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정 의 숙
새 학년 새 학기 첫날 첫 시간은 담임시간이다. 아이들과 내가 처음 만나는 시간.
천천히 교실에 들어선다. 까만 눈동자들이 나를 향한다. 서로의 탐색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생각한다.
우리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일까.
올 일 년 동안은 힘들지 않을까.
아이들의 눈은 나를 보고 있고 얼굴 표정은 복잡하다.
나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며 눈을 마주한다.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많은 생각들.
이 아이는 모범생이구나,
이 아이는 말이 많겠군,
이 아이는 사랑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이 아이들이 과연 내 마음을 알아줄까.
일 년 동안 나는 이 아이들과 이 배를 타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이 배를 탄 어느 누구도 항해 도중에 낙오되지 않아야 하고 배가 파손되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이 배는 순항해야만 한다. 그러기에 첫날의 이 만남에서 나는 아이들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러자면 내가 아이들의 관상을 봐야하는 것이다.
관상은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기운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즉 얼굴의 눈썹, 코, 귀, 입, 등의 모양이나 발이나 손의 생김새를 보고 운명과 재수를 판단하며 미래에 있을 수 있는 힘든 일, 어려운 일, 나쁜 일을 미리 예방하고 복을 받도록 하는 점법이다.
신령한 무속인들은 나쁜 운을 좋은 운으로 바꿔주기도 한다지만 나는 신령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기 때문에 다만 관상 속에 숨어있는 그 아이들의 심상을 만나보는 것이다. 관상을 보아서 그 아이를 판단하는 대신 인상을 보아 심상을 짐작하면 그 아이의 성격이나 감정을 알 수 있다. 평소에 자주 짓는 표정이 얼굴에 어떤 상을 만들고 그 얼굴에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를 만나기전에 어떤 시간을 많이 가졌었는지를 조금쯤 알 수게 되는 것이다. 이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힘들었던 시간이 많았는지, 친구들과는 어떤 시간을 지냈는지, 등 그 아이의 얼굴에서 그 아이의 삶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 이게 바로 관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동안 미술치료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미술치료는 미술 활동을 통해서 심리적인 어려움이나 마음의 문제를 표현하고 완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상담기법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할 때 미술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말하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은 감정이나 정서도 그림을 통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 솔직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림을 보면 그 아이의 현재 심상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관상과 미술치료는 나타난 형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관상은 신체의 모양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미술치료는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그린 시점에서의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마음의 상태는 시간의 흐름과 경험을 통하여 변하게 되고 사람의 상 또한 일생의 경험을 통하여 변화하게 된다. 관상이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미리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시대가 다르면 사람들이 선호하는 상도 다르며 시대에 따라 좋은 상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관상과 미술치료의 같은 점은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늘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하며 자신을 다듬고 가꾸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해나간다면 좋은 관상을 얻을 수 있겠다. 미술치료 또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힘든 상황을 극복하여 삶을 변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관상이나 미술치료는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의 마음 밭을 가꾸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때, 서로가 가진 개개인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줄 때, 서로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의 삶은 진정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상을 통하여 미술치료를 통하여 내일을 꿈꾸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다.
2014. 11.9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