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8월 1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마음의 창을 닦는 하루”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마음의 창을 닦는 하루”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먼저 바깥세상을 바라봅니다.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살펴보고, 오늘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깥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창입니다.
집 안의 창문에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묻으면 바깥 풍경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햇빛이 환하게 비치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어도 창문이 더러우면 그 밝음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 풍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창문에 묻은 먼지와 얼룩 때문에 세상이 흐려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속에 서운함과 미움, 욕심과 편견이 쌓이면 사람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나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리고, 나를 걱정하여 건넨 충고도 비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창이 흐려져 있으면 좋은 인연도 불편하게 보이고, 감사해야 할 일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마음은 모든 일의 앞장이며, 모든 일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맑으면 어려움 속에서도 배울 점을 찾지만, 마음이 흐리면 작은 일에도 화가 나고 불평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가족이 건넨 짧은 한마디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합니다. 상대방은 아무런 악의 없이 말했을 수도 있지만, 내 마음에 이미 서운함이 쌓여 있으면 그 한마디가 크게 들립니다. 그 말을 계속 되새기며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처음에는 작은 먼지였던 감정이 점점 두꺼운 얼룩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상대방이 한 말 자체보다도 그 말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지나간 말을 마음속에서 수십 번 되풀이하면 상대방은 한 번 말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수십 번 들려주는 셈이 됩니다. 그럴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고,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지난 감정이 다시 일어납니다.
마음의 창을 닦는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억지로 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된 일을 무조건 참고 상대방의 행동을 모두 받아들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일어난 일을 분명히 바라보되, 그 일로 인하여 내 마음 전체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살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은 필요한 때에 차분하게 말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움과 분노를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가 내 마음까지 미움으로 물들게 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의 허물 때문에 내가 더 큰 괴로움을 짊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계속 키우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미 끝난 일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나쁜 쪽으로 짐작하는 것은 대부분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바빠서 받지 못했겠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만,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금세 서운함이 생깁니다. 사실은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내 생각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의 창에 먼지가 쌓이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처럼 확인하지 않은 일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습관입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내 기준으로 해석하고, 한두 번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합니다. 그러면 작은 오해가 큰 갈등이 되고, 오래 이어온 좋은 인연까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걸릴 때 곧바로 판단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내가 지금 사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감정과 생각을 덧붙여 보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끼어 있던 오해와 편견의 먼지를 상당히 걷어낼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깨끗한 창문은 햇빛을 막지 않습니다. 맑은 마음도 사람의 따뜻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막지 않습니다. 마음의 창을 닦으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사가 보이고,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정성이 보이며, 무심코 지나쳤던 이웃의 친절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8월의 첫날인 오늘,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창부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서운함의 먼지가 묻어 있지는 않은지, 미움의 얼룩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욕심과 고집이 햇빛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음의 창을 닦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창문에 먼지가 다시 쌓이듯이 우리 마음에도 끊임없이 생각과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마음을 살피고,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으며, 감사와 자비로 다시 닦아야 합니다. 바로 그 꾸준한 노력이 우리의 일상을 맑히는 수행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의 창을 맑게 닦으려면 먼저 내 마음에 무엇이 묻어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창문에 먼지가 있는 줄도 모르면서 바깥 풍경만 탓한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세상은 맑게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속의 감정과 고집을 살피지 않은 채 가족과 이웃, 세상만 탓한다면 마음의 괴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화가 나면 화가 난 줄은 알지만, 그 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깊이 살펴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상대방의 말 때문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고집,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 의견과 다른 말을 했을 때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면 상대방의 말만 탓하기보다 “나는 왜 이 말을 이렇게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괴로움의 뿌리를 바로 알아차리기 위한 수행입니다.
마음의 창을 닦는 첫 번째 방법은 마음이 흔들릴 때 즉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화가 난 순간에는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고, 상대방의 말보다 내 해석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때 내뱉은 말은 화살과 같아서 한번 상대의 마음에 박히면 다시 거두어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불편한 일이 생기면 먼저 숨을 천천히 세 번 쉬어 보십시오. 숨을 들이쉬면서 “내 마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숨을 내쉬면서 “이 감정을 바로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 않겠다.”라고 다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짧은 호흡이지만 그 순간이 분노와 지혜를 가르는 귀한 시간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으로 풀어지지 않으며, 원한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풀어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화를 화로 갚고 거친 말을 더 거친 말로 되돌려주면 순간적으로는 속이 시원한 듯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만 남게 됩니다.
마음의 창을 닦는다는 것은 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일어날 때 그 화에 끌려가지 않고, 화를 바라보며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감정을 억지로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고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며, 같은 일을 보아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내가 잘못이라고 판단한 행동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서운함이 생깁니다. 부모는 자녀를 걱정하여 충고하지만 자녀는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녀는 바쁘고 힘들어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지만 부모는 자신을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 마음이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라고 서운해 하기 전에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려 보았는가.”라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변하기만 기다리면 인연은 오래 답답해지지만, 내가 먼저 한 걸음 다가가 따뜻하게 말을 건네면 막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창을 닦는 세 번째 방법은 좋은 점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받은 은혜보다 서운했던 일을 오래 기억하고, 잘해준 열 가지보다 부족했던 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고마움은 잊고 부족한 점만 지적하기 쉽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애쓴 부모님의 정성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말 한마디 서운하게 들은 것은 오래 기억하기도 합니다. 배우자가 매일 해주는 수고에는 익숙해져 감사하지 않으면서, 한 번 내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한 것은 크게 탓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계속되면 맑았던 인연의 창에 불평과 원망의 얼룩이 쌓이게 됩니다.
오늘부터 가까운 사람의 좋은 점을 한 가지씩 찾아보십시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마음속으로라도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이 건강하게 곁에 있는 것,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는 것,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창을 닦는 가장 맑은 물과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부족한 것보다 이미 받은 것이 보이고, 불평보다 만족이 생기며, 평범했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환경이 갑자기 달라져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면서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내 허물을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은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으로 단정하기 쉽습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사정이 있었다고 여기지만,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의 허물을 살피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를 살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자주 말한다고 해서 내가 더 훌륭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의 잘못을 반복하여 말할수록 내 마음에 시비와 분별의 먼지가 더 많이 쌓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이 눈에 들어올 때 “나에게도 저와 비슷한 모습은 없는가.”라고 돌아보십시오. 상대방의 게으름이 답답하다면 나도 미뤄둔 일이 없는지 살피고, 상대방의 거친 말이 싫다면 나도 가족에게 함부로 말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거울삼아 나를 고치는 것이 지혜로운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마음의 창을 닦는 수행은 특별한 곳에서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화가 날 때 한마디를 참는 일, 상대방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리는 일, 가까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일이 모두 마음을 맑히는 수행입니다.
오늘 하루 서운함 하나를 내려놓고 감사할 일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모든 감정을 완전히 비우지 못하더라도, 단 한 번 화를 늦추고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면 그것만으로도 귀한 정진입니다.
내일 8월 2일 일요일에는 불심사 개산 19주년 기념법회와 병오년 우란분절 백중 49일 영가천도기도 3재를 함께 봉행합니다. 지난 19년 동안 불심사 도량을 지켜주신 부처님의 은혜와 법우 여러분의 정성을 되새기고, 선망부모와 조상영가를 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법회에 동참하여,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고 불심사와 맺은 소중한 인연을 더욱 밝게 가꾸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8월의 첫날, 묵은 서운함은 내려놓고 자비와 감사로 마음을 밝히며, 오늘도 자신과 이웃을 함께 편안하게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드립니다.
첫댓글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