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있는가
[안나 카레니나]라는 걸작을 남긴 러시아의 대표 문호 레프 톨스토이. 1878년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한 톨스토이는 한 지방 재판소의 배심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어느 검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며 또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바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이 책을 읽다 이 문장에서 멈췄다.
'어쩌면 내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은 건 아닐까?' .. [이반 일리치의 죽음] 81쪽
모든 생물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있다. 그런테 인간만이 그렇지 않다. 왜 인간만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못하게 되었는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우리는 어린 시절, 누구나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산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서울에서 태어날 수는 없다. 난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유 의지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자유 의지를 실행했다. 엄마와 선생님이 반대하는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오로지 나의 행복과 출세를 위해 선택한 첫 번째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정신이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서울에서 온 친구들과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컸다. 일단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아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다. 어설픈 표준어 사용은 웃음을 자아냈고 주변 선후배와 교수님들도 '웃기는 고명환'이라고 평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나를 웃기는 사람으로 못 박았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개그맨이 되었다. 무명 시절을 겪으며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서울에 집도 사고 연예대상에서 상도 받았다.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의 진짜 즐거움은 중요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신사 숙녀들을 초대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작은 만찬을 여는 것이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39쪽
이반 일리치는 성공한 정부 관료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처럼 그도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보좌관을 거쳐 판사가 되었고 능력도 좋아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결혼도 했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말 그대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대로' 계속 흘러갔다. '유쾌하고 품위 있게.'
내 삶도 유쾌하고 품위 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직 성공과 재산을 위해 두세 시간만 자며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쉬지 않고 달렸다. '마땅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여력이 없었다. 세상은 나를 돌아볼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한 방향으로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이 방향이 맞는지 아닌 지도 모른 채. 그렇게 8년을 쉼 없이 달리다 교통사고가 났다.
의사가 말했다. "고명환 씨, 길어야 사흘 살 수 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유언도 남기시고 주변 정리할 것들도 정리하시라고 알려드립니다."
너무 이상했다. 이게 아닌데. 8년 동안 잠도 못 자고 나중에 있을 행복한 날을 꿈꾸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내가 사놓은 아파트에서 하룻밤 자보지도 못했는데 죽는다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미래를 한순간도 누려보지 못하고 죽는 거지? 그럼 어떻게 살았어야 했단 말인가? 준비해온 미래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거지? 나만 몰랐을까? 꿈인가? 이럴 수가 없는데?
이반 일리치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온다. 행복했던 부부생활은 아기가 태어나면서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치는 가족 대신 성공에 집착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지만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으며 옆구리 통증이 시작된다. 육체적 고통은 우율중으로 번지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악화시킨다. 그제야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모든 삶, 내 의식적인 삶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전에는 이런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했던 삶을 살지 못했으며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자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려고 했던 눈에 띄지 않았던 충동, 그가 즉시 억눌렸던 그런 충동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전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회적 및 직업적 이해관계 역시 모두 거짓일 수도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86쪽
이반 일리치 역시 죽음 앞에 가서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간들만 왜 죽음 앞에서 진실을 알게 될까? 저 바닷속에 고등어도, 갯바위를 누비고 다니는 길고양이도, 한창 빨강을 자랑하는 동백꽃도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이미 알고 잘 살고 있는데, 왜 인간만 돌고 돌아 죽음 앞에 가서야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을까? 심지어 잘못 살아왔다는 사실만 알 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게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궁금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있을 행복한 날을 만나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지금을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카르페 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매 순간을 즐기면서 살라고?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 즐기며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은 어떻게 하라고? 돈 버는 순간을 즐기라는 말인가? 그런데 즐긴다는 게 뭐지?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아! '즐기다'가 아니라 '충실하다'구나. 사전을 찾아보자.
충실하다... 내용이 알차고 단단하다.
알겠다. 내 하루를, 지금을 알차고 단단하게 채우자. 즐긴다는건 그냥 소비하는 느낌이다. 알차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생산'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적어보자. 웃기기, 요리하기, 노래하기, 운동하기, 낚시하기, 장사하기, 책 읽기, 글쓰기, 아이디어 만들기..... 그래, 이 중에 요리하기로 음식을 생산하고 글쓰기로 책을 생산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생산한 음식과 책으로, 내가 돈을 벌고, 그 돈을 내가 소비하면 알차고 단단한 것인가? 아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가엾다. 그들이 아파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들을 구출하고 스스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얼마나 훌륭하고 얼마나 간단한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91쪽
이전까지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 했었다. 수백 권의 책은 읽고서야 '나'가 아닌 '남'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나를 위해서 생산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생산한다? 결국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면 되겠구나!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내 인생을 바꿨다. '가치'는 '같이' 사는 것이다.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가치다.
식당을 운영할 때 나도 만족하고, 고객도 만족하는 선에서 이윤을 남기면 된다. 아니다. 고객이 좀 더 만족하는 쪽으로 내 이윤을 낮추는 것이 '같이' 사는 것이다.
내가 쓴 책을 통해서 독자가 낸 책값보다 휠씬 더 큰 이익을 얻도록,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바로 즐기는 삶이고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이다. 밤을 새워 자료를 찾고, 오래된 책 먼지 때문에 콧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얼마나 홀륭하고 간단한가! 그저 시선의 방향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나' 중심에서 '남' 중심으로 기준을 바꾸면 끝이다. 지금 하는 일을 다른 일로 바꿀 필요도 없다. 한 번에 바뀌지 않으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어라. 이 책은 92쪽밖에 안 된다(책 속 단편의 분량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92쪽을 읽는 동안 당신의 삶도 함께 펼쳐지리라.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방향을!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명환 지음
첫댓글 마땅히 살아야 할 삶...
나,남,같이....오늘도 좋은글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왠지 나 자신을 토닥토닥거리며 살아갑니다...ㅎㅎ
책을 같이 읽어 나가니, 더 좋은듯요
"가치는 같이 사는것이다"
이 말이 뇌리에 새겨지네요~^^
매일 좋은글로 아침을 열어 주시니 늘 감사합니다~
가치를 더하는데, 같이 해서 더 좋은듯요
현재 이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 제가 좋아하는 말이다 늘 좋은 글 을 읽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즐김이란 남기지 못하니 소비 맞네요~^^
내가 우선이 아닌 우리의 삶으로 전환해야 함을 ~
카페에 오면 늘~성숙 되어지는군요^^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내 인생을 바꿨다. '가치'는 '같이' 사는 것이다.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가치다.
개그맨에서 교통사고 당하여 생사를 오가던 입원기간중 다독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죠.
제가 생각하는
독서는
사람을 깨우치게하고,
글쓰기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게하는
묘한 마법을 부립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큰일을 겪고.
힘든 시간을 독서로 잘 견디고.
글을 쓰는 작가로 인생을 바꾸고.
읽기 쉬운 글로 잘 풀어주신
작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주는 내내 마법을 위한 힘을 기르도록 고전이 답했다가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