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테슈바
용서받지 못하는 시대(An Unforgiving Age)
이런 말을 한 젊은 남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우리가 우리 형제를 죽여 그의 피를 덮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나? 그를 팔자. 그래도 그는 우리 형제고 우리 살붙이다.”
(창 37:26-27)
형제를 노예로 팔아넘긴 한 청년. 그의 이름은 예후다(Yehudah)였습니다. 정말 큰 죄였지만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따릅니다. 우리는 예후다의 이름을 따서 예후딤(yehudim)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라고 불립니다.
왜일까요? 그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용서를 받았나요? 그는 "עַל-כֵּן אֲשֵׁמִים אֲנַחְנוּ - Aval asheimim anachnu (아발 아쉐밈 아나크누-우리는 죄가 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말씀드려서 무엇으로 우리의 의를 증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 종들의 죄악을 발견하셨으니, 보십시오.”(창 44:16)
뿐만 아니라 그는 변했습니다: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긴 사람에서 동생 베냐민이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남은 생애를 기꺼이 노예로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알 테슈바(בעל ,תשובה, Ba’al Teshuva)가 되었습니다. 그의 형제 요셉은 그를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고,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따릅니다.
※ 바알 테슈바(בעל ,תשובה, Ba’al Teshuva): 유대교 문헌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한 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었고, 믿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한 여인이 지붕 위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았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달빛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다른 사람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고, 남편을 군대의 최전선으로 보냈고, 그는 전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끔찍한 죄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적인 시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용서를 받았나요?
그것은 그가 "하타티(חָטָאתִי, Chatati)"라는 한 단어로 전달되는 가장 짧은 형태의 셀리코트(סְלִיחוֹת, Selichot)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כִּי־בְעָוֺנִי אֵדָע וְחַטָּאתִי נֶגְדִּי תָמִיד, 키 베아보니 에다 베하타티 네그디 타미드) "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51:4) 그는 단 한 순간도 그가 죄를 지은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서받았습니다.
※ 하타티(חָטָאתִי, Chatat): "나는 죄를 지었다"라는 뜻. 죄를 짓거나 목표를 놓친다는 뜻의 어근 חָטָא (하타, chata)에서 유래.
※ 셀리코트(סְלִיחוֹת, Selichot): "용서"를 뜻하는 히브리 기도문으로, 유대교에서 속죄와 용서를 구하는 시기에 바치는 기도로, 로쉬 하샤나와 욤 키푸르로 이어지는 대속죄일 기간에 주로 바쳐진다. 이 기도는 특히 13가지 하나님의 자비로운 속성을 반복해서 낭송하는 것이 특징이며, 공동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비를 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유다(예후다)와 다윗 왕은 바알레이 테슈바(בעלי תשובה, Ba’alei Teshuvah,)였습니다. 그들은 자백하고 사과했으며, 그들은 변했습니다. 그들은 용서받았습니다.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용서받았습니다. 그들이 용서받지 못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예후다가 용서받지 못했다면, 오늘날 유대인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쪽의 10개 부족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예후다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용서받지 못했다면 오늘날 토라 속 시편은 없었고 전 세계는 빈곤했을 것입니다.
※ 바알레이 테슈바(בעלי תשובה, Ba’alei Teshuvah): 회개하는 자들(복수형)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차이점은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וַיֹּאמֶר יְהוָה סָלַחְתִּי כִּדְבָרֶךָ, (바요메르 하셈 살라흐티 키드바레카. 내가 네 말대로 용서한다) (민수기 14:20)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밤과 셀코트 기간 내내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הַשֵּׁם, הַשֵּׁם, קֵל רַחוּם וְחַנּוּן, 하셈 하셈, 켈 라쿰 베하눈,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언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최악의 죄, 황금 송아지 사건 이후입니다.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은 지 40일 만에 최악의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한 문화권 전체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는 비인격적인 힘의 무의식적인 우주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남은 것은 사실이나 진실, 삶에 대한 반성, 도덕적 판단 없이 누구나 누구에게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같은 세계뿐입니다. 피고인이 설명할 기회가 생겼거나, 진실이 드러났을 때쯤이면 이미 군중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하는 문화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용서받지 못하는 문화에서 살아남고 번영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누가 강력한지 살펴보세요. 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용서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 정직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상한 마음으로 하카도쉬 바룩 후(הַקָּדוֹשׁ בָּרוּךְ הוּא , 축복받은 거룩한 분) 앞에 선다면, "아발 아쉐밈 아나크누(אבל אשמים אנחנו, 하지만 우리는 죄가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다윗 하멜렉 '하타티'처럼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셀리코트(Selichot)의 모든 것입니다.
정직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에 대해, "내가 당신을 실망시킨 거 알아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것을 압니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주님께서 저를 창조하신 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רִבּוֹנוֹ שֶׁל עוֹלָם(리보노 쉘 올람): 세상의 주님, שמע קולי(쉐마 콜리): 내 목소리를 들으소서, שתע קולינו(쉬마 콜레이누):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1~2년 전, 저는 미국의 한 큰 학교에서 강연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시작 전에 어떤 기다림이 있었는데, 매우 다정한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작하기까지 10분 남았어요. 저는 지역 유대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저와 인터뷰 해 주시겠어요?“ 저는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서재로 들어갔고, 그는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력과 경력을 보니, 당신 같은 사람도 혹시 실패한 적이 있나요?”
저는 웃다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저는 "거의 모든 것에서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영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윈스턴 처칠의 성공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Going from failure to failure without loss of enthusiasm.)" 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행자에게 우리 삶을 결정짖는 진짜 차이는 실패와 성공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진짜 차이는 실패하고 포기하는 것과 실패하고 계속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가 넘어지면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고, 실패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단순한 사실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는 완벽한 대중적 페르소나는 잊어버리세요.
※ 완벽한 대중적 페르소나(public persona of perfection): 타인에게 투사하는 흠잡을 데 없이 큐레이팅된 이미지로, 인정을 받고 판단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는 외적인 가면 쓴 인격.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고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 용서 안에서 우리의 실패와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친 것을 치유하시고, 망가뜨린 것을 고치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By Rabbi sacks
이 글은 랍비 삭스의 런던 햄스테드 시나고그 프리 셀리코트 연설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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