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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폭포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0 : 32 : 50
회장과 황교장의 수고로 주차장에 도착....... 09 : 04 : 59
애국가 속에 있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생태 : 문경새재의 소나무는 흔히 산 능선 큰 바위 틈(애국가의 남산 위의 저 소나무~)에 자생합니다. 이런 장소는 쉽게 건조되
고 토양이 부족하여 강한 바람과 자외선에 노출되어 있어 다른 식물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하고 기형
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의 좋은 곳은 참나무가 주인이고, 소나무는 경쟁에 밀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것입니다.
유래 : 소나무는 “으뜸”이라는 순수 우리말인 “솔”에서 유래되었으며, 줄기가 붉어 “적송”이라고 합니다. 한자의 松은 중국 진시
황제가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나 소나무 밑에서 잠시 쉬었다 하여 목공(木公)이라는 벼슬을 내렸다는데서 기원합니다.
이용 : 소나무는 보통 다른 나무에 비해 살균 물질인 “피톤치드”를 10배 정도 발산하여 삼림욕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
상생활의 송판, 송이버섯, 송진, 송기떡, 송실주 등은 소나무와 관련된 것 들입니다.
주흘관 성벽 아래 잔디 심기로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문경새재와 운강 이강년의 의병항쟁
문경새재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분인 운강 이강년선생이 일본군과 두 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인 곳이다. 선생은 1858년 문경군 가북면 도태(현 가은읍 상괴리)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지만,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갑오·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이 내려지고 전기의병이 일어나자 선생은 1896년 2월 23일 도태장터(가은 상괴1리)에서 창의(倡義)하여 의병항쟁에 나섰다. 그 해 3월29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일본군의 주요 병참선인 조령의 동원촌(현 2곤문과 3관문 사이 동화원)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하고 수안보와 평천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907년 8월 일제의 정미 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선생은 제천에서 거의(擧義)에 연합하여 연합의진을 결성하고 8월15일 제천 천남 전투에서 일본군 1개 소대를 격파하였다. 다시 충주성을 공격한 후 9월 문경으로 진군하였다. 1907년 9월 7일 문경읍을 장악한 운강의병부대는 9월 9일 주흘루(제1관문)주변 민가를 소각하고 약탈을 일삼던 일본군을 격퇴하고 주민들을 위로하였다. 혜국사를 거쳐 당포로 진출하여 9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쳐 갈평에서 마을에 불 지르고 만행을 일삼던 일본국 1개 소대를 괴멸시켰다. 9월 14일 적성(동로)전투에서 물러나 단양 영월로 진출한 후 약 1년간에 걸쳐 일제침략에 항거하였다. 선생은 1908년 7월 2이 제천 작성산(鵲城山)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그 해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운강 이강년 (1858.12.30. ~ 1908.10.13.)
문경 선정비 군(聞慶 善政碑 群)
비석을 세우는 본래 의미는 忠, 孝, 烈 등의 덕행을 후세에 전하여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데 있다. 이곳의 선정비군은 흔히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 등으로 불러지는 것으로 대개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주로 1700~1800년대 세워졌으며 관찰사 및 순찰사 11기 군수 및 현감 7기 其他 2기가 있다. 이 비석군은 당초 문경읍 관내에 산재해 있던 것을 옮겨 주흘관(1관문) 뒤에 있었으나 慶北開道 100주년 기념사업인 타임캡술 매설로 인하여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1997년 10월 23일 문경시장
<선정비 내용을 주흘관을 기준으로 기록함.>
達成居 金錫柱永世不忘碑 : 김석주(미상~미상). 이 비는 고종 26년(1889)에 세워졌다.
五衛將 李公泳稙 追思碑 : 오위장 이영직(미상~미상). 이 비는 辛丑년(연도 미상) 3월에 세워졌다. ※ 오위장(종2품. 대장)
郡守 李侯宰夏 愛民善政碑 : 군수 이재하의 본관은 全州이다. 문경현감 재임한 기간(1899~1901). 문경에 오기 전知禮郡守 역임
縣監 李侯鎬肅 不忘碑 : 현감 이호숙(미상~미상) 본관은 우봉(牛峯). 문경현감 재임기간 (1871~1874)
이후 延豊縣監과 善山府使 를 지냄. ※ 후(侯 : 제후 후)
縣監 洪侯魯榮 永世不忘碑 : 현감 홍로영의 鐵碑. 문경현감 재임기간(1824~1827).
縣監 崔侯斗顯 永世不忘碑 : 현감 최두현의 字는 上仰, 본관은 全州. 문경현감 재임기간 (1815~1817).
이 비는 순조16년(1816년)에 身五面(現 문경읍·마성면)에 세웠다.
縣監 嚴侯思勉 去思碑 : 현감 엄사면(1750~미상)의 字는 치일(稚一), 본관은 寧越. 문경현감 재임기간(1802~1806).
1780년 진사과에 급제, 이후 義禁府都事와 齊陵令을 지냄. 이 비석은 순조 4년(1804년)에 武校들이 세움.
縣監 金公希魯 淸德善政碑 : 현감 김희로(1673~1753)의 字는 聖得, 본관은 淸風. 문경현감 재임기간(1713~1716).
1702년에 진사에 급제. 이후 工曹參議(정3품. 차관보)와 戶曹參判(종2품), 同知事(종2품. 현 차관)를
지냄. 이 비석은 숙종 42년(1716년)에 세움. 비문왼쪽에 ‘丙申九月 日入’이라 새겨져 있다.
縣監 李公德齡 淸德善政碑 : 현감 이덕령(1649~미상)의 字는 季得, 본관은 韓由, 문경현감 재 임기간(1695~1698).
1684년 생원시에 급제. 이후 戶曹佐郞(정5품, 4급)과 牧使(정3품, 차관보)를 지냄. 미 비석은 숙중 35
년(1709년)에 세움. 가은읍 성저1리 마을 입구에도 같은 모양의 선정비가 있음.
1. 觀察使 嚴相國世永 頌德碑 : 엄세영(1831~1900)의 字는 允翼, 본관은 寧越. 시호(諡號)는 숙민(肅敏). 호는 범재(凡齎) 1864년
(고종1) 증광문과에 급제. 병조참판, 한성부좌윤, 이조참판, 대사헌, 三南廉察使 등을 역임. 경상도관찰사(1896~1897)로 재임. 후에 종일품인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고, 편저로 ‘日本見聞錄’이 있다. 이 비는 1897년에 건립 됨.
※ 상국(相國 : 조선 때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총칭, 相臣)
2. 觀察使兼南營使 金相國明鎭 永世不忘碑 : 김명진(1840~미상) 조선후기 문신 본관은 安東, 字는 雉城.
1870년(고종 7) 정시별시 문과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동부승지, 대사성, 경기관찰사를 거치고 경상도관찰사(1888~1890)로 재임하면서 수취체제의 혼란상에 대한 상계를 올리는 등의 치적을 남김. 후에 이조참판 역임.
이 비는 1890년(고종27)에 건립됨.
3. 觀察使 李相國根弼 永世不忘碑 ; 이근필(1816~1882)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 시호는 효문(孝文). 1852년(철종3) 정시문과에 급제. 이조참판, 형조판서,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이임하고, 경상도관찰사(1877~1880)로 재임. 양전(量田)의 시행, 조선(漕船:물건 나르는 배)의 개조, 밀무역 방지 등의 치적을 남김.
4. 觀察使 朴相國齊寅 不忘碑 : 박제인(1818~188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 字 는 치량(稚亮).
1856년(철종 7) 별시 문과에 급제.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예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 경상도관찰사(1875~1877)로 재임하며 연이은 흉년으로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의정부에 보고하여 사창곡의 납부를 연기하는 등 진휼대책에 힘쓴 치적이 있다. 이 비는 1879년(고종 15)에 건립 됨.
5. 觀察使 金相國世均 遺愛碑 : 김세균(1812~187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安東, 호 는 만제(晩齊), 시호는 문정(文貞).
1843년(순조34)에 진사가 되고, 1844년 정시문과에 급제. 홍문관제학, 이조참의를 거쳐 경상도관찰사(1860~1862)로 재임. 후에 대사헌, 이조판서, 공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 저서로 ‘완염통고(惋琰通考)’가 있음. 이 비는 1870년(고종 7)에 건립
됨.
6. 觀察使 李相國參鉉 不忘碑 : 이삼현(1807~미상)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용인, 호는 종산(鐘山). 1834년(순조34)에 사마시에 합격. 1841년 정시문과에 급제. 대사성, 경상도선무사, 함흥부안핵사 등을 거쳐 경상도관찰사(1865~1868)로 재임. 예조판서 등을 역임. 저서로‘종산집(鐘山集)’이 있음. 이 비는 1867년(고종 4)에 건립 됨.
7. 巡察使 李相國大根 善政碑 : 김대근(1805~1879)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안동, 호는 여연(如淵). 1827년(순조27)
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도관찰사(1848~1849)로 재임. 후에 한성부판윤, 예조, 형조,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
임. ‘삼정구폐책(三政救弊策)’이 있다. 이 비는 1851년(철종 2)에 건림 됨. ※ 三政 : 나라 정사 중 가장 중요한 田政, 軍政, 還穀.
8. 觀察使 趙相國秉鉉 不忘碑 : 조병현(1791~1849)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호는 성재(成齎). 1822년(순조 22) 신년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도관찰사(1834~1836)로 재임. 후에 병조판서,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 조선후기 풍양 조씨의 중심인물이자 기해박해(己亥迫害)의 중심인물임. 이 비는 1836년(현종 2)에 건립 됨.
※ 기해박해 : 조선 헌종 5년(1839)에 두 번째로 가톨릭교도를 학살한 사건. 프랑스 신부 모방, 샤스탕, 앵베르를 비롯하여 70여 명의 교도가 죽임을 당함.
9. 觀察使 金相國犧淳 不忘碑 : 김희순(1757~1821)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호는 산목(山木), 시호는 문간(文簡). 1783년(정조 7) 생원이 되고, 1879년 식년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도관찰사(1804~1806)로 재임. 후에 호조·예조 등의 참판과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 이 비는 1836년(헌종 2)에 건립 됨.
10. 觀察使 金相國世鎬 永世不忘碑 : 김세호(1806~1884)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 호는 수재(修齎). 1843년(헌종 9) 식년문과와 1846년 문과중시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850년 경상좌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를 숙청하였고, 경상도관찰사(1869~1873)로 재임. 재임시 해안방비체제를 강화하는 등의 치적을 남김. 후에 한성부판윤을 역임. 저서로 ‘논어석의(論語釋疑)’가 있다. 이 비는 1870년(고종 7)에 건립 됨.
11. 觀察使 金公演 去思碑 : 김연(1655~미상)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산, 호는 退修堂. 1675년(숙종 1)진사가 되고, 1684년 정시문과에 급제. 여러 내외직을 거쳐 경상도관찰사(1704~1706)로 재임. 후에 도승지, 예조판서, 호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 이 비는 1709년(숙종 35)에 건립 됨.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범례 : 1 광화문(光化門), 2 사정전(思政殿: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 3 강녕전(康寧殿:왕의 침실), 4 교태전(交泰殿:왕비 침실),
5 서문관(西門關), 6 동궁(東宮), 7 궐내각사(闕內各司:궐내 관청), 8 양반촌(兩班村) 9 서민촌(庶民村),
10 일지매 산채(一支梅 山砦)
규모 : 부지 70,000(21,212평), 건물 130동(기와집 108동, 초가집 22동) / 준공 2008. 04. 16.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용사골)
맨발 걷기 후 발 씻는 곳...
지압 보도 (Barefoot Path) : 힐링 하고 갑시다.
지압보도는 음양오행의 재료인 목재, 해미석, 화강석을 사용하여 설치하였으며, 우리 문경새재내 제1관문 - 제3관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함께 현대인의 건강 증진에 크게 유익한 시설로 「피로회복」 「혈액순환」 「생체조절기능 향상」 「근육조직의 이완」 「스트레스 예방과 치료」 「내장기능향상 및 신진대사 활성화」 「관절염 개선」 등 인체의 활력 증진과 자율 치유능력개선에 효과가 있습니다.
대성산업(주) 사유림 현황
1,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하초리 일원
2. 면적( 총 715만평 ) : 임야 712만평(공원 73만평 포함), 전답 3.3만평
3. 주요영림 현황 : 육림 510만평, 조림 170만평, 양묘 0.73만평
병충해방제3570만평, 편의시설: 산장 및 휴게소 5동
4. 연혁 : 1969.12 ; 국유림을 공개 입찰로 매입 1970.12 : 영림계획 착수
1974.11 : 우수독림가 인정(경북지사) 1978.11 : 법인 독림가 인정(산림청장)
1988.04 : 산림施業 표창(대통령) ※ 시업(施業 : 가꾸기) =(잡목 제거)
자연 생테계 유지 및 청정림 지역으로 후손을 위하여 영구히 보존하고자 합니다.
원터의 평상에서 휴식.... 09 : 50 : 53
주막집 마당에 솟대가 보인다.... 촬영을 위해 설치?
교귀정 축대의 푸른 이끼는 볼 수록 시원하다....
꾸구리 바위 웅덩이의 명경지수는 속이 보인다...
수근정(水近亭) 아래 벤취쉼터에서 휴식... 10 : 13 : 43
송림이 우거진 그늘길은 아늑하여 즐겁다...
소원성취 돌탑 사이 새로운 정자가 황금색으로 빛난다...
나무 홈통의 맑은 물이 가득하게 흘러내린다...
조곡폭포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10 : 32 : 16
진상태님 쉼터에서 회장이 마루를 쓸고 시원한 그늘에서 간식도 즐기고 휴식... 10 : 37 : 37
조곡폭포 위의 매바위가 뾰족하게 내밀었다...
松崗이 촬영으로 늦어서 잠시 기다리며 휴식...
初老의 부부들이 맨발로 새재를 오른다.... 약간 부러움?
젊은 부부가 투호(投壺)던지기를 구경하고, 회장과 투호 통 속의 물을 비우고 제자리에 둠...
투호 의의 : 선비들의 정신 집중을 위한 놀이, 명절날 가족이 편을 나누어 즐김
투호던지기 방법 : 다리 모양(모우고, 벌리고), 손 바꾸어(오른손, 왼손), 개인또는 단체 등...
투호 거리 : 1.8m
지름털 바위가 곧 내려 올 것 같다....
상주목사 이익저의 불망비(尙州牧使 李侯益著 沒世不忘碑) ※ 몰세(沒世: 끝없이 오램)
★ 위치 : 폭포동 암반 위 약 10m(좌측) ★ 시기 : 숙종28년(1702년)
주흘관에서 북쪽으로 600m 떨어져 있는 암벽 위 10m 위에 있는데,
길 위 높은 곳에 새겨져 있어 지나치기 쉽다. 비석의 높이는 215cm, 폭은 60~100cm이다.
이익저의 상주목사 재임기간(1702~1703)은 숙종28년부터 숙종29년까지이다.
바위 아래 폭포동(瀑布洞)이라 음각되어 있음... 옛날이 장마비가 오면 폭포가 되어 흘렀을 장소?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영남제일관(주흘관)과 주흘산의 풍경이 장엄하고 웅장하다......
경북100주년 타 임 캡 슐 광 장
이정표 : 주흘산 ➪4.5km 여궁폭포 ➪0.8km
문경생태미로공원 입구..... 예쁘게 꾸며 놓았다....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임시이전 안내
관리 사무소 임시사무실이 생태박물관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관리사무소 확장 공사 중)
큼직한 롯데리아 간판.... 상가가 평일에는 한산하다...
중식은 원기탕으로(松崗의 서예전 입상을 축하드립니다) 12 : 38 : 14
첫댓글 이번 산행에서 주흘관 안에 있는 선정비에 대하여 내용을 확인하고 조사하며 지난번 "애환 서린 옛길 문경" 안내에 주흘관 안쪽의 전나무 아래 11기의 선정비가 있었는데, 나머지 9기는 다른 장소의 비를 모아서 현재 장소에 설치했으며. 관찰사 경우는 문경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발견되고, 건립 연대는 1709년~1900년이고,재임기간이 2년 전후인데 선정비를 세우는 것은 구체적인 업적이 명시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개인의 이름을 후세에 알리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아 흥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쯤은 酷暑期가 제격이나 格에 어울리지않게 서늘한 새재계곡에 進入한다.博物館지나서 丹楓나무 숲이 터널을 이룬 廣場은 이젠 名所가 되고있다.1년넘게 補修工事를 했지만 아직도 不足한지 城壁아래에 잔디 補植을 하고 있다.比較的 閑散한 溪谷길을 餘裕있게 散步하듯 바쁠것도 없이 걷는 오늘이 좋다.古風스런 交龜亭 一帶는 이끼낀 築臺와 건너편 瀑布 앞의 '龍湫'의 刻字 等 이런 風流 때문에 聞慶八景으로 指定되었나보다.꾸꾸리바위의 沼에는 피라미 무리가 한가롭게 遊泳하고있어 볼거리를 提供하고 있다.鳥谷瀑布는 水量이 훨씬 많아져서 氣運차게 쏟아지는 瀑布水가 壯觀을 이룬다.우리들의 쉼터인 陳相泰 公園은 各種 落葉 副産物로 켜켜히 쌓여있지만 우리만을 위한 조촐한 空間이여서 좋다.休息과 間食과 談笑 나누는 時間만큼 有益한 瞬間이다.下山길은 더 많은 것이 보인다.所願成就塔에 造成된 園頭幕도 새롭고 水近亭 附近의 落落長松도 赤松이라 더 莊嚴하다.숲이 좋은 이곳부터 交龜亭까지가 가장 좋은 길이다.善政碑群은 몇 기가 追加되어 늘어났지만 그걸 모두 調査하여 알뜰하게 紹介해준 海山님께 感謝의 人事를 올린다.또 道展에 入選의 快擧를 이룬 松崗님께도 讚辭를 보낸다.韓牛湯으로 補身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