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어져 가는 욕 / 조영안
가게 문을 닫을 시간에 손님이 들어왔다. 혼자 사는 분인데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할 모양이다.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나이가 여든이 넘었지만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산다. 건강이 받쳐 주나 보다.
조금 후 그와 친구 사이인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분은 늘 건강에는 자신만만하다. 장수 축구팀에서 활동한다며 의기양양하게 자랑한다. 만두국과 공기밥,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그런데 각각 다른 좌석에 앉는다. 평소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말이 없다. 갑자기 한 사람이 '전라도 새끼들' 운운하며 혼자 지껄인다. 뒤에 들어온 사람은 전라도 토박이지만 욕을 한 사람은 충청도 출신이다. 혼자 살며 외로움과 설움을 겪은 모양이다.
드디어 두 사람이 다툰다. "전라도 남자들이 어떻다고 씨부렁거리냐?" "됐어. 이 새끼야." 참 희한한 게 두 분의 대화가 욕에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 이분들뿐만이 아니다. 가게에 오는 손님 대다수가 그렇다. 친할 사이일수록 더 그런다. 좋은 일이 있어도, 화가 나도 거칠게 감정을 표현한다.
오늘도 그렇다. 서운한 게 많았는지 "내 편은 아무도 없고, 친구라고 있는 너도 엉망이야."로 시작해 옥신각신 하더니 욕설이 오가며 싸움으로 번졌다. 이제는 육탄전이다. 심각했다. 잘못하면 좁은 가게가 엉망이 되겠다 싶어서 말렸다. 오전에 하동까지 가서 주사를 맞고 온 어깨를 걱정할 겨를도 없었다. 겨우 뜯어말려 진정시켰다.
"내가 너 코로나 걸려 방구석에만 있을 때, 먹고 싶어 하는 음료수랑 빵을 사다가 두 번이나 마당 감나무에 걸어 두고 왔는데 이러면 안 되지, 새끼야." 그런데 축구쟁이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코로나에 한 번도 걸려본 적도 없고, 병원도 안 갔고, 약도 사 먹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인마!" 2탄으로 번질 기세다. 평소에도 건강에는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다.
충청도 아저씨는 억울한 모양이다. 또 욕설이 오고 갔다. ‘참말이네 거짓말이네.’로 시작해 삿대질하며 제대로 붙을 기세다. 또 싸우면 절대로 말리지 않을 거며, 씨씨티브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나도 끼어들었다. “축구쟁이 여자 친구한테 물어보면 되것네.”라며 대꾸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보건소에서 약을 받아다 담 너머로 약봉지도 전해 줬다는 말을 전화로 들었다. 그때서야 전라도 아저씨가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예전에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으며, 서로 챙기는 두 분 사이가 좋아 보였다고 했다. 앞으로는 조심한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붙을지 모른다. 금방 말한 기억도 깜박깜박하는 여든이 넘은 나이라서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도 욕을 들은 기억이 없다. 부모님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도 그런일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주위에 온통 욕하는 사람 투성이다. 처음 시작은 어머니였다. "어멈아, 부엌에서 조갈치(국자의 광양 사투리) 좀 가져오너라." 뭔지 몰라서 서성이는 내게 연이어 "염병하네. 조갈치도 모르냐? "라고 하셨다. 황당했다. 경상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정말 큰 욕이다. 바보천치를 보고 '벅수'라고 하며, 사람구실도 못 할 만큼 형편없는 이에게 염병한다고도 한다. 그렇기에 '벅수'와 '염병'은 웬만해선 쓰지 않는다.
조갈치는 광양 지방에서나 쓰던 사투리다. 경상도에서 시집온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걸 모른다고 이렇게 심한 욕을 하나 싶어 내심 서운했다. 시어머니기에 반론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방 간의 언어 차이가 이렇게 심하나 싶어 전라도 남자랑 결혼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친구한테 "염병하네." 하는 소리를 들었다. ‘벅수 같다.’는 말도 이곳에선 보통으로 쓰는 말인가 보다.
그런데 또 충격적인 욕을 들었다. 가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추운 겨울 아침에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섰다. 마침 지나가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거나하게 취한 채 대뜸 "경상도×이 전라도 와서 장사해 쳐먹냐?"라고 말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로 마당 수돗가에 있는 얼음을 깨고 물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나가 끼얹었다. "그래, 경상도× 맛 좀 봐라. 내가 밥을 주라 하디, 떡을 주라 하디?" 얼음물을 뒤집어쓴 남자는 도망갔다. 마침 이층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 싸납쟁이네." 그 말을 들으니 ‘아, 이렇게 사는 거구나.’ 싶어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 일은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가 지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서서히 욕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 그중에서 제일 자신 있는 욕은 "개새끼야"다. 여기서는 좋거나, 반가울 때, 그리고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 때도 친근하다는 표시로 이 욕을 한다는 걸 배웠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쓰지는 않는다. 가게에 제일 단골인 동생이 있다. 처음부터 경상도 사람이라 어쩐지 정감이 갔다. 얼굴이 편하게 생겨 항상 웃는데, 장난기도 많다. 말장난을 걸거나, 세워 둔 자전거 바람을 빠지게 장난하는 등의 뻔한 거짓말을 할 때는 어김없이 '개새끼'라 한다. 그것도 웃으며 한다. 때론 화가 나면 진심인 욕도 있다.
욕도 서서히 길들어져 가는 것 같다.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직업상 주변에서 그냥 두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야이, 개새끼야."는 친한사람에게 자주 쓰는 말이다. 순하디순한 내가 전라도 지방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여자 깡패’가 되었다. 까불지 마, 이제 나도 전라도 여잔께.