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 필 달마도, 강희안 필 고사관수도, 이경윤 필 고사탁족도,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화첩···. 미술교과서를 통해, 또는 국내외 전시회·언론을 통해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이들 작품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있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라는 점이다. 소장처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거나, 문화재의 특성, 출처 및 작가 불분명 등 사정은 여러 가지다.
스포츠 경기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 실력을 갖추고도 우승을 하지 못해 메달이나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지 못한 선수를 우리는 흔히 무관의 챔피언이라고 한다. 그처럼 문화재 중에서도 무관의 국보가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지만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그런 걸작 문화재가 전국 국립박물관 등에 여전히 산재해 있다. 저자는 이를 무관의 국보라고 지칭하며 무명의 국보, 이름 없는 국보, 얼굴 없는 국보로도 부르고 있다. 책은 우리 국민들이 잘 모르는 비지정 명품 문화재 35점을 선별해서 미술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한 시대의 국가적 역량이 결집되어 탄생한 국보에는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다.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국보를 알아야 한다. 책은 종전 역사책의 고리타분함에서 과감히 벗어나 국보와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한다. 국보 발굴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하기도 하고, 국보가 제작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국보에 숨겨진 옛사람들의 생각과 관점까지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동양조각사의 최고봉 석굴암 본존불을 능가하는 무명의 통일신라 철불, 독일에서 80년 만에 극적으로 귀환했지만 국보·보물이 되지 못하는 겸재화첩 등 절절한 문화재 이야기에서 물멍하는 선비 모습을 묘사한 고사관수도에 숨겨진 조선 최대 정치사건, 8폭 병풍에 어린 조선 개혁군주의 왕권강화 야심, 조선이 가난했다는 인식을 여지없이 허물어 버리는 활력 넘치고 풍요로운 18세기 말 평양 모습을 그린 평안감사향연도 등 국보급 문화재에 얽힌 역사적 비밀을 뒤쫓으며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문화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한국사를 이해하는 폭을 한껏 넓혀줄 것이다.
문화재는 우리 조상이 살았던 자취이자 역사의 징표다. 그 시대의 흔적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문화재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K컬처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화재의 형태와 문양은 한국미의 원형을 형성하면서 현대의 예술정신 속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미는 현대미술을 뛰어넘어 K팝과 K드라마 등 모든 장르와 접목하면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현재 국보 354건, 보물 2705 등 3059건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당장 국보·보물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국보급 문화재도 무수하다. 국보·보물이 아니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또는 잊고 있었던 숨은 국보급 문화재를 찾아내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밝혀내고자 했다. 책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풍성한 도판과 함께 생생한 현장감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 배한철은 다년간 문화재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좀 더 흥미롭게, 대중과 가까이에서 역사를 전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고문헌과 역사서를 뒤지고 전국 유적지 구석구석을 답사해온 그의 경험은 칼럼과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의 책은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으로 역사와 문화재에 관한 충실한 설명을 제공한다.
초상화 속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읽어낸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고전 문헌 속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본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대한민국의 간판 국보를 한국사 명장면으로 풀어낸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2021년 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 선정) 등 베스트셀러 교양 역사서를 다수 집필했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무관의 국보이자 무명의 국보다. 비지정 국보급 문화재 중 탁월한 예술품을 발굴해 그 존재와 가치를 조명함으로써 국민들이 문화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또한 이를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려는 게 이 책의 집필 취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던지는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먼지 폴폴 날리는 골동품이 아닌, 역사의 증거이자 새로운 시대의 창조적 원동력으로서 문화재의 모습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