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탓하지 말고 빛의 콘텐츠를 창조하라 -작가 한강에게
입력:2024-10-24 03:09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운동] 노벨상 수상한 한강의 빛과 어두움
한국교회는 어둠의 문화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빛의 콘텐츠를 창출해야 한다.
사진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단풍으로 아스펜나무 잎은 빛을 투과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황성주 회장 제공
이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년 전 아카데미 상을 휩쓴 것 같은 극적인 자랑스러움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안겨준 쾌거라 볼 수 있다. 한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상상을 초월한 독특한 소재와 상황 인식, 심각한 주제에 흥미를 갖춘 탄탄한 스토리, 장편시를 연상할 정도의 실험적 문체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높인 보기 드문 소설이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의 수준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이후 한강 작가를 뛰어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줄줄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상당수 크리스천들이 한강 작가의 다른 소설 속 내용과 그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작가의 인격성과 작품성까지 폄훼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학문 세계에 반기독교적인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세계적인 철학자나 탁월한 심리학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본 ‘채식주의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영어번역판 책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의 삶의 표준이자 절대 진리인 성경적 관점에서 ‘채식주의자’의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안타까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 책을 일반 부모들이 교육적 측면에서 자녀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인가의 문제이다. 책을 읽은 일반인들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작가에게도 ‘이 책을 자녀에게 자랑스럽게 읽힐 수 있는가’라고 감히 묻고 싶다.
이 책은 경기도에서 청소년 유해도서 폐기 대상으로 선정될 정도로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어 자녀들에게는 도저히 읽힐 수 없는 책이다. 비록 ‘억압에 대응하는 처절한 고뇌와 극단적 자아 해방’이라는 고상한 주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지만 성인소설에 가까운 퇴폐적 성적 묘사와 원형질적 욕망의 폭발은 독자를 당황케 한다. 특히 2부 ‘몽고반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설적 내용은 최소한의 선을 넘었고 성적 관음과 변태적 욕망을 예술로 미화시킨 것은 속임수에 가깝다.
형부와 처제의 불꽃 같은 불륜 묘사는 사회적 금기를 용인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극단의 퇴폐성을 ‘성애의 꽃밭에서 피어나는 심미적 경험’이라고 극찬한 한 평론가의 평가는 개탄을 금치 못한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권위 있는 노벨상을 탄 유명세가 청소년들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 어두움의 영향력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제 한강 작가는 좋든 싫든 영향력 있는 국가적 리더로서 도덕적 책임을 감당해야 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 ‘소수자=피해자, 다수자=가해자’ 라는 등식은 매우 곤란하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며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은 누구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것이 성경의 진단이다. 이러한 편향적 논리는 이제 폐기해야 마땅하다. 특히 크리스천에게 이 논리는 성소수자에게도 적용할 우려가 큰 만큼 부정적 측면의 도덕적, 영적 파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필자는 한강 작가에게 권고하고 싶다. 이제는 단순히 유명 작가를 넘어 존경받는 작가로,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화해를 이루는 피스메이커로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역할 모델을 해달라고 말이다.
셋째 이제는 문학적 완성도보다 다루고 있는 콘텐츠에 대한 건강한 고뇌와 통렬한 자기 성찰에 몰입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한강 작가가 그리는 작품 속 인간의 내면은 피해의식 죄책감 수치심 분노 공포 탈선 절망이라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다. 한마디로 ‘절망의 문학’이다. 그러나 이제는 ‘희망의 문학’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오늘의 시대와 같은 세기말적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 어둠의 콘텐츠는 더 이상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돼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예술과 문학의 기능은 치유와 회복이라는 빛의 기능이 훨씬 크다. 물론 고발과 비판 기능이 필요하긴 하나 이는 희망을 전제로만 허용될 수 있다. 다행히 채식주의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현실과 그 종말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영혜와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는 모두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물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즉 모두가 죽음으로서의 존재이고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어둠만 탓하지 말고 빛의 콘텐츠 만들어야
영화 기생충이나 소설 채식주의자가 인류의 명작으로 남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진단만 있지 처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진단도 중요하다. 그러나 절대 기준을 상실한 시대의 방황을 빛과 희망 그리고 감동적 터치로 치유해 줄 빛의 콘텐츠가 더 절실한 시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알루샤, 톨스토이의 ‘부활’에 등장하는 카츄샤처럼 구원의 진리가 필요하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으로서 당연시되던 타락한 삶을 회개하고 형의 죽음이 던진 번민과 허무함 속을 헤매다 기독교 진리의 빛을 만나 인생을 전환한다. 그의 ‘참회록’엔 이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참회록 이전까지 그는 ‘전쟁과 평화’를 비롯해 불륜소설 ‘안나 카레니나’ 등을 집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이후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담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리고 복음서의 정신을 담은 다양한 작품 등을 썼다. ‘부활’은 이렇게 인생 후반에 쓴 작품이다.
현대인을 대표하는 소설 속 비극적 인물들, 그들의 갈증은 사실상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갈증이자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들에게 빛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야 할 숭고한 의무가 작가들에게 있어야 한다. 사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절박하게 추구했던 진정한 자유는 성경 말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처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최근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리를 사수하는 수비만 있지 진리를 선포하는 공격이 없다는 점이다. 어두움의 콘텐츠를 방어하는 데는 총력을 기울이지만 빛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일에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필자는 27일 열리는 연합예배와 기도회에 모든 성도가 참여해 빛의 콘텐츠를 전 국민에게 알리기를 기도한다.
창조 원리에 반하는 반생명·반윤리적 악행과 이를 법제화하려는 시도, 인격과 가정을 파괴하는 동성애·동성혼 제도화를 반대하는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어두움만 탓하지 말고 스스로 빛이 되는 내부의 통렬한 자기 성찰과 시스템의 창조적 혁신이 병행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말씀의 진리에 굶주리고 사랑이 식어가는 종말론적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빛의 이벤트가 되기를 기도한다.
최근 필자는 전 세계 10억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운동’에 깊이 동역하던 한 미국교회에서 ‘용서함 받았네’(forgotten)라는 유명한 그림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충격은 학창 시절 처음 접했던 밀레의 ‘만종’에서 밀려오는 감동, 러시아 선교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다가 성이삭성당의 벽에서 보았던 ‘돌아온 탕자’의 감동과 충격을 능가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망치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고 있는 현대인을 뒤에서 품고 계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수려한 작품 속에 녹여내듯 우리도 고도의 문화적 침투성을 가진 빛의 콘텐츠를 개발해 복음을 전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며 밴치마킹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창조적인 빛의 문화를 통해 복음의 생태계를 대대적으로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빛의 콘텐츠 메이커로 대반전 기대
한강 작가는 필자와 동향 출신이기도 하다. 나는 어린 시절을 저항 정신의 중심인 광주광역시에서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가 날마다 어머니를 때리는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를 겪었다.
이후 필자는 사회생활 대인관계에서도 항상 피해의식과 숨겨진 분노가 있었고 병든 자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 처절한 연약함 속에 독버섯처럼 죄성이 자리 잡아 결국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로 어둠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닫고 결국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한강 작가가 겪었을 내면세계의 고통과 방황을 깊이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권면하고 싶다.
“한강 작가님, 이제 그만 자아의 억압과 고통의 터널에서 나오십시오. 예수님을 만나시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대학 재학 시절 수없이 들었을 연세대학교의 교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이상 어둠을 탓하지 말고 빛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놀라운 재능과 영향력으로 구원을 갈망하는 민초들에게 빛의 콘텐츠의 본질이자 참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소개하는 인생의 대반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황성주 이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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