두 삼키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4) 모두가 다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하나님께서 사람까지 무차별로 죽이고 삼키는 야만인들을
그들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방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를 진멸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을 남겨 두어서 그들을 포로가 되게 하신 후에,
이방인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5) 심판 후의 처참한 상황(10, 17절)
예레미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후의 모습을 봅니다.
유다 땅이 완전히 황폐하여진 포도원같이 된 모습을 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여호와의 것이 아니니
대적들로 하여금 유다의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멸하지는 말고,
가지만 모두 꺾어 버리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가지들은 이미 여호와의 것이(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10절).
● 묵상 :
그러나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은 조롱하며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니 예레미야가 말하는 칼과 기근의 재앙이
결단코 자신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때의 선지자들인 예레미야나 스바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람처럼 헛된 말이므로 그들이 전하는 말대로는 결단코 되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들이 듣지 않으니 회개의 마지막 기회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3. 도덕 불감증의 사회
➠ 음행을 가벼운 놀이쯤으로 여기는 사회(8절)
유다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에게로 돌아선 후
모두가 음행을 가벼운 놀이 정도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의 신전매춘에 참여하여 집단 음란행위를 하는 것을
등산이나 탁구, 테니스 정도의 놀이로 여기고 공공연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한두 명이 이런 일을 행할 때에는 엄격하게 처벌하였으나,
이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일을 행하니 그들을 벌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일로 상처받는 일조차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묵상 :
최근 우리나라에도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조차 영재교육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힘써서 하면서,
아이의 신앙을 위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자녀가 교회학교에 다니고 있는 분이 있다면
자녀의 교회학교 선생님이 누구신지는 알고 있습니까?
내 자녀의 신앙교육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해본 일이 있습니까?
자녀들을 건강한 영을 가진 아이들로 키웁시다.
이 일을 위해 당신이 먼저 건강한 영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내 자녀의 영을 책임진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4. 담대함과 완악함의 혼동
1) 믿음의 담대함과 완악함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담대하게 갖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집스럽고 완고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고집스럽고 완고한 것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신실한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때때로 자기 고집을 부리면서 굳은 믿음의 표현이라 여기고,
또는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겸손한 행동이라 여깁니다.
2) 완고함과 겸손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에서 구별됩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완고함이고 고집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게 확고부동한 분명한 확신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완고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드러내려 합니다.
● 묵상 : 쓸데없는 고집과 참된 믿음을 바르게 구별하십시오.
내가 지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바른 믿음에 선 것인지 분별할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지혜와 신령한 분별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지 않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 분별력을 잃으면 그다음엔 영적 무감각증이 찾아오고,
그다음엔 도덕적 무감각증에 빠져서 결국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5. 유다 백성들의 무신론
1) 유신론적 무신론 : 교회에는 다니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사는 자들
예레미야의 심판의 선언에 대하여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지 않으니
자신들에게 칼과 기근의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롱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말은
하나님이 정말로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존재론적 무신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은 믿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의 영역에 개입하신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계시더라도 자기들을 심판할 능력이 없으며,
혹 능력이 있더라도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짓는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유신론적 무신론(실제적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없다고 믿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만 할뿐 심판은 내리지 않으신다는 생각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개인 생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틀에서 유다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만 하시지
하나하나 개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알신을 대하듯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복을 구할 때만 기도하고,
세상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복도 주시지만, 잘못에 대하여 심판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만 내리고 개인 삶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바알 같은 허망한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복도 주시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재앙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보호막이 제거되면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막을 제거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제거되면 공동체의 모든 기능이 상실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 보호막을 제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보호막을 제거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보호막이 우리와 우리 가족과 자녀들에게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지게 됩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2. 세상의 흐림에 휩쓸리지 않도록
믿음의 길에 분명히 서게 하옵소서.
3. 담대함과 완악함을 혼동하지 않도록
바른 지혜와 분별력을 주옵소서.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신실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4. 교회에서뿐 아니라 개인 생활에서도
신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5. 주님의 은혜의 보호막 안에 늘 거하게 하옵소서
6. 중보기도 : 신앙의 담대함과 완고함(자기 고집)을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