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8차. 24.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양성 학교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양성 학교
승려가 최고라고 말하지 못하니
출가 승려들의 수가 감소한다고
그렇게 전해오고 있는 현실
어떻게 극복하려나
금관가야에 불교가 전해 내려왔다는
장유 화상에 대하여 고찰하지 않는
오늘의 불교는 무엇을 학습하려나
금관가야에 허황후는 7 왕자를
출가시킨 위대한 불모였다
신라 승려 가운데 원효가 있지만
원효는 요석 공주를 만나
불교의 대중화를 꿈꾸면서
신라의 거리를 활보했더니
요석을 설총을 유학자로
출가 수행자로 양성하지 않고
원효의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신라의 멸망으로 인하여
고려불교는 위대했노라 말하자는 말
그러한 400년을 고통 속에서 지속
그렇게 출가 승을 위하여
지위를 마련했던 고려
고려를 추종했던 일
고려의 문종 왕은 아들 가운데
대를 이를 아들 말고 한 아들을 출가
그리하여 고려불교는 지속되고
대각 국사를 탄생하게 하였던 문종
그 일이 잘못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시점에 서 있다,
조선 승려들에게 주어진 것
성균관에 입학을 받지 못하면
정치를 수행할 수 없게 만든 시대
승려들에게 승과 시험을 폐지
그가 바로 성종이었다는 것을 알자
성종 시대를 마감하고 연산군 시대
조선의 불교는 승려 수난을 당해
사찰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조선 불교계에 등장한 허응당 보우
보우는 승려들에게 승과 시험을
다시 보게 하였던 문종 왕후
문종 왕후에 의하여 승과 시험이 다시
승과 시험에 서산 사명 승려가 출현
임진왜란 시기에 승군 대장으로
아 우리의 허 응당 보우 스님
허응당 보우 스님이 회암사에
수행하고 있었을때에 문종황후가
보우스님을 모시고 와서 불교를
조선불교를 중흥하였던 역사를
문종 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유생들의 상소
불교를 추방해야 한다는 상소를 하여
허응당 보우는 제주도로 추방
제주도에서 변협에 의하여 주살
어이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조선불교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 전변에 율곡이 참여했다는 것
율곡이 그러한 행을 할 수 있었던 가 말이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기도하여 과거에 합격했던
배은망덕한 율곡이라고 말할 수 있어
조선불교는 국가의 정치력에서 후퇴
성균관 유생들을 사찰에 불을 지르고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찰인 회암사를
성균관 유생이 불을 지르고 상소하였는데
정도전이 쓴 불씨 답변에 대응하려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찰
회암사를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
그래도 국왕은 침묵하고 있었던
그날을 어이 잊으라는 고
임진왜란이 반발하지 승려 영규가
갑사 승려 7백을 이끌고 청주전투에 참여
청주성을 함락하는 성과를 올리고
일본군이 금산으로 호남을 정복하려할 때
금산 전투에서 승려들은 모두 전사했는데
조헌이 유생이라고 하여 승려들의 죽음에 있어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불행한 역사의 기록
조선 선조는 의주에 피난하며 승려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할 때
묘향산이 서산 승려가 있다고 하니
서산대사를 속히 청하였는데
그 시기에 선조는 서산에 승통을
설치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승통에 의엄 관동의 유정 호남의 처영을 장수로
조선 승군 총섭이라는 칭호는 내리였다,
그리하여 서산은 조선의 총섭이 되어
임진전쟁을 수행하였지만 유생들은
선조 임금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조선 승군들은 평양 전투에 참여
조선불교를 회복하는데 앞장을 섰다
보라 행주산성에 가서 보면 승군의 동상은
그 자리에 있지만 조선승군 처영에 대하여
아무런 흔적을 보이지 않고 있음이다
아 슬프고 서러운 현실을 어이 하라
광해군이 정치를 수행했다고 하면
조선 승군은 그 자취를 회복했으련만
사명은 일본에서 평화교섭을 하였던 승군
해인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에
광해군은 보약을 보냈다고 한다
광해군이 반정으로 물러난 이후에
조선의 승군들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복종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조 임금 시대에는 사도세자 추모
용주사에 승려들을 청하기도 했지만
정조는 불교를 증흥하지는 못하고
순조시대에 천주교를 박해하는 사건
그리하여 불교에 대하여서는 방관
정약용이 천주교에 관여했다고 하여
강진에 유배당한 시기에 초의와 교류
김정회의 유배에서 불교 승려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시기였다
사찰에 불지른 전라도에 있는 총지사
충청도 석성현감을 지낸 임면수는
아버지무덤을 조성하려고 총지사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순조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총 자사에 고승들이 분신하였다니
이러한 역사를 지켜만 보았던 조선 승려들
그리하여 천주교가 순조 시대에 혼란을 주고
천주교 신도들은 사찰에 피난하기도 했다,
김대건의 최초로 로마 가톨릭 학교 사제
그는 국가에서 사형당한 신부인데
그가 국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범죄
그에게 주어진 죄목이 무엇인가?
김대건은 연평도 앞 바다에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할 수 있도록 항로를 그린
지도를 청나라로 가는 어선에 넘겨주려다
연평도 부근에서 관헌에 체포되어 참수형을
헌종 시대에 국가에서 인정한 범죄 신부다
청나라에 조선의 지도를 그려 청나라 신부들이
조선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하려는 범죄
오늘날에 그 죄를 적용하면 국가보안법
기밀 누설죄라고 말할 수 있는 범인이다
조선불교는 호국불교라는 역사관을 회복하려 한다면
승려들에게 부여했던 승려교육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성균관 유생들이 지속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불교계는 승려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승려학교가 존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로 인하여 서학 동학에 대한 대응도
모두 실패하였던 불교계였다,
성균관 유생들도 일본에 의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균관도 지키지 못하면서 불교계에 그러한 가혹한 정책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민족이라는 조선을 망친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불교계는 호국불교를 상실하게 했다,
일본이 물러나고 미국의 세력이 장악한 시기
호국불교를 회복하는 운동을 학습했어야 한다
호국불교에 대한 학습을 하는 것은
역사를 바르게 성찰할 수 있는 민족불교
금관가야불교를 이 국토에 전래 된 불교사상을
승단에 지도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나투기 위하여
학문의 바탕을 교육해야 할 책임이
수행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승려들이 불교사를 학습하지 않는다면
당나라에서 학습했던 신라의 승려들이
당나라 불교를 학습하지 못함에 있어
인도불교를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아 이것이야 말로 호국불교의 역사를
망각하는 행위기도 하다
금관가야에 전래된 불교를 국가에서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함에도 방관하고 있어
삼국유사에 기록이 현존함을 학습해야 한다
경전을 학습하지 않는 불교는 정각을 이루지 못한다,
아 이제야 이러한 시를 써서 후학에게 전하려고 한다.
2022년 12월 4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