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5/191001]소설 ‘직지(直指)’는 무엇인가?
모처럼 신작 소설을 통독했다. 김진명 지음 ‘직지-아모르 마네트’ 두 권이 그것. 작가 김진명은 대부분 아시리라.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거침없는 문제 제기로 우리 사회의 핫이슈를 정조준해온 대한민국 최고의 밀리언셀러 작가. 알고보니 1957년생, 닭띠. 우리 대부분과 동갑내기가 아닌가. 대표작 중의 대표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하여 <천년의 금서> <샤드> <고구려> 등을 펴내며 잇따라 화제가 된, 신작이 나왔다면 곧장 사서 읽고 싶은 작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작가가 아닌가.
이번 소설 역시 흥미 만점이었다. 1455년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聖書)’가 중학교 시절까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 1377년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라는 절에서 찍은 ‘직지심체요절(풀네임은 ‘백운화상 초록 블조직지심체요절’이나 흔히 줄여서 ‘직지(直指)’라 함. ‘직지심경’이라고도 하지만, 불경이 아니므로 잘못된 용어이다)’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공인받은 지 오래. 1972년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그곳 사서(司書)였던 한국인 박병선 박사가 발견,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각나라의 역사책을 바꾸는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원래는 상, 하권이었으나 하권만 전하고 있다. 유네스코도 2001년 9월 그 문화적 가치를 100% 인정, 세계기록유산(the Memory of the World)로 등재하였다. 또한 2004년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직지’의 이름을 따 세계기록문화유산 보호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 직지상’을 수여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가 유네스코와 협정을 체결, 청주에 ‘유네스코 국제기록문화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기록유산센터는 세계기록유산 사업 이행을 지원하고, 인류 기록유산의 안전한 보존에 대한 국제적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고려의 ‘직지’를 찍은 금속활자 인쇄술이 당시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전파되었다는 설(說)은 작가의 쇼비니즘(국수주의)적인 주장이 아니라 서양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착착 밝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소설은 팩트(fact)과 팩션(faction) 사이에서 현란한 춤을 추며, 어떤 추리소설 못지않게 독자들을 마구마구 헷갈리게 만든다. 아무튼 재밌다. 세종임금의 뜻에 따라 훈민정음 인쇄에 온몸을 바치는 한 장인의 죽음과 살아남은 그의 총명한 딸 ‘카레나’의 인생역정에 이야기가 이르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정도가 된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이 다 그렇듯,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다 읽고 나면 민족적 자부심에 뿌듯하고 후련하면서도 너무 견강부회가 아닌가 싶어 찜찜하기까지 한 그의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타이밍을 잘 맞춘 시사적 주제와 다이내믹한 구성 전개 그리고 빨려들어가게 하는 문체는 그만이 가진 장점일 터. 또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작가의 노골적이면서도 ‘숨은 의도’에 박수를 보낸다. 그의 소설마다 꼭 등장하는 ‘의식 있는’ 언론인을 통하여 그 어떤 탐사보도나 연구보고서보다 치밀하게 분석하고 통찰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정말 그런가’ 하는 마음과 함께 뭔가 2% 부족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 것은 좋은 것이고 최고’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많기 때문일까? 그가 머리글에서 밝혔듯,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이 문명발전의 씨앗이 되어 ‘세계지식혁명(世界知識革命)’에 이바지해왔다는 작가의 정의(定義)에 동의하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을 들자면, ‘직지의 대모(代母)’라 불리는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직지’와 ‘조선왕조 의궤’를 발견하던 과정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금 덧붙였더라면 좋았을 것같다는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