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다. 38년을 돌고 돌아서 다시 모압 평지에 이르고 아르논강을 지나 요단강 동편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이제부터는 그들 앞에 전쟁이 놓여 있었다.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 이후 이전 세대는 다 죽고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모세 앞에 서 있었다.
역사는 언제는 결과를 기록하기 때문에, 사건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이 첨가되기도 한다. 모세는 아모리 족속을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부쳤다고 기록했지만 그렇다고 거저 주운 것을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부쳤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을 그 약속을 믿고 힘써 싸움으로 그 땅을 쟁취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야만 이길 수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힘써 싸우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의 싸움 끝에는 믿음의 열매인 승리가 있다.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하나님이 믿음의 고백만 보고 그 땅을 저들에게 던져주지 않았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다. 우리는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화친의 서신을 보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이것은 그들이 죽기를 작정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교만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길 수 있다고 잘못 평가한 이유 때문이었다.
(신 2:32)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신 2: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신 2:34) 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우리는 무슨 일을 완수한 이후에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모세도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들의 손에 부쳤다고 믿었고 그렇게 고백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저들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서 싸웠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쟁취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더라면 아무리 하나님이 그들을 주시기로 약속했더라도 그 땅은 그들의 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신 2:30)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억지로 시혼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다. 시혼이 스스로 마음을 완고하게 먹었고 하나님은 그의 교만을 그대로 용인하심으로 전쟁이 일어나도록 하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분이다.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겠는가?
하나님 아버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저희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겸손히 주의 말씀을 청종하는 믿음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