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다양한 기법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는 씨알이다. 소설은 쇼설이다. 수필은 수박이다.”
- 권대근
I. 로그인
-. 특수한 표현기교 내지는 기법을 요구
-. 언어 곧 존재라는 등식
-. 존재나 사물 자체, 존재나 사물의 창조, 그 매체적 역할
-. 논리의 거부 : 비논리, 비합리, 비사실, 비도덕, 비언어적
II. 클릭
1. 현대시의 기법
랜슴은 시를 세 부류로 나눈다. 형이하학적 시는 사물만 강조하고 그밖의 것을 배제하려고 하는 시고, 관념만 강조하는 시를 플라토닉 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물과 관념 감각과 사상이 통합된 시가 곧 형이상학시가 된다고 하겠다. 이를 구체화하면, 사상만 있는 시도 아닌, 감각적 이미지만 있는 시도 아닌 사상을 감각화한 시가 형이상학시다. 현대시의 기법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현대시가 의식적, 의도적 제작성으로 해석됐던 점에 비하면, 자동기술법은 의식이나 의도의 배제를 통한 자유로운 행방을 통한 순수와 초월의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방식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한번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1) 중층묘사
2) 객관적 상관물
3) 자동기술법
# 발상차원의 단계
-. 시는 보이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감추어진 것, 숨어있는
비의까지 드러내어야 한다.
-. 초보적 단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형상화
-. 창조적 발상차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보는 것으로 발상의 차원을 끌어 올려야 한다.
<실제>
*배경설정 –나무 한 그루
*발상차원의 8단계
첫쩨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써 본다.
둘째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셋째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넷째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다섯째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잇는 생명력을 본다.
여섯째 :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일곱째 :나무를 흔들고 잇는 바람, 그 자체를 본다.
여덯ㅂ째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잇는 세계를 본다.
-. <1단계>보이는 것, <2단계>보이지 않는 것, <3단계>보지 않아서는 안 될 것
첫 번째 단계 –감각적이고 객관적인 포착
수림은/ 해마다 키만큼은 그늘을/ 그물로 드리우고
정적의 밧줄을 풀어/ 정오의 예인을 서두르고 있다./ 수심보다 깊은/ 수해의 그늘 속
매이 찌르라미 울음이/ 걸려들기엔/ 계절의 깊이는 아직 얕다.
그늘에서 그늘로 헤엄치는/ 바람의 등도 적시지 못하는/ 낮은 물소리
먼산/ 뻐꾸기 울음이 잠시/ 목을 축일 뿐이다.
박진환, <그늘의 이미지 II>의 일부
두 번째 단계
나무들이 마주서서 /가위 바위 보/ 햇볕뺏기를 한다.
멍석을 깔아놓고/ 제마다의 모습을 동그라미로/ 그려놓고/ 가위 바위 보/ 햇볕 뺏기를 한다.
구경하던 여치/ 배짱이 사무귀들도 뛰어넘는/ 멀리 뛰기 내기를 한다.
왕매미 찌르라미도/ 도래미파솔 내기를 한다/ 목청껏 노래내기를 한다.
잠시 물러서서 지켜본던
한나절 햇볕이/ 잠시 비켜서며 빙그레 웃는다.
박진환, <그늘 이미지 I>의 전문
세 번째 단계
수림이 향수하는 그늘 밝은/ 그리고 저용히 느린 그늘 밑은/ 지금/ 소중한 의미처럼 계절이 머물고/ 한잎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마음가는 소심한 가슴으로/ 그 계절의 변두릴를 밟는다.
긴 둑길 위로 무겁게 흘러 내리는
론갖 읨미가 가슴에 용해되어 거쳐오는데/한잎 말라버린 영혼으로/ 가랑잎은 지는가.
오래지 않아/ 노을 속에 흐느낄 뜬 구름이/ 떠도는 천심에 가슴을 묻고/ 부끄럼 없이 앉아 낙엽길로 가자.
고정하고 유동하는 계절의 풍속은/ 아득하나 먼 곳을 향수하는 가을인데/ 병든 잎리와 앓는 가슴의 헐벚은 나목과/ 내 변두리는 지금 묘지 같은 공허
이 공허 위에 감겨오는 따스한 호흡은/ 어디서 생명하는 체온의 촉감인가.
붉은 피를 거르며 한점 욕됨이 없이
이웃과 더불어 땅에 묻힐 때까지/ 고운 이름으로 살아가야지.
살아서 향수 하는 그 가을과/ 내 가을의 의미도 찾아야지.
박진환, <가을의 시> 전문
II. 현대시의 성립 원리, 조건, 방법
중층묘사
리처즈의 포괄의 시, 달리의 형이상학시의 방법론적 기축, 지금까지의 시가 사물의 조형성을 드러내기 위한 사물시, 일상적 사상성을 전달하려는 관념시로 대표되어 왔다면, 이 사물과 관념을 결합하여 보다 이상적인 시적 표현을 시도하려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방법 –현대시의 대표적 표현방식
만일 이 강물과 저 평야와 산들이/ 모두 금은 보석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때는 한줌의 흙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은 오늘과 같이 싸웠을 것이다.
만일 이 거리와 저 마을들이/ 모두 화려한 주랑으로 두를 궁전이었다면,/
그제는 한 작은 오막살이를 위하여/ 저녁노을은 더욱 아름답게 저언덕에서 빛났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저 별 위에 깃드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간만한 우리들의 지구도/
거기 서로 진주보다도 더 견고하게 빛났을 것이다.//
가치란 무엇인가?/ 결핍에서 오는 것들인가?//
순수란/ 자기의 처지와 동포의 문제를/ 한줌의 흙을 사랑하듯,//
씨를 뿌리며/ 꽃나무를 가꾸는 마음
김현승의 <순수> 전문
2. 객관적 상관물
엘리엇이 말한 객관적 상관물은 그의 지론에 의하면, 예술형태에 있어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감각적 체험에 있어서 낙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외적이 사실이 주어질 때에는 즉시 정서가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풀이하면 과거의 시가 직접적이고도 유로적인 산물이었다면 현대시에서는 구체적인 사물을 지시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예) 나는 내 생애를 커피 숟갈로 되질해 버렸다. -허송세월을 암시하는 객관적 상관물
그러면 가 보세 자네와 나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에 퍼질 무렵,
밤에 잠못이루는 헐찍한 일박여관과
굴껍질을 내놓은 톱밥깔린 식당에서
중얼거림이 새어나는 골목,
거의 인기척도 없는 거리를 빠져서 가보세.
음흉한 의도에서 우러나오는
진저리나는 시비처럼 내닫는 거리로
압도적인 문제도 자넬 인도할 걸세.
그 무엇이냐고 묻질랑말게.
우리 가서 방문이나 하세.
방안에는 오가는 아낙들이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고.
창유리에 등을 문지르는 노오란 안개
창유리에 주둥이를 문지르는 노오란 연기.
엘리엇의 <J, A 프루플록의 연가> 전문
3. 자동기술법
초현실주의 시의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자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 등 여러 힘의 자동현상과 자유로운 종합을 읨도한다. 곧 의식 하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를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서 의도라든가 수사라든가 심미적 관심 같은 의식권의 통제를 일체 거부한다.
인간의 무의식권엔 자신이 성취하고, 향유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개인적 소망사고가 의식적이고도 현실적 조건이나 여건의 미숙으로 무의식권에 의해 잠재되기 마련이다. 그 대문에 무의식권 밖으로 뛰쳐나와 의식화하고자 한다.(프로이트 해석) 집단적 소망사고가 잠재되어 잇고 부단히 잠재의 세계에서 뛰쳐나가고자 한다.(융의 해석)
의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세계의 발견, 의식에 의해 해석됐거나 오염되지 않는 순수의 획득, 그리고 의도의 배제와 심미적 해석까지도 초월해버린 문자 그대로 초현실을 표방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름도 다갈 무렵 중앙시장을 지나가는 그 여자 손님은
발톱으로 걷고 있다.
하늘엔 절망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 막대한 배암풀을 굴리고 있다.
핸드백 속에는 나의 꿈 그 신의 어버이만이 빨아들였다는
소금 프라스크가 들어 있었다.
담배 피우는 개에게
마비상태가 수증기처럼 퍼져있었다.
거기에 막 시버의 판단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젊은 여인은 그런 시버의 판단으로 흉악하게 보이고 또 눈총을 받는 도리밖에 없었나 보다.
나는 대체 조상 칼리움의 대사 부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부르똥 <해바라기> 전문
III. 로그아웃
현대시의 기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대표적 기법과 연계되거나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중/층/묘/사/의 기법
I. 열며
중층묘사(multiple description)는 한 가지 대상이나 사상에 대한 구체적, 감각적 표현과 추상적 사상적 표현을 교차시켜 서술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 레벨에서 묘사하고 다시 그것을 추상적 레벨에서 관념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할 때 한 가지 대상이나 사상이 이미지와 관념이 교차되어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II. 펼치며
【예문1】
나의 피를 뿌리고
살을 찢던
네 이빨과 네 칼날도
내 마음의 아득한 품 속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잠들고 만다.
마치 진흙 속에 묻히는
납덩이와도 같이
내 작은 손바닥처럼
내 조그만 마음은
이 세상 모든 영광을 가리울 수도 있고
누룩을 넣어 빵과 같이
아, 때로는 향기롭게 스스로 부풀기도 한다.
- 김현승의 <마음의 집>에서
【예문 2】
길가 풀잎 사이에 몸을 틀다.
냄새를 날리다.
풀꽃 마중하며 얼굴 내밀다.
새초롬해지다.
나뭇가지 그늘에 안주하듯 숨다.
햇빛 등지듯
보실한 피부 손길 닿고
- 조병무의 <쑥을 보며>에서
여기에 인용된 【예문 1】의 시에서 첫 연의 ‘내 마음의 아늑한 품속’(추상적 이미지)과 ‘진흙’(감각적 이미지), 둘째 연의 ‘손바닥’(감각적 이미지)와 ‘마음’(추상적 이미지)과 ‘누룩을 넣은 빵’(감각적 이미지)은 중층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관념만이 있는 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각적 이미지만 있는 시도 아니다. 이 둘을 절충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마음의 집>이라는 관념적 대상물이지만 이 시는 추상적으로 밖에는 설명될 수 없는 마음의 근원, 마음의 관용성, 지혜, 아름다움, 연민 등을 사물의 이미지로 감각화시켜 중층묘사에 성공하고 있다. 【예문 2】에서도 첫 연의 ‘냄새를 날리다’(감각적 이미지), 둘째 연의 ‘새초롬해지다’(추상적 이미지) 등이 중층묘사라 할 수 있는데 마음의 근원이 ‘쑥’이라는 사물 이미지로 감각화된 것이다.
III. 닫으며
중층묘사는 우리 현대시에 있어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 현대시의 중요한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문덕수는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우리 시는 대체로 ‘관념시’거나 ‘물질시’의 두 방향을 취했고 이 둘을 종합한 ‘감각과 사상이 통합된 시’ 곧 ‘형이상시’의 발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감각과 사상이 통합된 이러한 시가 발전되어야 하겠고, 그러자면 자연히 시창작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더불어 ‘중층묘사’의 기법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